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율 명지대 교수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18일 논평에서 "공동 합의 문서들은 우리 국가에 끝까지 적대적이려는 미·한의 대결 의지와 더욱 위험하게 진화될 미·한 동맹의 미래를 진상하고 있다"며 "조선반도 지역을 초월하여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군사안전 형세를 불안정하게 만들고 전 지구적 범위에서 핵 통제 불능의 상황을 초래하는 엄중한 사태 발전"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한국의 핵잠 보유는 '자체 핵무장'으로 나아갈 포석이라며 "지역에서의 '핵 도미노 현상'을 초래하고 보다 치열한 군비경쟁을 유발하게 되어 있다"고 비난했다. 이는 지난 14일 발표된 한·미 공동 조인트 팩트 시트에 대한 반응이다. 필자가 지금까지 살면서 별의별 일을 다 겪었다고 생각했지만, 북한의 이러한 반응은 실로 '희한하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다. '내로남불'도 정도껏이지, 이쯤 되면 그들의 심리와 정신 상태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북한이 언급한 "핵 도미노"라는 표현은 그 가운데서도 단연 압권이다. 북한이 핵무장을 하지 않았거나 핵잠수함 개발을 추진하지 않고 있었다면, 우리의 핵잠수함 보유에 비판적 반응을 보일 명분이라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동북아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가장 위협적인 존재는 바로 북한의 핵무기 보유다. 이러한 엄연한 현실을 철저히 외면한 채, 마치 자신들은 아무런 책임이 없고 오히려 평화를 걱정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으니, 이들의 정신 상태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북한이 '사돈 남 말' 하듯 '핵 도미노'를 언급한 배경에는 두 가지 의도가 있을 것이라고 추론할 수 있다. 첫 번째로 들 수 있는 것은, 자신들이 이미 핵보유국이라는 점을 은연중에 강조하려는 전략적 의도다. 국제사회에서 통용되는 핵보유국의 개념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 하나는 핵 확산 방지조약(NPT)상 공식 핵보유국(nuclear weapon state)이고, 다른 하나는 실질적 핵보유국(de facto nuclear weapon state)이다. 후자는 이스라엘, 파키스탄, 인도처럼 NPT에 애초부터 가입하지 않은 채 독자적으로 핵무기를 개발한 국가들을 지칭한다. 그러나 북한은 NPT에 가입한 뒤 원자력 관련 기술과 지원을 받았고, 그 이후 일방적으로 탈퇴해 핵을 개발했다. 북한이 국제사회에서 핵보유국으로 인정받기 어려운 근본적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만약 NPT에 가입했다가 탈퇴한 국가를 실질적 핵보유국으로 인정한다면, 다른 국가들도 이를 선례로 삼아 NPT를 탈퇴하고 핵 개발에 나설 가능성이 높아진다. 예를 들어 우크라이나가 가장 먼저 핵개발에 뛰어들 수 있다. 현재 러시아와 전쟁을 벌이고 있는 우크라이나는 핵무기 개발에 뛰어들 충분한 동기와 역사적 경험을 갖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소련 붕괴 직후 세계 3위의 핵무기 보유국이었다. 유럽에 가장 가까운 소련 영토가 우크라이나였다는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과거 소련은 다수의 핵무기를 우크라이나에 배치했기 때문이다. 당시 영국과 미국 그리고 러시아 등은 우크라이나의 안전을 '집단적'으로 보장하겠다고 약속했을 뿐 아니라, 우크라이나에 대규모 재정 지원을 제공함으로써 우크라이나의 핵무기를 다시 러시아 영토 내로 이전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안전을 보장했던 당사국 중 하나인 러시아가 보장은커녕 우크라이나를 침공했으니, 우크라이나 입장에서는 심각한 배신을 당한 셈이고, 만일 당시 핵을 포기하지 않았더라면 지금과 같은 침공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러한 ‘과거의 교훈’을 고려할 때, 우크라이나가 핵무기 개발에 뛰어들 가능성은 가장 높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중국의 위협을 받는 대만, 북한의 위협에 직면한 우리나라와 일본도 핵 개발에 나설 충분한 명분을 갖고 있다. 결국 미국이 북한을 실질적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순간, NPT 체제는 사실상 붕괴되고, '핵 도미노'가 현실화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 때문에 트럼프 전 대통령도 북한을 언급할 때 'nuclear weapon state'라는 공식 표현 대신 'sort of a nuclear power'라는 모호한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다. 북한 역시 이런 이유로 미국이 자신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을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핵보유국처럼 행동하며 세계 평화를 걱정하는 듯한 발언을 통해 자신들의 입지를 과시하려는 것이다.
둘째, 우리나라의 핵 추진 잠수함 보유가 점차 현실화되고 있다는 데서 오는 불안감 때문에 북한이 이런 반응을 보인다고 추론할 수 있다. 이러한 불안감은 북한뿐 아니라 중국도 느낄 것이다. 한국이 핵 추진 잠수함을 확보하게 되면, 중국의 해양 전략에도 상당한 차질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을 고려하면, 이번 이재명 대통령의 핵 추진 잠수함 추진은 우리나라 국방력 증강에 획기적인 전환점을 마련한 것이라고 평가할 만하다. 이를 북한이 역설적으로 우리에게 확인시켜준 셈이다. 특히 이재명 대통령이 한·미 확대 정상회담 당시 트럼프 대통령에게 "디젤 잠수함은 잠항 능력이 제한적이어서 북한이나 중국 측 잠수함에 대한 추적 활동에 한계가 있다"며 "핵 연료 공급을 허용해주면 우리 기술로 재래식 무기를 탑재한 잠수함을 여러 척 건조하여 한반도 해역의 방어 활동을 전개함으로써 미군의 작전 부담도 경감시킬 수 있다"고 미국을 설득한 대목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중국 견제라는 측면을 공개적으로 확인한 것으로, 국방을 위한 실용 외교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명확히 보여주는 사례다. 일각에서는 한국의 핵 추진 잠수함 개발이 지역 긴장을 고조시킨다며 신중론을 제기한다. 그러나 우리가 개발하지 않더라도 긴장은 다른 요인에 의해 충분히 고조될 수 있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지금까지 역사적 경험이 이를 명백히 입증한다. 따라서 긴장 고조 가능성만을 이유로 핵 잠수함 개발을 반대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 오히려 핵잠수함 개발과 관련한 소극적 태도는 상대방의 도발 의지를 더욱 자극할 위험이 있다.
북한의 이번 과잉 반응은 역설적으로 우리가 왜 핵 추진 잠수함을 반드시 보유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국제 정치는 이상주의적 기대보다는 냉철한 현실 인식과 힘의 균형을 바탕으로 작동한다는 원칙을 다시금 생각해야 할 지금이다.
필자 주요 이력
▷프라이부르크대학교 정치학 박사 ▷한국국제정치학회 부회장 ▷전 통일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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