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근 서울과학종합대학원 석좌교수/자유시장연구원장]
17일(현지시간) 프랑스 전역이 55만명 이상의 시위대로 뒤덮였다. 물가가 치솟는 가운데 정부가 국내총생산(GDP)의 113%(2024년, IMF)에 육박한 국가부채 비율을 이유로 재정지출 축소를 추진하자 시민들이 반발한 것이다.
이번 시위는 지난달 중순 파리 외곽에서 고교생들이 주축이 돼 낡은 학교 건물, 과밀 학급, 교사 부족, 부실한 수업 내용 등에 불만을 쏟아내면서 시작됐다. 교육 환경 개선을 요구하는 대규모 학생 시위가 전국으로 퍼지면서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파리를 비롯, 마르세유·스트라스부르·리옹·렌·낭트·툴루즈 등 프랑스 전역에서 시위가 발생했다.
프랑스 전략계획고등위원회(HCSP) 자료를 보면, 2024년 전국 중등학교에서 부족한 교사 숫자는 3200명이었다. 공립 학교 상황이 심각했다. 지난해 교사 채용에선 공립 학교 1700여 자리, 사립 학교 278자리를 채우지 못했는데 이는 15년 연속 미달이었다. 교원 부족은 수업 질 저하로 이어졌다. 2024~2025학년도 공립 중등학교에서 예정된 수업의 9.8%가 펑크 났다. 프랑스어 등 대학 입시에 필수적인 핵심 과목이 3~4개월 넘게 교사 없이 방치되는 사례도 다반사다.
이번 시위는 프랑스의 만성적인 재정난에 공교육이 뒷전으로 밀리면서 수십년간 누적된 교사 부족과 교육 환경 악화에 대한 불만이 폭발한 결과로 분석된다. 교육 재정을 대대적으로 확충해야만 현 상황을 타개할 수 있지만, 역대 정부의 방만한 재정 운영으로 프랑스의 부채 규모는 국내총생산(GDP)의 113%에 육박한 상태다.
프랑스만이 아니다. 스페인에서는 70년 동안 살던 집에서 임대료가 230% 인상되어 쫓겨난 87세 노인이 끝내 숨진 사건이 발생하면서 스페인 전역의 분노가 폭발했다. 마드리드, 발렌시아, 바르셀로나 등 스페인 전역 50여 개 도시에서 임대료 제한과 투기 근절, 주거권 보장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와 노숙 농성이 이어졌다.
스페인 중앙은행에 따르면 현재 약 70만 채의 주택이 부족하며, 이 추세라면 2028년까지 100만 채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2025년 기준 주택 임대료는 전년 대비 8.5% 상승했으며(마드리드는 9.7% 상승), 청년층의 평균 월세는 1170유로 안팎으로 청년 평균 월급 약 1190유로의 98.7%에 달하는 심각한 수준이다.
스페인에서는 과거 부동산 거품 붕괴 이후 건설이 위축된 가운데, 복잡한 인허가 절차와 공사비 상승으로 신규 주택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실정인 가운데 관광객 유입 급증으로 도심 내 에어비앤비 등 수익성이 높은 단기 숙소 및 상업용 전환이 급증하면서 주거용 매물이 크게 줄었다. 스페인의 국가부채비율은 102%(2024년, IMF)로 높아서 재정도 투입여력이 없는 실정이다.
유럽연합(EU) 내 다른 나라와 기업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탈리아(133%)와 벨기에(104%) (2024년, IMF) 역시 국가부채 비율이 임계점에 이르렀다. 2011년 재정위기를 겪었던 그리스의 국가부채비율은 151%(2024년, IMF)로 이미 재정위기 수준이다. 포르투갈도 국가부채비율이 95%(2024년, IMF)로 높은 수준이다.
성장 엔진도 식고 있다. 유럽을 대표하는 자동차 제조업체인 폭스바겐은 최근 1년 새 독일 공장 두 곳에서 자동차 생산을 중단했다. 1937년 창립 이후 폭스바겐이 본국 생산시설 문을 닫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철강기업 티센크루프부터 화학기업 바스프까지 강도 높은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고질적인 재정난과 저성장, 정치 리더십 부재에 우크라이나전쟁과 이란전쟁이 겹치며 무너지고 있는 유럽 경제와 사회는 붕괴일로다. 이날 EU 통계청 유로스타트에 따르면 유로존(유로화 사용 21개국)의 8월 상품수지는 161억 유로(약 24조2100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1년 전(17억 유로 적자) 대비 적자 규모가 아홉 배 이상으로 급증했다. 주력 산업인 기계·자동차 수지가 1년 만에 72억 유로 흑자에서 7억 유로 적자로 돌아선 영향이 컸다. 같은 기간 에너지 수지 적자도 213억 유로에서 267억 유로로 불어났다. 에너지를 수입하고 공산품을 수출해 부를 쌓던 유럽의 무역 구조가 무너진 것이다. 저성장 추세는 고착화하고 있다. 최근 국제통화기금(IMF)은 유로존 경제 성장률을 올해 1.1%, 내년 1.2%로 전망했다.
