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오랜 경험과 반복으로 체득한 인간의 암묵지까지 대체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어떻게 보면 여러 일자리에 새로운 기회다."
이병훈 한국산업인력공단 이사장의 말이다. AI가 일자리를 없앨 것이라는 공포가 크지만 더 중요한 변화는 따로 있다. 직업은 사라지기보다 그 내용이 바뀌고 있다.
대한민국 직장인에게 필요한 것은 AI와 경쟁하는 법이 아니라 AI와 함께 일하는 법을 다시 배우는 것이다.
그러나 질문을 바꿔야 한다. AI가 내 직업을 없앨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바꿀 것인가다. AI가 회계사를 모두 없애지는 않는다. 다만 AI를 쓰는 회계사와 그렇지 못한 회계사의 생산성 격차는 벌어질 것이다.
공장도 마찬가지다. 기계를 다루는 능력에 데이터와 AI로 공정을 개선하는 능력이 더해진다. AI는 직업의 종말보다 직무의 재편을 먼저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
이 지점에서 한국산업인력공단의 역할이 커진다. 국가자격시험과 직업능력개발, 숙련기술 진흥을 맡아 온 공단에 근로자가 자기 일에 AI를 쓰도록 다시 가르치는 임무가 더해졌다.
공단은 올해 중소기업 AI훈련확산센터 10곳을 선정해 AI 훈련을 산업현장으로 가져가고 있다. AI훈련코치와 공단 전담인력 등 약 500명이 2만5000개 기업을 찾아간다는 계획이다.
전문가가 먼저 현장을 찾아 회사가 어떤 일을 하는지, AI를 어디에 쓸 수 있는지, 직원에게 어떤 교육이 필요한지 진단하고 이를 훈련계획과 실제 교육으로 잇는다. "우리 회사는 AI를 어디에 써야 합니까"라는 질문부터 함께 푸는 셈이다.
중소기업에 특히 필요한 지원이다. 대기업은 자체 AI 조직을 꾸리고 외부 전문가를 영입할 수 있지만 직원 수십 명의 중소기업은 AI 전문가를 따로 두기 어렵다. 최고경영자가 AI를 도입하고 싶어도 무엇부터 할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AI 격차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생산성 격차로 번져서는 안 된다.
공단은 AI 특화 공동훈련센터 20곳을 통해 대기업과 대학, 연구기관의 시설과 전문성을 중소·중견기업 재직자에게 개방하고 있다. 반도체, 자동차, 바이오, 조선, 로봇 등 지역 주력산업에 맞춰 AI를 실제 업무에 쓰는 법을 가르친다.
핵심은 이론이 아니라 현장이다. 제조현장이라면 AI로 불량을 예측하고, 데이터를 분석해 대시보드를 만들고, 반복 업무를 자동화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중소기업 AX 현장훈련'도 같은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AI 솔루션 기업이 중소기업 현장을 찾아 기술 적용과 직원 교육을 함께 진행한다. 교육장에서 배우고도 회사로 돌아가면 쓰지 못하는 문제를 줄이려는 것이다.
비용 장벽도 낮췄다. '중소기업 인재 키움 프리미엄 훈련'은 훈련비의 90% 이상을 지원하고, 비수도권 훈련은 최대 95%까지 지원한다.
더 중요한 것은 청년이다. 공단은 신규 시범사업으로 '청년 AI 첫 경력지원 사업'을 추진한다. AI 분야 청년 750명이 기본 1년, 최대 2년 동안 실제 업무경력을 쌓도록 돕는 구상이다. 기업은 경력자를 원하는데 청년은 취업을 못 해 경력을 만들 수 없는 '경력의 역설'을 공공이 일부라도 풀어 보려는 시도다.
AI 시대 인재정책은 대학에서 전공자를 많이 배출하는 데서 끝나서는 안 된다. 첫 현장을 경험하게 하고, 취업한 뒤에도 새 기술을 익히게 하고, 산업이 바뀌면 다시 훈련받게 하는 교육-취업-재교육의 순환구조가 필요하다.
그렇다고 모두가 AI 개발자가 될 필요는 없다. 이 이사장이 국제기능올림픽을 계기로 강조한 숙련기술에 주목해야 한다. 용접공의 손끝 감각, 기계의 작은 진동과 소리에서 이상을 잡아내는 정비기술자의 경험, 불의 세기를 다루는 조리사의 감각은 매뉴얼 몇 장으로 옮기기 어렵다.
수년간 몸에 쌓인 지식이다. 앞서 소개한 이병훈 이사장의 말처럼 AI가 이런 암묵지를 대체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리고, 그사이 숙련기술의 가치는 오히려 커질 수 있다.
다만 숙련기술도 제자리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전기 굴착기와 전동 지게차가 보급되면 정비기술자는 고전압 시스템을 새로 배워야 한다. 기업이 필요한 역량을 직접 정의하고 교육과 자격으로 연결하는 자격 제도가 중요한 이유다.
AI로 수천 개의 문제은행을 만들고 CBT 필기시험과 실기평가로 직무역량을 검증하는 기업도 나오고 있다. AI가 사람의 능력을 빼앗는 도구가 아니라 키우고 평가하는 도구로 쓰이는 것이다.
AI가 새 문제를 만들기도 한다. 스마트안경 같은 AI 기기가 국가자격시험 부정행위에 쓰일 위험이 커지자 공단은 모의훈련을 실시하고 전파탐지기와 CCTV 등 대응체계를 점검하고 있다.
AI로 가르치고 평가하는 시대에 AI를 이용한 부정행위까지 막아야 하는 역설이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국가자격의 공정성과 신뢰를 지키는 일은 더 중요해진다.
공단 스스로도 바뀌고 있다. AI 기반 디지털 채점 시스템 등 중장기 AI 전환 과제를 추진하고, 직원들이 생성형 AI를 업무에 적용하는 'HRDK AI Lab'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국민에게 AI를 배우라고 하면서 공공기관이 옛 방식으로 일할 수는 없다.
공단의 AI 대전환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가 '재교육'이다. 과거에는 학교에서 배운 기술 하나로 수십 년을 일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평생 여러 번 능력을 업데이트해야 한다. 국가 인재정책도 실직한 뒤 재교육하는 사후대책에서, 일하는 동안 다음 기술을 배우게 하는 예방적 정책으로 바뀌어야 한다.
두려움만으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사람이 AI보다 잘하는 것을 찾고, AI로 생산성을 높이고, 새 기술이 나올 때마다 다시 배울 기회를 가져야 한다. AI 시대의 경쟁력도 결국 사람에게서 나온다.
직장인 누구나 일터에서 AI를 배우고, 숙련기술에 AI를 더하고, 필요할 때 다시 교육받을 수 있는 나라.
이병훈 이사장이 이끄는 한국산업인력공단의 AI 대전환이 향해야 할 곳이다.
:이병훈 한국산업인력공단 이사장:
노동시장과 노사관계를 연구해 온 학자다.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코넬대에서 노사관계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공공상생연대기금 이사장, 경제사회노동위원회 공공기관위원회 위원장 등을 지냈다.
2026년 6월 제17대 한국산업인력공단 이사장에 취임해 직업능력개발과 국가자격, 숙련기술 진흥을 총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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