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언론시사회 때 미묘한 기분을 느꼈어요. 제가 기자 역할을 맡았는데 기자분들을 첫 관객으로 만나게 된 거잖아요. 앞으로도 이런 경험을 또 해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첫 관객과의 만남 자체가 흥미로웠어요. 기자분들이 어떻게 보셨을지 더 궁금했고요. 이번만큼은 기사들도 많이 챙겨보고 싶은 작품 중 하나가 된 것 같아요."
'덕혜옹주' 이후 약 10년 만에 다시 만난 허진호 감독의 제안도 반가웠다. 더욱이 '암살자(들)'은 박해일이 4년 만에 영화로 돌아오게 한 작품이다.
"감독님이 '작품 한 번 같이 다시 하자'고 하시면서 책을 주셨죠. 다시 함께했던 감독님이 나라는 배우를 또 찾아준다는 건 되게 고마운 일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어요. 저에게 맡기실 역할은 무엇일까, 어떤 작품일까 궁금했고요. 읽어보니 이 작품을 하려고 4년을 기다렸나 싶을 정도로 호기심이 생겼던 시나리오였어요."
"그 시대의 기자든 현재의 기자든 구별을 두지 않고 접근할 방법이 무엇일까 생각했어요. 가장 보편적인 부분에 집중하고 나머지는 감독님의 영역에서 최대한 받고 따라가보자고 생각했죠."
기자를 체화하는 작업은 미술팀이 구현한 1970년대 신문사 공간에서 시작됐다. 박해일은 타이핑과 메모를 직접 해보고 동료 배우들과 기자팀으로 움직이며 기사 하나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익혀갔다.
"신문사 안에 정말 다양한 부서가 있다는 걸 처음 알았고, 편집부까지 넘어가는 과정도 생각보다 어려운 공정을 거치더라고요. 그런 설명을 들으면서 공간을 움직여보고, 배우들과 한 부서가 돼 타이핑도 쳐보고 메모도 해봤어요. 재환은 그 공간에서 폭발하는 역할이잖아요. 그래서 가장 자연스러운 신문사 사람처럼 보이는 게 중요했어요. 관객들이 이 직종의 모습을 설득력 있게 믿게 해야 한다는 게 가장 큰 과제였던 것 같아요."
1974년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한 작품인 만큼 접근에는 조심스러움도 따랐다. 당시를 직접 경험하지 않은 박해일은 자료와 허 감독의 기억을 통해 조금씩 그 시대의 공기를 이해해갔다.
"저는 태어나기 전의 사건이고 그 시대를 직접 겪은 사람도 아니에요. 처음에는 이런 큰 사건이 있었구나 정도로 알고 있었는데 허진호 감독님의 제안을 통해 다시 시간을 돌이켜보게 됐어요. 자료도 찾아보고 시나리오를 놓고 충분히 이야기를 나눴고요. 그때 살았던 사람들의 경험이나 감독님이 바라봤던 시대의 이야기를 들으며 조금씩 들어갔던 것 같아요. 결국 작품 안에서는 시나리오가 저한테 내비게이션이었어요."
신문사는 영화의 또 다른 중심축이다. 기자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움직이다 거대한 사건 앞에서 한 방향으로 달려가는 과정은 재환이라는 인물을 설명하는 데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신문사 안에서의 장면들은 진짜 잘해내고 싶었어요. 그 시대 안에서 각자 다른 직책을 가진 사람들이 한 공간에서 움직이는 모습이 너무 재미있을 것 같았거든요. 단역 배우분들, 지나가는 보조출연자분들까지도 다 인사를 했어요. 우리는 오래된 관계이고 기사라는 결과물이 나오기까지 유기적으로 맞물려 가는 톱니바퀴 같은 존재라고 생각했어요. 큰 사건이 터졌을 때 모두가 집중해 달려드는 속도감을 만들고 싶었어요."
그 흐름이 가장 뜨겁게 폭발하는 순간은 자유언론실천선언 장면이다. 줄곧 감정을 절제하던 재환이 동료 언론인들과 함께 목소리를 높이는 대목으로 박해일 역시 시나리오를 처음 받았을 때부터 이 장면을 염두에 두고 감정을 쌓았다.
