[금사빠의 핀스토리] 산업계 고통 분담하느라…리스크 관리 원칙 거스르는 은행권

  • 은행권, 석화업계에 운영자금·수출대금·담보대출 수혈

  • 중대재해 기업 대출 축소되면 부담 이중고

주요 시중은행 현금 자동 입출금기ATM 전경 사진연합뉴스
주요 시중은행 현금 자동 입출금기(ATM) 전경 [사진=연합뉴스]
국내 산업계, 특히 석유화학업계가 생존 위기에 몰리자 금융권이 '산소호흡기'가 돼주고 있습니다. 조건 없이 대출 만기 연장을 하거나 금리를 감면해주며 석화업계 자금난 해소에 나서고 있습니다. 그러나 충당금 부담이 늘어나는 데다 금융당국이 중대재해 기업에 대출 한도 축소를 검토하면서 은행권의 어깨는 한층 더 무거워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 같은 지원을 언제까지 이어가야 할지 기약이 없어 끝이 보이지 않는 책임에 대한 우려가 갈수록 커지고 있습니다. 

27일 금융권에 따르면 은행권은 국내 석유화학업계에 △운영자금 △시설자금 △수출대금 △수입신용장 △담보대출 △신용대출 등을 명목으로 자금을 공급해왔습니다. 

석화업계와 금융권 반기보고서를 보면 KDB산업은행·KB국민은행·하나은행 등은 GS칼텍스에 2030억원 규모의 단기차입금을 지원했습니다. GS칼텍스가 산업은행으로부터 빌린 원화 장기 차입금은 2058억원에 달합니다. 
 
석화기업 신용등급 줄줄이 낮춰…쌓이는 은행 충당금 

다른 석화업계도 은행에 수시로 급전을 빌린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산업은행·우리은행·NH농협은행은 DL케미칼에 일반대출·한도대출·수출대금 명목으로 6779억원 단기차입금을 집행했습니다. 담보 대출액은 산업은행(2093억원)과 우리은행(343억원)에 묶여 있습니다. 국민은행·농협은행은 LG화학에 2조8702억원에 달하는 단기차입금을 투입했고 한화솔루션은 5조원어치를 산업은행 등으로부터 빌렸습니다. 

수출입은행은 에쓰오일에 2000억원의 단기차입금을, 하나은행은 1288억원의 외화 단기차입금을 각각 제공했습니다. 신한은행·하나은행·우리은행·농협은행·산업은행은 1376억원의 단기차입금을 대한유화에 지원했습니다. 

금융당국은 이 대출들에 대한 만기를 연장해 주도록 금융권에 협조를 요청할 계획입니다. 석화업계가 업황 침체를 겪자 자구책 마련에 나서는 것입니다. 그동안 은행권은 기업 만기 연장을 할 때 일부 상환을 받거나 원금과 함께 갚아가는 조건을 내걸었습니다. 하지만 다음 달부터는 조건 없이 만기연장이 가능해질 것으로 보입니다. 적극적으로 구조조정에 나선 기업에는 대출 금리 감면 등 혜택을 주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습니다. 기업은행과 지방은행의 경우 지방 소재 중소기업 대상 만기연장 상환유예 지원을 강화해 나간다는 계획입니다. 

그러나 은행권의 마음은 마냥 편하지는 않습니다. 신용평가사들은 주요 석화기업의 신용등급을 줄줄이 낮추고 있습니다. 대출자산의 부실 위험이 커지면 충당금을 더 쌓아야 하고 보통주자본비율(CET1)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금융권 관계자는 "일반적인 리스크 관리를 거스르는 주문이어서 지속적인 업황 모니터링을 해나가며 관리를 해야 한다"며 "마냥 특정 업종의 지원만 할 수 없는 노릇인데 정책을 언제까지 유지할지 미지수인 것도 불안을 키운다"고 말했습니다.  
 
건설업 사고 건수, 광업의 45배…"업종·규모별 대출 규제 차등화해야"

금융당국이 중대재해기업에 '대출 페널티'를 주기로 한 것도 은행권에 적지 않은 부담입니다. 중대재해가 발생한 기업에 신규 대출 한도를 축소하거나 인출을 제한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습니다. 

문제는 중대재해가 주로 발생하는 업종인 건설업과 제조업이 은행권의 핵심 기업대출 고객이라는 점입니다. 노동청에 따르면 지난해 사망사고 누적 발생건수는 553건으로 이 중 건설업에서만 272건이 발생했습니다. 이는 광업·임업·농업·어업보다 45배 많은 수준입니다. 제조업 사고는 146건에 달했습니다. 규제가 시행되면 은행권의 기업 대출 증가 폭이 줄어들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국민은행·신한은행·하나은행·우리은행·농협은행·산업은행을 주채권은행으로 둔 기업 41개 중 제조업과 건설업 사업을 영위하는 곳이 29곳에 달합니다. 물론 사고를 줄여야 한다는 공감대는 형성되고 있지만 천편일률적으로 중대재해 발생 기업의 대출을 줄여버리면 체력이 약한 기업들의 줄도산이 이어지는 것은 물론 은행권의 재무건전성 악화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지방 중소 제조기업과 건설사들에게 주로 대출을 해주는 지방은행도 타격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금융권 관계자는 "자구책을 마련하는 기업에 가점을 부과하거나 교육 등으로 보완을 해나가는 방향도 고려돼야 한다"며 "기업 규모별로도 규제를 차등화해야 국내 산업계가 위축되지 않고 지속가능한 보완체계를 마련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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