이런 가운데 전형적인 사회주의적 정책이 지속되면서 사회와 정치는 퇴행하고 있다. 유럽 각국은 정부 지출의 40%에 육박하는 막대한 예산을 각종 복지에 쏟아부으며 근로 의욕 저하와 만성적인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다. 기업은 숨통을 죄는 EU의 과도한 규제와 에너지 고비용 구조에 공장을 닫거나 다른 대륙으로 탈출하고 있다. 하지만 국민 사이에선 재정개혁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거세다. 프랑스에서 시작된 대규모 시위는 벨기에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등 유럽 전역으로 확산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유럽의 사회주의 정책의 결과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유럽의 전후 성장 모델이 무너지고 있으며 과거 상태로 돌아올 가능성은 작다”며 근본적인 변화를 촉구했다. 라가르드 총재는 “유럽은 오랫동안 러시아의 값싼 에너지, 수출을 받아주던 거대한 중국 시장, 미국의 안보 우산이라는 세 기둥 위에 서 있었다”며 “지금 모두 흔들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첫 번째 기둥을 무너뜨렸다. 2021년 EU 가스·액화천연가스(LNG) 수입량의 45%를 차지한 러시아산 비중은 지난해 12%로 떨어졌다. EU는 러시아산 LNG 수입을 내년 1월부터, 파이프라인 가스는 내년 9월 30일부터 전면 금지하는 법을 올해 1월 확정했다. 빈자리는 미국산 LNG가 채웠다. 가스값 급등은 제조업 비용 상승과 수익성 저하로 이어졌다. 독일 연방통계청에 따르면 화학, 금속, 유리 등 에너지 다소비 업종의 생산은 2022년 2월부터 올해 3월까지 15.2% 감소했다. 이들 업종 종사자는 같은 기간 5만3200여 명 줄었다.
두 번째 축은 중국 시장이다. 유럽 기업은 1990년대 이후 20여 년간 중국의 고성장에 올라타 기계와 자동차, 화학제품을 팔았다. 하지만 최근 이런 흐름이 뒤집혔다. 유로스타트에 따르면 지난해 EU의 대중국 수출은 1996억 유로로 전년 대비 6.5% 줄었다. 중국산 수입은 6.4% 늘어난 5594억 유로였다.
타격이 가장 큰 나라는 독일이다. 독일의 지난해 대중 수출은 813억 유로로 10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내려앉았다. 핵심은 자동차다. 독일경제연구소(IW)에 따르면 독일 자동차·부품의 대중 수출은 2022년 약 300억 유로에서 지난해 140억 유로 미만으로 반 토막 났다. 지난해에만 30% 이상 줄었다.
이에 비해 중국은 유럽 안방을 파고들었다. 시장조사업체 이노베브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이 EU에 수출한 승용차는 62만 대에 달했다. 유럽자동차제조협회(ACEA)에 따르면 올해 1~4월 EU 신차 등록에서 중국 브랜드 점유율은 약 6%로 1년 전(3.2%)의 두 배가 됐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의 안보를 책임진 미국도 역할을 바꾸고 있다. 미국은 지난 5월 독일 주둔 병력 약 5000명을 6~12개월에 걸쳐 철수하겠다고 발표했다. 미 전쟁부(국방부)는 유럽 주둔 병력 약 8만명 중 2만5000~4만명을 줄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의 군사적 위협 수위는 높아지고 있다. 이는 유럽 각국 정부의 재정적 부담을 가중시키는 요인이다. 유럽방위청(EDA)에 따르면 EU 27개국의 국방비는 올해 4540억 유로(약 682조6400억원)로 작년 4180억 유로 대비 8% 급증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은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2.2% 수준인 국방비를 2035년까지 GDP의 3.5%로 높이기로 했다. 마리오 드라기 전 ECB 총재는 “유럽의 거대한 자기만족 시대는 끝났다”며 “근본적인 변화와 민간·공공의 투자 혁신 없이는 느리고 고통스러운 쇠퇴를 피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이런 가운데 한국 정부는 내년 예산안을 전년대비 12.8% 늘어난 역대 최대인 820조9000억원으로 확정했다. 총액과 증가율 모두 역대 최대다. 올해 본예산보다 10% 이상 늘어나는 규모다. 재정경제부는 9월 1일 발표한 ‘2027년 국세수입 예산안’에서 내년 국세수입 예산을 올해(415조4190억원)보다 40.7% 증가한 584조3626억원으로 편성했다. 법인세가 늘어나는 영향이 크다. 내년 법인세 전망치는 216조6919억원으로 올해(101조3215억원)보다 115조3703억원(113.9%) 증가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주요 반도체 대기업의 세전 이익이 급증할 것이란 전망이 반영됐다.