"책을 받았을 때부터 전사들을 잘 겪고 차곡차곡 쌓아뒀다가 설득력 있게 전달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잘못하면 관객에게 부담을 줄 수도 있는 장면이라 감독님이 톤 조절을 잘해주신 게 고마웠고요. 함께한 배우분들부터 보조출연자, 단역 배우분들까지 똑같은 온도로 준비해주고 계셨어요.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도움을 많이 받고 있다는 느낌도 들었죠. 그래서 그대로 느끼고 읽어보자고 했어요. 말도 조금 씹고 매끄럽지 않은 부분이 있는데, 그 상황에서 또박또박 읽는 것도 이상했을 것 같아요. 감독님도 그 날것의 느낌이 좋다고 해주셨어요."
후반부로 갈수록 영화의 온도는 뜨거워지지만 재환의 연기는 상대적으로 담백하다. 박해일은 책임감 있는 중견 기자를 훈계하거나 가르치려는 인물로 만들지 않는 것도 중요하게 생각했다.
"감독님은 절제된 연출적 톤과 정갈하고 담백한 느낌을 원하시는 분이라고 생각해요. 저도 책임감 있는 중견 기자라는 역할을 맡았을 때 훈계하거나 가르치려 드는 교조적인 태도에서는 자유로워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사회부 책상에 팀원들이 수평적으로 앉아 각자 취재한 자료와 증거를 털어놓고 퍼즐을 맞춰가는 과정이 흥미로웠어요."
허진호 감독과 두 번째 작업이라는 반가움 뒤에는 이전의 모습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는 부담도 있었다. '덕혜옹주'에서 이미 자신의 것을 꺼내 보인 만큼 새로운 차이를 만들어야 한다는 책임감이었다.
"'답습하지 않아야 한다'는 단어를 제가 쓴 건 사실이고 조심하고 싶었던 문제이기도 했어요. 한 감독님과 두 작품을 한다는 건 반가운 일이지만 반가움만큼 부담도 생기거든요. 한 작품에서 제가 가진 모든 걸 던졌는데 또 무언가를 긁어내서 새로움을 보여줘야 한다는 책임감 같은 게 있었어요."
그가 찾은 차이는 '속도'였다. '덕혜옹주'와 달리 사건을 빠르게 좇는 '암살자(들)'의 리듬에 맞춰 자신의 연기 역시 속도감을 더했다.
"'덕혜옹주'에서 인물을 다루는 방식과 이번 영화의 리듬감, 속도감은 분명히 나뉘어 있다고 봤어요. 그래서 속도감을 가져가자고 생각했죠. 갈수록 감독님의 리듬감이 진화하고 계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저도 좀 더 속도감 있는 연기를 보여드리고 싶었고요."
실제 사건을 기억하는 관객들에게 영화가 특정한 해석을 전달하려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다만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한 만큼 영화를 계기로 당시의 기억을 다시 떠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봤다.
"목적성을 두고 보여드리려는 작품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우리는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하나의 창작 스릴러, 추적극 드라마잖아요. 하지만 사건의 소재는 팩트이기 때문에 그 사건을 직간접적으로 느끼셨던 분들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떠올리시지 않을까 싶어요. 그런 계기를 드릴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 한국 영화가 동시에 관객과 만나는 추석 극장가에 대해서는 경쟁보다 반가움이 앞섰다. 박해일은 각 작품의 성격이 겹치지 않는다는 점을 두고 "좋은 상차림"이라고 표현했다.
"제가 기억하는 과거의 추석 극장가는 한국 영화가 최소 3~4편씩 존재하는 풍성한 계절이었어요. 코로나를 지나면서 영화 한 편이 개봉하는 상황도 많아졌는데 올해 다시 한국 영화가 풍성해졌어요. 다행히 영화들의 성격이 겹치지 않는다는 점도 좋은 상차림이라고 생각합니다."
'암살자(들)'만의 매력으로는 다양한 배우들의 앙상블과 추적극 특유의 빠른 호흡을 꼽았다. 어느 인물을 따라가느냐에 따라서도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다고 자신했다.
"다양한 배우들이 나오는 게 어필할 수 있는 지점 중 하나인 것 같아요. 추적극 스릴러라는 장르 덕분에 빠른 호흡과 리듬으로 그 시대를 따라갈 수도 있고요. 재환이라는 기자의 시선으로 따라가도 재미있고, 유해진 선배가 맡은 철구의 시선으로 따라가도 또 다른 재미가 있을 거예요. 엔딩 타이틀, 쿠키 영상, 마지막 자막까지 다 보고 나왔을 때 느껴지는 부분도 다른 영화들과 차이가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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