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기고] AI 주권, AI 인프라부터 자생력을 확보해야

  • 이제 '풀스택 자립'으로 승부해야

황동현 한성대학교 특임교수
황동현 한성대학교 특임교수

인공지능(AI) 경쟁의 판이 바뀌고 있다. 인간의 질문에 답하는 생성형 AI에서 스스로 계획하고 업무를 수행하는 에이전틱 AI, 다시 로봇·자동차·공장 등 현실세계에서 직접 행동하는 피지컬 AI로 진화하면서 경쟁의 범위도 넓어졌다. 생성형 AI 중심의 ‘AX 1.0’을 넘어 에이전틱 AI와 피지컬 AI가 주도하는 ‘AX 2.0’으로 정의되고 있다. 

AX 2.0 시대의 국가 경쟁력은 AI 모델 성능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반도체와 그래픽처리장치(GPU), 이를 효율적으로 운용하는 소프트웨어, AI 데이터센터, 전력과 통신망, 클라우드, 그리고 AI 모델까지 전 과정을 얼마나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연결하느냐가 중요하다. 말 그대로 ‘AI 풀스택 국가 경쟁력’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한국도 ‘AI 3대 강국’을 목표로 GPU 확보와 국가 AI컴퓨팅센터 구축, 독자 AI 모델 개발 등에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방향은 맞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냉정하게 질문해야 한다. GPU는 엔비디아, GPU를 운용하는 핵심 소프트웨어와 클라우드는 글로벌 빅테크, 데이터센터의 주요 솔루션도 해외 기업에 의존하는 구조라면 과연 그것을 온전한 AI 주권이라고 할 수 있을까. 

모든 기술을 국산화하고 해외 기술을 배제하자는 의미는 아니다. 글로벌 분업 시대에 현실적이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핵심은 각 레이어마다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을 확보하는 것이다. 그래야 공급망이 흔들리거나 가격과 라이선스 정책이 바뀔 때 협상력을 가질 수 있고, 국가적으로 중요한 데이터와 연산에 대한 최소한의 통제력도 확보할 수 있다. 

다행히 국내에서도 이러한 자립 생태계를 만들려는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첫째는 하드웨어 레이어다. AI 컴퓨팅의 핵심은 아직 엔비디아 GPU와 CUDA 생태계가 압도적이지만, 리벨리온과 퓨리오사AI 등 국내 AI 반도체 기업들이 자체 국산 신경망처리장치(NPU) 개발과 상용화에 도전하고 있다. 모든 AI 연산을 최고가 GPU로 처리할 필요는 없다. 앞으로 AI 활용의 중심이 학습에서 추론으로 확산될수록 전력 효율과 가격 경쟁력이 높은 국산 NPU가 확보할 수 있는 시장도 커질 것이다. 

둘째는 가상화와 소프트웨어 레이어다. 국산 AI 반도체를 개발해도 이를 운용하는 가상화·클라우드 소프트웨어를 해외 제품에 전적으로 의존한다면 기술 종속은 여전히 남는다. 오케스트로와 엘리스그룹 등 국내 기업들이 클라우드·GPU 자원관리와 가상화 기술을 자체 개발하는 이유다. 값비싼 GPU를 얼마나 많이 확보했느냐 못지않게, 이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배분하고 활용하느냐가 AI 인프라 경쟁력이다. 

셋째는 물리적 인프라 레이어다. 이 분야에서도 새로운 대안이 등장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모듈형 AI 데이터센터다. GPU 서버와 네트워크, 전력, 냉각설비를 하나의 모듈에 통합해 필요한 장소에 신속하게 구축하고 수요에 따라 확장하는 방식이다. 엘리스그룹의 경우 K-PMDC를 국내 기술로 설계·구축하고, 스탠다드에너지·동국홀딩스·GS벤처스 등 국내 기업들과의 협업을 통해 부지·전력·자본까지 연결하는 토종 AI 인프라 모델을 추진하고 있다. 

넷째는 AI 모델 레이어다. 정부가 추진하는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 사업에는 LG AI연구원, SK텔레콤, 업스테이지 등 국내 기업들이 참여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단지 ‘한국산 LLM 하나’를 만드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학습데이터의 주권, AI 반도체와 추론 인프라, 실제 산업현장 적용까지 연결되는 전 주기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 AI 모델 자립도 결국 앞선 세 개의 레이어가 뒷받침돼야 지속 가능하다. 

AI 주권 경쟁은 LLM 하나의 경쟁이 아니다. 반도체라는 ‘두뇌의 기반’, 이를 효율적으로 움직이는 소프트웨어, 실제 연산이 이루어지는 데이터센터, 그리고 그 위에서 작동하는 AI 모델이 하나로 연결돼야 한다. 어느 한 층이라도 완전히 외부에 종속되면 전체 AI 생태계의 전략적 자율성은 약해질 수밖에 없다. 

물리적 AI 인프라의 중요성에 더 주목할 필요도 있다. AI 모델은 바꿀 수 있지만 데이터와 연산이 실제로 이뤄지는 인프라는 국가와 기업의 장기적 경쟁력을 좌우한다. 대형 AI 데이터센터와 함께 PMDC 같은 분산형·모듈형 인프라가 지역 산업단지와 대학, 연구 기관, 중소기업으로 확산된다면 AI 컴퓨팅의 진입장벽을 낮추는 동시에 국내 AI 생태계의 저변도 넓힐 수 있다.

정부의 AI 정책 역시 GPU 몇 장을 확보했는지, 얼마짜리 데이터센터를 유치했는지만으로 성과를 평가해서는 안 된다. 국산 AI 반도체가 실제 현장에서 얼마나 사용되는지, 국내 소프트웨어가 얼마나 많은 GPU를 효율적으로 운영하는지, 국내 기술로 구축된 AI 인프라가 얼마나 확산되는지, 그리고 그 위에서 한국의 AI 모델과 산업 서비스가 얼마나 성장하는지를 함께 살펴야 한다. 

AI 주권은 모든 것을 우리 손으로 만들겠다는 폐쇄적 자립이 아니다. 필요한 순간에 우리 스스로 선택하고 운영할 수 있는 기술과 인프라를 확보하는 ‘전략적 자율성’이다. 한국이 미국이나 중국과 자본의 규모로 정면 승부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반도체와 HBM, 소프트웨어, 통신망, 데이터센터, 제조업이라는 강점을 연결한다면 ‘AI 3대 강국’을 충분히 만들 수 있다. 

AI 인프라를 ‘빌려 쓰는 나라’에서 ‘스스로 설계하고 만드는 나라’로 전환해야 한다. 한국의 AI 주권은 바로 그곳에서 시작된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댓글0
0 / 300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