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이 국가의 행정과 판단 안으로 들어오고 있다. 복지·재난·교통·민원에서 경찰·수사와 규제까지 영역도 빠르게 넓어지고 있다. '김정래의 AI 국가론'은 AI를 기술의 문제가 아닌 국가의 능력과 책임의 문제로 바라본다. 국내외 실제 사례와 데이터를 통해 AI가 행정을 얼마나 바꿀 수 있는지 검증하고, 공무원과 조직은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 살핀다. 나아가 AI가 공권력과 국민의 관계를 어떻게 바꾸는지 짚고,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어떤 역할을 맡아야 하는지 묻는다. 목표는 AI를 경계하는 국가가 아니라 AI를 제대로 사용할 줄 아는 국가다. [편집자주]
교통체증을 줄이려면 도로부터 넓혀야 할까.
차량이 늘어나면 도로를 넓히고 새로운 도로를 만드는 것이 전통적인 교통정책이었다. 하지만 도심의 도로를 계속 확장하기는 어렵다. 땅과 예산이 필요하고 공사에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AI는 다른 방법을 제시한다. 도로를 더 만드는 것이 아니라 차량의 흐름을 읽고 신호를 바꾸는 것이다.
싱가포르가 실험하고 있는 차세대 교통신호 시스템 ‘CRUISE(Co-operative Unified Smart Traffic System)’가 대표적이다. 싱가포르 과학기술연구청(A*STAR)이 육상교통청(LTA)과 함께 개발한 AI 기반 차세대 교통신호 제어 시스템이다.
싱가포르 정부가 2024년 공공부문 혁신성과를 평가해 공개한 ‘Borderless Award’ 자료에 따르면 CRUISE는 2024년 5월 현장시험에서 첨두시간대 통행시간을 약 14% 줄였다. 싱가포르 정부는 이를 토대로 교통혼잡에 따른 경제적 손실을 연간 약 4억9000만 싱가포르달러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추산했다. 교통사고 상황을 가정한 시뮬레이션에서는 기존 신호체계보다 지체시간이 50% 감소했다.
도로를 새로 만든 것이 아니다. 같은 도로에서 신호 운영을 바꿨다. 실험은 계속되고 있다. 싱가포르 교통부는 2026년 8월 4일 의회 답변에서 CRUISE를 현재 시범운영 중이라고 밝혔다. 차세대 전자식 도로요금 체계인 ERP 2에서 확보되는 데이터까지 활용해 교통신호를 동적으로 최적화하는 실험도 진행하고 있다. 일부 도로에서 확인된 효과가 도시 전체에서도 나타날지는 더 검증해야 한다.
AI가 교통에 개입하는 방법은 하나가 아니다. 구글의 ‘Project Green Light’는 AI가 직접 신호등을 제어하지 않는다. 구글 지도에서 축적된 교통 데이터를 AI로 분석해 신호시간을 어떻게 조정할지 교통당국에 제안한다. 담당자가 이를 검토해 기존 신호체계에 반영한다.
구글 리서치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Green Light는 2023년 출시 이후 전 세계 100개가 넘는 도시로 확대됐다. 구글의 초기 분석에서는 신호 대기 정차를 최대 30%, 교차로의 온실가스 배출을 최대 10% 줄일 잠재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이는 구글 자체 분석 결과다.
싱가포르와 구글의 방식은 다르다. CRUISE는 AI와 데이터를 이용해 신호를 동적으로 최적화하고, Green Light는 AI가 최적화 방안을 제안해 사람의 판단을 돕는다. AI가 교통신호 운영에 개입하는 방식에도 여러 단계가 있는 셈이다.
한국에서는 안양이 AI를 실제 교통신호 운영에 활용하고 있다. 안양시는 안양대로와 관악대로, 시민대로 등 주요 도로에 ‘스마트교차로’를 도입했다. 교차로 진입 방향별로 설치한 AI 카메라가 차량을 검지·추적하고 이를 교통공학 데이터로 가공한다. 이 데이터를 토대로 최적 신호를 산출해 실시간으로 신호를 제어한다.
안양시에 따르면 주요 3개 도로축의 평균 지체시간은 54초에서 50초로 7.4% 감소했다. 평균 통행속도는 시속 19.0㎞에서 19.7㎞로 3.7% 빨라졌고 평균 통행시간은 578초에서 563초로 2.6% 줄었다.
제주에서도 데이터를 이용한 신호 최적화 효과가 확인됐다. 제주도와 한국도로교통공단 제주지부는 2024년 7~8월 연북로 6.8㎞ 구간의 교통량을 분석해 시간대별 최적 신호주기인 TOD(Time of Day)를 적용했다. 2024년 9월 한국도로교통공단 제주지부의 ‘교통혼잡구간 신호체계 효율성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통행속도는 시속 19.2㎞에서 21.9㎞로 14% 빨라졌고 1㎞당 지체시간은 112초에서 88초로 21.4% 줄었다. 연간 경제적 비용 절감 효과는 16억8700만원으로 분석됐다.
안양과 제주의 방식은 다르다. 안양은 AI가 실시간 교통 흐름을 읽어 신호를 제어하고, 제주는 교통량을 분석해 시간대별 신호주기를 최적화했다. 기술은 달라도 방향은 같다. 새로운 도로를 만드는 대신 이미 있는 도로를 더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AI 시대에는 도로의 폭만큼 운영의 능력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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