소득세 수입은 올해(136조8179억원) 대비 43조1943억원(31.6%) 늘어난 180조122억원으로 추산했다. 취업자 증가와 임금 상승, 성과급 확대 등으로 근로소득세 수입 전망치가 올해(73조2482억원)보다 29조1964억원(39.9%) 불어난 102조4446억원으로 집계됐다. 부가가치세는 민간소비 증가와 수입 확대로 올해보다 4조7672억원(5.5%) 늘어난 91조3711억원이 걷힐 것으로 예상했다.
올해 세수가 예상보다 50조원 이상 더 걷힐 것으로 전망되면서 내년에 신설되는 미래대응기금(미래기금) 규모를 162조3000억원으로 추산하고 있다. 기금 적립액은 최근 10년 내국세 추세선을 웃돌아 당초 예상보다 더 걷힐 것으로 전망되는 '추가세수'를 주요 재원으로 한다. 그러나 상당수 전문가들은 일회성 초과세수로 기금 규모를 키우기보다는 국채 상환에 써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부는 미래기금이 일종의 '재정 저수지'로 성장동력 발굴 또는 세수 부족 상황에 대응할 것이라고 설명한다. 단순 투자기금이 아니라 재정안정화기금 성격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국가채무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초과세수를 기금으로 적립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이 있다. 기금은 예산에 비해 정부 재량이 커 정치적 목적에 활용될 위험이 높다. 초과세수로 바로 국채를 상환하는 것이 더 간편하고 투명할 수 있다.
미래대응기금의 첫 과제는 정부가 더 쓰고 싶은 유혹을 막는 데 있다. 그 성패는 얼마를 썼는가가 아니라, 반도체 경기가 꺾일 때를 대비해 얼마를 충분히 남겨두었는가로 평가해야 한다. 일시적 세수를 영구적 지출로 전환하지 않을 때, 미래대응기금은 이름 그대로 미래를 위한 기금 역할을 할 수 있다.
더구나 한국의 국가부채는 이미 낮은 수준이 아니다. 2028년에는 국가채무가 1500조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지난 2022년 1000조원을 돌파한 지 불과 6년 만이다. 국가채무 증가 속도도 빨라지고 있다. 지난 2014년 처음으로 500조원을 돌파한 뒤, 8년 만인 2022년 1000조원에 도달한 후 불과 6년 만에 1500조원을 넘는 것이다. 실질적인 나라살림을 보여 주는 관리재정수지는 내년 77조7000억원 적자를 보일 전망이다. 올해 91조6000억원 적자보다 규모가 작지만 여전히 큰 규모의 재정적자를 이어가는 셈이다. 2024년에서 2028년까지 연평균 재정수입 증가율은 4.6%이다. 같은 기간 정부가 임의로 조절할 수 없는 의무지출 증가율은 5.7%에 달한다. 의무지출은 인구구조 변화로 인해 연금 지출 및 지방교육재정 교부금 등이 포함돼 있어 가파르게 증가하는 상황이다.
더구나 한국의 국가채무(government liability)는 좁은 의미의 국가채무로 미국 일본 등이 사용하고 있는 넓은 의미의 국가부채(government debt)와도 포괄범위가 다르다. 한국도 IMF가 권장하고 있는 국가부채 기준으로는 매우 위험한 수준이다. 지금은 세수가 늘어나면 국가부채를 줄여나가 재정의 건전화를 도모해야 하는 상황이다.
재정의 건전화는커녕 대규모 예산 집행은 물가를 더 자극할 수밖에 없다. 한국은행은 두 달 연속 기준금리를 올리며 긴축으로 돌아선 상태다. 내년 1분기 기준금리가 3.5%에 이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금은 ‘성장 보릿고개’”라며 재정 확대 기조를 고수하고 있다. 정부가 재정을 풀어 물가를 자극하면 통화 당국은 물가를 잡기 위해 고금리 기조를 장기화할 수밖에 없다. 그 부담은 가계와 기업이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 통화·재정정책 엇박자가 초래할 대외 신뢰도 하락도 경계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행이 이례적으로 두 달 연속 기준금리 인상에 나선 상황에서 글로벌 고금리 ‘쓰나미’까지 몰아치면 기업은 물론이고 2000조원이 넘는 부채를 끌어안은 가계에 직격탄이 우려된다. 지금은 재정을 동원한 성장보다 규제를 혁파하고 과중한 상속세 등 세부담을 줄여주고 노란봉투법 등 반기업법들을 개정하는 등 성장동력 확충이 시급한 때다. 정부는 무리한 돈 풀기를 자제하고 안정적 통화 관리를 위해 한은과의 정책 공조에도 나서야 한다.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경제학과 ▷맨체스터대 경제학 박사 ▷서울과학종합대학원 석좌교수 ▷한국국제금융학회장 ▷고려대 경제학과·건국대 금융IT학과 교수 ▷자유시장연구원장 ▷서울지방시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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