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재원의 Now&Future] 日 기업 의 변신 …M&A로 부활의 엔진 켜다

곽재원 논설위원장
[곽재원 논설위원장]
 
지난주 ‘일본 기업들의 M&A, 1~6월 사상 최대… 세계 시장 점유율 10% 초과는 버블 이후 처음’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일본 언론에 크게 보도됐다.
일본 기업이 인수자로 참여한 국내외 M&A(인수합병)가 2025년 1~6월 기간에 사상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금액 기준으로 전년 동기 대비 3.6배 증가한 2148억 달러(약 310조원)로, 통계가 집계된 1980년 이후 반기 기준 최대 규모다. 세계 시장 점유율은 버블 시대 이후 34년 6개월 만에 10%를 넘어섰다. 자본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일본의 그룹 재편과 해외 성장 추구 움직임이 가속화되고 있다.
영국 LSEG에 따르면 1~6월 세계 M&A 규모는 1조9792억 달러로 30% 증가했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일본 제외) 기업들의 인수합병은 90% 증가한 3775억 달러를 기록했다. 미국 기업들의 인수합병은 9% 증가한 8309억 달러로,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 영향으로 세계 평균보다 성장률이 낮았다. 유럽도 3457억 달러로 1% 증가에 그쳤다.
일본 기업의 인수 금액이 세계 전체의 10%를 초과한 것은 1990년 7~12월 이후 처음이다. 엔화 기준 인수 금액도 7년 만에 역대 최고를 경신했다.
올해 상반기는 일본의 전통적인 거대 기업들이 그룹사 재편을 통해 자본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움직임이 잇따랐다. 도요타 자동차는 약 4조7000억엔으로 계열사인 도요타자동직기에 대한 TOB(주식 공개 매수)를 결정했으며, NTT는 2조엔 규모로 상장 자회사인 NTT 데이터 그룹을 완전 자회사화했다. 상장 기업이 계속 증가해온 일본 시장은 신진대사가 진행되지 않았다. 대형 기업이 상장 자회사를 보유하고 있거나, 거래 유지를 위해 그룹 내에서 주식을 상호 보유하는 경우가 많았다. 액티비스트(적극 주주)들은 기업에 자회사 상장이나 상호 보유 해소를 촉진하고 경영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압력을 높였다.
일본 기업의 해외 기업 인수합병도 7년 만에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1~6월에는 802억 달러로 2.5배 증가했다. 소프트뱅크그룹은 미국 반도체 설계 기업인 암페어 컴퓨팅을 65억 달러에 인수한다고 발표했으며, 미국 오픈AI에 대한 투자도 결정했다. 런던에 본사를 두고 있는 독립계 M&A 자문사인 브노아는 “최근 몇 달간 일본 기업으로부터의 문의가 급증했는데 이는 지난 20년간 전혀 없던 현상이다”라고 지적했다.
비핵심 사업이나 자회사를 분리하는 '카브아웃'도 일본에서 증가하고 있다. 레코프 데이터에 따르면 1~6월 동안 약 270건으로 30% 증가했다. 2008년 이후 17년 만에 과거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일본 주요 기업의 현금 보유량은 2008년 회계연도 이후 3번째로 많으며, 투자 여력이 증가하고 있다. 도요타자동직기의 비공개화에 미쓰이스미토모 은행 등 3대 은행이 약 2조8000억엔을 대출하는 등 일본 금융기관이 자금 공급 역할을 맡고 있는 것도 일본 기업이 구매자로서 존재감을 높이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M&A의 주요 시장인 미국에서는 트럼프 대통령 취임 초기 독점금지법 심사가 완화되며 M&A에 긍정적인 바람이 불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1~3월 분기 경제 성장률이 3년 만에 마이너스로 전환된 가운데, 상호 관세를 부과한 4월 ‘해방의 날’ 직후 “미국 관련 M&A는 대부분 보류됐다”(미국계 투자은행 고위 관계자). 인수 자금을 펀드 대출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은 미국에서는 시장 전망이 불확실한 상황에서는 필요한 인수 자금을 조달하기 어려워진다. 현재 주가도 회복되며 일시적인 혼란은 가라앉았지만, 올해 상반기에는 펀드가 제한된 자금을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일본 기업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상호 관세를 도입한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 기업에 미국 내 생산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 향후 일본 기업이 전략적으로 미국에서 인수를 늘릴 가능성도 있다.
