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건의 심리렌즈] 故 최불암의 죽음 앞에서, 누가 더 의로운가

  • 순수·질서·충성…도덕 기반 이론으로 읽는 추모 논란

故 최불암이 세상을 떠난 뒤 때아닌 논란에 휘말린 배우 김지영 김용건 사진연합뉴스
故 최불암이 세상을 떠난 뒤 때아닌 논란에 휘말린 배우 김지영, 김용건 [사진=연합뉴스]

'국민 아버지' 최불암(본명 최영한)이 세상을 떠났다. 고인의 마지막 길에는 추모 물결이 이어졌지만, 그 곁에선 뜻밖의 논란도 잇따랐다.

고인의 장지 인근 식당은 추모 기간 소주와 맥주를 무료로 제공하겠다고 홍보했다가 비판받았다. 김지영은 조문 복장으로, 김용건은 빈소를 찾지 않았다는 이유로 도마 위에 올랐다.

논란의 성격은 제각각이다. 식당에는 상업적 이용이라는 비판이 제기됐고, 김지영에게는 장례 예절이 문제 됐다. 김용건은 고인과의 각별한 인연에도 조문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았다.

비판의 이유도, 비판한 사람들도 각기 다르지만 공통으로 발견되는 모습이 있다. 저마다 중요하게 여기는 도덕적 가치를 기준으로 타인의 행동을 판단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근거로 타인의 애도를 평가하고, 그 판단에서 어떤 심리적 만족을 얻는 걸까.
 
▲ 저마다 다른 도덕의 잣대

조너선 하이트의 도덕 기반 이론(Moral Foundations Theory)은 인간의 도덕적 판단이 여러 가치에 기반한다고 설명한다. 돌봄과 공정성뿐 아니라 집단에 대한 충성, 권위와 전통에 대한 존중, 신성한 가치의 순수성 등이다.

식당 논란에는 '순수/오염'과 '공정/속임' 기반을 적용할 수 있다. 사람들은 생명과 존엄, 추모처럼 신성하게 여기는 가치를 경제적 이익과 결부하는 행위에 강한 거부감을 느낄 수 있다. 금기적 거래(Taboo Trade-off)라는 개념으로도 설명된다. 식당 측에 고인을 추모하려는 마음이 있었더라도, 장례를 영업 홍보에 활용하는 듯한 방식 자체가 불쾌감을 일으킬 수 있다. 애도를 명분으로 영업상 이익을 얻으려 했다는 의심은 공정성의 기반도 건드린다.

 
논란이 된 식당의 사회관계망서비스
논란이 된 식당의 사회관계망서비스

김지영의 조문 복장은 '권위/질서' 기반이 맞닿아 있다. 장례식의 복장과 절차는 공동체가 지켜온 예절이다. 이를 중시하는 사람에게 격식에서 벗어난 옷차림은 부적절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 엄숙한 의례에 어긋나는 행동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김용건의 조문 불참은 '충성/배신' 기반으로 살펴볼 만하다. 오랜 인연을 맺어온 만큼 마지막 길을 배웅해야 한다는 기대다. 흥미로운 건 김용건의 선택도 다른 도덕적 기준으로 설명될 수 있다는 것이다. 아들 하정우의 결혼식을 앞두고 조문을 삼가는 관습을 존중했다는 점에서 김용건은 '권위/질서' 기반을 지킨 것으로 볼 수 있다.

같은 행동도 어떤 도덕적 가치를 우선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평가될 수 있다. 자신의 기준이 확고하다고 해서 다른 판단이 잘못된 건 아니다.
 
▲ 타인을 비판하며 얻는 것

사람들은 왜 타인의 행동이 자신의 기준에 어긋난다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지적하려 할까.

도덕적 과시(Moral Grandstanding)는 실제적인 행동이나 희생 없이, 공개적인 공간에서 자신이 얼마나 도덕적이고 올바른 사람인지를 드러내 사회적 인정이나 지위를 얻으려는 행위다.

누군가의 무례함을 지적하는 행위는 자신이 예의를 중시하는 사람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의리 없는 행동을 비판하는 말에는 자신은 의리를 지키는 사람이라는 의미가 담길 수도 있다. 타인의 잘못을 지적하는 일이 자신의 올바름을 드러내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 되는 것이다.

 
사진최불암 측 제공
[사진=최불암 측 제공]

도덕적 우월감은 또 다른 만족도 안겨줄 수 있다. 비판은 자신의 잘못을 돌아보는 일보다 훨씬 쉽다. 상대의 결함에 집중하는 동안 자신은 옳은 편에 서 있다는 확신을 얻을 수 있다.

비판을 가하는 모든 사람에게 과시욕이 있다는 건 아니다. 진심으로 고인을 존중하기 때문에 분노할 수도 있다. 다만 도덕적 발언에는 잘못을 바로잡으려는 목적과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드러내는 기능이 함께 있을 수 있다. 비판이 사회적 인정으로 이어진다면 그 표현은 더욱 강해질 여지도 있다.
 
▲ 도덕적 확신이 놓치는 것

옳다고 느끼는 것과 실제로 옳은 것은 다르다. 사회적 직관주의 모형(Social Intuitionist Model)에 따르면 사람들은 도덕적 판단을 내릴 때 직관에 먼저 의존하고, 이후 그 판단을 뒷받침할 이유를 찾기도 한다.

불쾌하다는 감정이 잘못의 증거가 될 순 없다. 자신의 판단을 정당화하는 논리가 있다고 해서 그 판단이 충분한 사실에 근거했다는 보장도 없다.

하지만 온라인에서는 단편적인 정보와 억측이 증거처럼 받아들여지고, 행동에 대한 비판이 인격에 대한 단죄로 확대되곤 한다. 애도는 관심을 얻지 못하지만, 분노는 확실한 관심을 끌기 때문일지 모르겠다.

김지영은 다른 일정을 소화하던 중 부고를 접하고 급히 빈소를 찾았을 수 있다. 김용건은 조문을 고민했지만 주변의 만류와 관습을 고려했다는 사정이 알려졌다. 추모 행사를 홍보한 식당 역시 오랜 팬으로서 고인을 기리려 했을 뿐, 상업적 목적은 없었다고 해명했다.

이런 가능성과 해명이 모든 행동을 정당화하는 건 아니지만, 눈에 보이는 행동만으로 그 이면의 동기까지 단정할 순 없다. 타인이 어떤 선택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사정을 우리가 아는 건 아니다.

 
국민 아버지 배우 최불암본명 최영한이 별세했다 향년 87세 사진사진공동취재단
'국민 아버지' 배우 최불암(본명 최영한)이 별세했다. 향년 87세. [사진=사진공동취재단]

고인의 죽음은 더이상 개인적 삶의 종결에 머무르지 않는다. 남겨진 사람들의 선택과 행동이 평가 대상이 되고, 사실은 희미해진 채 감정만 증폭되곤 한다. 얼굴 없는 다수의 혀와 키보드는 자신을 정의의 심판관으로 착각하지만, 그 정의는 가볍다. 잠시 분노하다가 곧 다른 사건으로 시선을 옮긴다.

누군가의 죽음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지키려 하는 걸까. 고인에 대한 존중일까, 아니면 자신이 옳다는 믿음일까. 애도의 중심에는 고인이 있어야 한다. 타인을 심판하는 자신이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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