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상철 글로벌비지니스연구센터 원장]
세상은 여전히 약육강식이다. 예나 지금이나 강자는 약자 위에 군림하면서 자신의 페이스대로 질서를 끌고 가려고 한다. 시대 상황에 따라 긴장감의 강도가 다소 차이를 보이고 있기는 하지만 근본적인 구도가 쉽사리 바뀌지 않는다. 다만 소위 강자 그룹에 속하는 부류들의 격차가 있을 때는 비교적 평화로움이 유지된다. 반면에 강자 간의 격차가 좁혀지면서 균열에 금이 가면 갈등이 격화하고 사이에 끼인 중간자와 약자의 입지가 더욱 난처하게 된다. 이런 환경에서는 강한 자의 횡포가 극으로 치닫고 국가 이기주의가 기승을 부리며, 다수 여론의 지지를 받는 스트롱맨이 우후죽순처럼 등장한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보면 반드시 강한 자가 아닌, 주어진 환경과 조건에 잘 적응하는 자가 끝까지 살아남은 사례도 많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지구촌의 분열은 자유 진영의 미국과 반대 진영에 있는 중국 간의 힘의 기울기가 팽팽해지면서 불가피하게 생겨난 현상이다. 어느 쪽으로든 이 균형추가 쏠리지 않는 한 지금과 같은 불안한 현상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 중국의 추격이 턱밑까지 따라오고 있고, 이를 방치하면 가까운 장래에 역전이 될 수 있어 좌불안석이다. 정권의 색깔과 관계없이 미국의 주적은 언제나 중국이고, 중국에 대해 엄청난 십자포화를 계속해서 날린다. 특히 트럼프 2기는 1기보다 더 센 강도로 중국을 밀어붙인다. 기존 질서 파괴에 대한 비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칼날을 휘두른다. 갈수록 중간 지대에 있는 국가는 자국의 경제·안보적 이익을 사수 혹은 확대하기 위한 고민이 깊어진다.
최근 미국이 각국에 대해 부과하고 있는 상호관세는 기존의 국제무역 규칙에 대한 반발에서 출발한다. 세계무역기구(WTO) 체제는 미국에 불리하게 적용되는 무역 질서이고 중국의 배만 불리는 불공평한 것으로, 미국에는 마치 자살 협정이라고 단호하게 규정한다. 다자무역 체제의 종식 선언임과 동시에 양자(혹은 복수 국가) 간의 무역협정으로의 재편을 서두른다. 이 과정에서 또 주목할 점은 기존 자유무역협정(FTA)을 깡그리 무시하면서 협정 상대국을 극도로 당황케 한다. 캐나다와 멕시코에도 관세를 부과하고 한국에게도 기존 영세율이 아닌 15%로 정함으로써 양국 FTA가 한국에게 방어 수단이 될 수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트럼프의 관세 정책이 다분히 정치적 목적에 의한 것이고, 예외가 없다는 것을 강하게 시사한다. 이제 한·미 FTA 폐기 문건이 다시 트럼프의 책상 위로 올라갈 수도 있다.
중국은 트럼프 1기 때와 마찬가지로 강온 전술을 병행하면서 우회와 시간 끌기 등 다양한 전술을 구사한다. 그러나 내부 사정을 들여다보면 그리 탄탄치 않다. 시진핑 3기 체제가 크게 흔들리면서 정치 지형의 변화까지 감지된다. 설상가상으로 경제는 겉으로 탄탄해 보이지만 안으로는 디플레이션으로 전전긍긍하는 모양새다. 미국과의 장기적 충돌로 인해 정치·경제에 미치는 후유증이 의외로 심각하다. 특히 전 산업에 걸친 과잉공급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신규 법인 설립의 정체로 실업이 급증하는 등 성장 동력이 정체되고 경제의 활력이 떨어진 지는 꽤 오래되었다. 내수 침체로 밀어내기식 수출로 버티고 있기는 하지만 미국 등 주력 시장에서 중국산에 대한 거부감 확산으로 적신호가 켜지고 있다.
주변 환경과 조건에 잘 적응하는 자가 이익 챙기는 사례 많아
한편 미·중 충돌은 상품과 기술에 이어 광물로까지 옮겨붙고 있다. 20세기가 석유 전쟁이었다면 21세기는 핵심 광물 전쟁이라고 할 정도로 광물 없이는 에너지 전환이나 기술 패권이 불가능할 정도로 첨예해지는 양상이다. 중국은 50년 전부터 이를 간파하고 이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있으며, 20년 전부터는 전 세계 광산에 대한 영향력을 높이면서 글로벌 광물 공급망의 80% 정도를 지배할 정도가 되었다. 뒤늦게 이에 대한 위협을 감지한 서방 세계가 중국에 대한 맞불 전략을 서둘러 내놓고 있다. 미국·일본·EU 등 서방 동맹을 중심으로 광물 공급망 재편·현지화·동맹 강화 등을 추진하면서 한국도 이에 동참하고 있기도 하다. 자연스럽게 광물·기술·환경이 글로벌 경쟁의 핵심 화두로 등장한다.
지금 가장 큰 관심을 끄는 것은 트럼프의 일방적인 상호관세가 과연 미국 경제에 도움이 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관세로 미국 제조업이 다시 살아나고 일자리가 늘어날 것인가. 다수 전문가는 특정 산업에선 늘어나겠지만 다른 산업에선 줄어들어 결국 제로가 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또한 관세는 소비자 가격을 인상, 인플레와 소비자 부담 증가로 나타나 정치적 부담이 더 커질 수도 있다. 중국의 힘을 완전히 빼놓기도 전에 미국이 먼저 힘이 빠지는 경우도 배제할 수 없다. 아니면 둘 다 힘이 빠져 글로벌 영향력이 줄어들면서 제3의 세력이 부상할 수도 있다. 약삭빠른 트럼프는 자신의 정책을 수정하면서 수시로 변덕을 부릴 공산도 크다. 이 와중에 한국과 같은 국가에 새로운 기회 공간이 생겨날 여지도 충분하다.
각국의 움직임도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다. 미국으로부터 높은 관세를 맞은 BRICS(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공)는 다시 뭉친다. 트럼프 관세에 맞서는 그들만의 무역 공급망을 만들려고 한다. 또한 화장품은 미국으로, 가전은 멕시코로 상대적으로 관세가 싼 국가로 생산기지 이전을 검토하는 국가도 늘어난다. 문제는 우리다. 이번 관세 협상에서도 정부 역할은 미미했고 결국 대기업이 전면에 나서 가까스로 최악은 모면했다. 그런데도 여전히 기업은 제도권 내에서 찬밥이다. 반(反)기업법이 줄줄이 대기 중이다. 관세 전쟁에 숨겨진 핵심은 제조업의 자국 유치다. 우리는 이들을 밖으로 쫓아내지 못해 안달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큰 전쟁에서 의외로 전과를 올리는 쪽은 주변 정세를 잘 읽고 적응력을 높인 국가다. 그러나 냉정하게 진단해보면 우리가 이 부류에 속할 가능성이 작아 보인다.
김상철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경제대학원 국제경제학 석사 △Business School Netherlands 경영학 박사 △KOTRA(1983~2014년) 베이징·도쿄·LA 무역관장 △동서울대 중국비즈니스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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