이같이 일본에서 M&A 시장이 활기를 띠는 배경에는 기업들이 경영 효율성을 높이고 글로벌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전략적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는 점이 있다. 우선 선택과 집중을 통한 사업 재편이다. 많은 기업들이 핵심 사업에 집중하고 비핵심 사업을 분리하는 과정을 진행하고 있다. 사업의 카브아웃이 대표적이다. 자기자본이익률(ROE)을 중시하는 시장의 트렌드를 반영해 비핵심 사업이나 자회사를 매각하는 '카브아웃'이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미쓰비시 케미컬 그룹은 제약 자회사를 매각하고 화학 관련 사업에 집중할 의향을 밝혔다. 세븐&아이 홀딩스도 마찬가지로 편의점 사업에 경영 자원을 집중하기 위해 비핵심 사업을 매각할 방침이다. 다음은 사업 재편이다. 일본담배산업(JT)은 본업인 담배사업에 집중하기 위해 의약품 사업을 약 1600억엔에 시노기제약에 매각했다. 일본우편은 토나미 홀딩스를 인수해 물류 사업 강화를 추진하고 있다.
두 번째는 글로벌 공급망 재편이다. 경영 환경의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기업들은 글로벌 사업 재편과 공급망 강화를 꾀하고 있다. 해외 기업 인수가 늘고 있는 이유다. 일본제철은 US스틸 인수를 완료해 글로벌 생산 능력을 강화하고 중국 기업에 맞서겠다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미쓰이상선은 네덜란드의 LBC 탱크 터미널스를 인수해 화학품 해상 운송을 강화한다. 호시자키는 미국의 식품 쇼케이스 제조사 인수를 통해 북미 시장 확대를 노리고 있다.
기업 지배 구조(거버넌스) 개혁의 진전도 M&A를 촉진하고 있다. 주식 상호 보유 해소나 모자회사 상장 해소 등이 진행되며, 기업은 더 효율적인 경영을 목표로 하고 있다. 시미즈 건설은 상장 자회사인 일본도로를 완전 자회사화했다.
향후 M&A 시장은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리스크 분산과 자본 효율성 향상 방안으로 M&A의 중요성은 더욱 증가할 것이기 때문이다. M&A의 활성화는 일본 기업이 변화에 대응하고 지속 가능한 성장을 추구하기 위한 중요한 전략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지난 5월30일 ‘2025년판 제조업 백서’를 발표했다. 이 백서는 최근 세계 각국에서 산업정책의 전개가 가속화되며, 산업경쟁력·탈탄소·경제안보의 3요소를 복합적으로 고려하는 움직임이 진행되고 있다는 내용을 소개하면서 제조업체는 탈탄소와 경제안보 관점을 고려한 중장기적 성장 투자를 실시하는 것이 중요해진다고 강조했다. 또한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제조업에서의 디지털 전환(DX) 추진은 제조업체의 수익력 향상과 그린 전환(GX) 추진 등에 기여하는 중요한 과제라고 지적했다. 이 백서는 이러한 과제들의 실행 현황과 실제 대응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앞서 일본 경제산업성이 발표한 2025년 '디지털 경제 보고서'도 매우 시사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디지털 적자를 안고 있는 일본 — 생존 전략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제목의 이 보고서는 일본이 직면한 심각한 디지털 적자의 실태를 분석했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일본의 디지털 적자는 2024년에 3조엔에 달하며, 2035년에는 최대 45조엔으로 확대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과 중국의 대형 기업이 압도적인 시장 점유율을 차지하는 가운데, 일본 기업은 여전히 기반이 되는 데이터나 플랫폼을 구축하지 못하고 있다. 일본은 오랜 기간 제조업 중심의 경제를 유지해 왔지만, 디지털 경제가 성장하는 현대에는 그 구조가 취약하다는 것이 드러나고 있다. 일본 기업은 디지털 기술에 대한 투자가 부족하며, 해외 클라우드 서비스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다. 이런 상황은 일본의 경제 경쟁력 저하를 초래하며, 장기적으로는 산업 전체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 보고서는 일본이 디지털 경제에서 생존하기 위한 전략으로 고부가가치 분야에 대한 투자와 차세대 기술에 대한 선제적 투자를 제안하고 있다. 외부 플랫폼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국내에서의 데이터 활용 능력을 높이고 경쟁력 있는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일본 기업은 제조업 중심의 전통적인 강점을 유지하면서도, 디지털 분야에서의 혁신을 가속화하고 글로벌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한 전략을 재구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가 차원에서도 디지털 기술 강화와 국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정책 전환이 필요한 시점에 이르렀다고 이 보고서는 강조했다.
