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인세 정상화, 불가피한 선택이다

우석진명지대 경상통계학부
우석진(명지대 경상통계학부)

올해 무자본 특수법인인 한국은행이 법인세 납부 1위를 기록했다는 소식은 우리나라 세수 구조의 달라진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과거 삼성전자를 비롯한 대기업이 법인세 납부를 주도했던 것과 달리 이제는 중앙은행이 법인세 최대 납부자가 되는 기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삼성전자는 2024년에 이어 2년 연속 법인세 0원을 기록했다. 고대역메모리(HBM) 수요 확대에 힘입어 21조원의 영업이익을 거둔 SK하이닉스의 법인세 납부액도 한국은행에 미치지 못했다. 국회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상호출자제한 기업에 대한 조세지출액은 연평균 20% 이상 증가하여 대기업에 대한 세제 혜택이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기업 친화적 감세 정책을 추진해 왔다. 법인세를 1%포인트씩 인하하고 통합투자세액공제 등 각종 세액공제를 확대했지만 기업 투자 증가는 실현되지 않았다. 고이자·고인플레이션 국면에서 기업들은 신규 투자는커녕 기존 투자도 철회했다. 감세를 통해 투자가 늘고 결국 법인세수가 증가할 것이라는 낙수효과 이론은 허황된 기대에 불과했다.

감세 결과 2022년 103조원이던 법인세수는 2024년 62조5000억원으로 급감했다. 2023년과 비교해도 18조원이나 감소했다. 기업의 영업이익 감소를 고려하더라도 감세로 인한 세수 감소는 심각한 수준이었다. 법인세수가 줄어 국민소득 대비 조세부담률도 2022년 22.1%에서 2024년 17.8%로 급락했다. 전체 국세 수입에서 법인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18.6%까지 하락하여 2005년 이후 최저 수준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세수 구조의 불균형이다. 정해진 국가 예산을 누군가는 부담해야 한다는 원칙에서 볼 때 특정 세목의 비중 축소는 필연적으로 다른 세목의 부담 증가로 이어진다. 법인세 비중이 감소한 만큼 부담이 고스란히 근로소득자에게 전가되고 있다. 법인세 비중이 줄어드는 동안 개인소득세 부담은 계속 늘어났으며, 특히 누진세율 구조상 중간소득층의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세수 구조에서 가장 큰 문제는 조세 부담의 불균형이다. 자본이 부담하는 법인세 비중은 감소하는 반면 노동이 부담하는 근로소득세의 비중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이는 세수 안정성과 조세 형평성 모두에 부정적인 현상이다. 자본에서 노동자로 세 부담이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세수 상황을 고려해보면 세율 1%포인트 인상과 과세 기반 확대 등 법인세 정상화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 과제가 되었다. 우선 재정 건전성 확보를 위해 불가피하다. 현재의 세수 부족이 지속되면 국가채무 증가와 재정적자 확대를 피할 수 없다. 미래 세대에 부담을 전가하는 것보다는 현재 경제주체들이 적정 수준의 세금을 부담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둘째, 조세 형평성 측면에서도 정당하다. 기업은 국가 인프라, 교육받은 인력, 안정적 사회 시스템의 혜택으로 이익을 창출한다. 특히 기업은 정부 지원과 혜택을 받아온 만큼 사회 환원의 의무가 크다. 이익을 낸 주체가 좀 더 부담하는 것이 응능(應能)의 원칙에도 부합한다.

셋째, 경제 전체의 균형 발전을 위해 필요하다. 법인세 인상으로 확보한 재원을 교육, 인프라, 연구개발에 투자하면 장기적으로 기업 경쟁력 향상에도 도움이 된다. 인공지능, 빅데이터, 바이오 등 경제 성장의 기반을 마련하는 데 필요한 재원으로 사용할 수 있다.

급격한 세율 인상은 기업에 부담을 줄 수 있다. 따라서 1%포인트 수준의 점진적 인상으로 기업과 개인 간 조세 부담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한 각종 비과세·감면 제도 정비와 조세 회피 방지 제도 강화 등 세수 기반 확충 노력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기업이 돈을 못 벌면 근로자도 어려워진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기업이 이익을 내면서도 세금을 내지 않고 그 부담이 근로자에게 전가되는 구조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중장기적으로는 우리 사회의 통합과 안정성을 해할 수도 있다. 지금이야말로 단기적 부담을 감수하더라도 장기적 안정성을 확보할 때다. 법인세 정상화는 미룰 수 없는 현실적 선택이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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