이처럼 일본 기업들의 M&A 의욕, 제조업 백서, 디지털 경제보고서는 하나의 맥락을 이룬다. 일본 기업의 변신 방향을 보여준다.
일본경제 전문가인 맨넥스그룹의 예스퍼 콜 글로벌 앰배서더는 “일본은 부활의 시작점에 서 있다”고 일본경제신문 기고에서 논평했다. 그는 현재 세계의 투자자와 분석가들이 일본이 승자로 부상할 가능성을 점치기 시작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이례적인 행동으로 인해 세계의 금융, 경제, 사회, 정치 구조가 파괴되고 있다. 당분간 이는 일본의 경제에도 타격을 줄 것이다. 그러나 글로벌 관점에서 보면 일본은 신뢰할 수 있는 발전 추세에 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가? 먼저 정책 결정이다. 성장을 추구하는 실용주의다. 향수를 자극해 포퓰리즘을 부추기는 정치인이나 재정·금융 긴축에만 집착하는 관료는 없다. 기술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고 사회를 혼란에 빠뜨리는 뉴머니 엘리트도 없다. 일본의 부처 간 협력은 부러움의 대상이다. 일본 엘리트들은 여전히 협조적 행동을 자부심으로 여기며, 허세 가득한 SNS 전쟁을 본질적으로 경시한다.
일본은 어떤 선진국과 비교해도 공공 인프라와 공공 서비스는 금메달급이다. 누가 총리가 되든, 경단련이나 경제동우회의 수장이 누가 되든, 변하지 않는 점이 평가된다. 기업 리더들은 버블 시대 이후의 에너지와 위기감을 가지고 행동을 시작하고 있다. 과거의 전통과의 근본적인 단절을 시도하고 있다. 연공서열형 보상제도 대신 성과급이 도입되기 시작했다. 기업 리더들이 직원들의 정착, 동기 부여, 기술 향상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지금이 바로 좋은 변화가 일어나는 시기다. 기업 문화를 바꾸고 성과 향상에 인센티브를 부여하며 성공에 보답하려는 노력이다. 이것이 일본이 부활의 시작점에 있다는 이유다. 기본적이고 일관된 수요에 응답하는 일본의 강점에 부는 순풍은 당분간 잦아들지 않을 것이다.”
이재명 정부는 출범 이후 많은 경제회생대책을 발표하고 있다. 이웃 일본에서 부는 부활의 바람을 면밀히 살피는 일도 좋은 전략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곽재원 필자 주요 이력 

▷전 중앙일보 경제부국장, 도쿄특파원 ▷전 서울대 공과대학 초빙교수 ▷전 한양대 기술경영학 석좌교수 ▷전 경기도 경기과학기술진흥원 원장 ▷현 가천대·호서대 초빙교수 ▷현 아주경제 논설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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