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9월 12~13일 브릭스(BRICS)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뉴델리를 방문한다. 이번 방문의 상징적 의미는 정상회의 자체를 넘어선다. 시 주석의 인도 방문은 2019년 나렌드라 모디 총리와의 비공식 정상회담 이후 처음이며, 2020년 국경 충돌로 아시아의 두 거대 국가 관계가 수십 년 만에 최악으로 악화된 이후에도 처음이다.
이번 방문을 인도·중국 관계의 ‘리셋’으로 해석하고 싶은 유혹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지나친 평가다. 현재 나타나는 변화는 화해도, 새로운 전략적 동반자 관계도 아니다. 오히려 양국은 정치적 관계를 안정시키고 경제적 연결을 유지하는 동시에 전략적 불신과 경쟁을 지속하는 ‘경쟁적 상호의존’의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이러한 구분은 중요하다. 2020년 국경 충돌은 중국을 바라보는 인도의 인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 인도군 20명이 사망했고, 이후 장기간의 군사적 대치가 이어졌다. 뉴델리는 중국 기업과 투자에 대한 규제도 대폭 강화했다. 이후 병력 철수 합의와 외교적 접촉 재개로 긴장이 완화됐지만, 히말라야 지역의 국경 분쟁은 여전히 양국 관계의 구조적 불안 요인으로 남아 있다.
변화는 이미 나타나고 있다. 인도와 중국은 직항편을 재개했고, 중국 기업인에 대한 비자 절차도 완화했다. 고위급 정치·경제 교류 역시 점차 복원되고 있다. 지난해 모디 총리와 시 주석은 국경 지역의 평화를 유지하고 인적·경제적 교류를 강화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양국 관계의 변화를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은 경제다.
뉴델리가 중국에 대한 전략적 의존도를 줄이려 하고 있음에도 중국은 여전히 인도 산업경제에 깊숙이 연결돼 있다. 전자, 재생에너지, 인프라, 제조업 등에서 인도는 중국산 기계와 부품, 중간재에 상당 부분 의존하고 있다. 여기에는 인도가 제조업 강국으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직면한 역설이 있다. 중국을 대체할 산업 기반을 구축하기 위해서도 중국산 투입재가 필요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인도 정부는 2020년 이후 도입했던 일부 규제를 선별적으로 조정하기 시작했다. 지난 3월 전자, 자본재, 태양광 분야를 중심으로 중국 투자에 대한 일부 제한을 완화했으며, 인도·중국 기업 간 합작투자의 승인 절차를 신속화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인도 딕슨 테크놀로지스와 중국 스마트폰 업체 비보의 제조 합작사업도 이미 승인을 받았다.
그렇다고 양국의 경제관계가 과거의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간 것은 아니다. 인도에서는 주요 중국 기업에 대한 엄격한 심사가 계속되고 있다. 뉴델리는 국가안보를 이유로 알리페이 관련 플랫폼을 인도의 실시간 결제 시스템과 연계하는 방안을 거부했으며, 다른 중국 기업들도 규제 당국의 감시를 받고 있다. 중국에서도 인도 기업들이 여러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다.
결국 무역과 안보를 명확하게 분리하기 어려운 관계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 양국 관계를 ‘디커플링’이나 ‘정상화’보다는 경쟁적 상호의존으로 설명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인도는 중국의 자본과 부품, 제조 역량을 활용하면서 전략적 의존은
제한하려 한다. 중국 역시 거대한 인도 시장을 중시하지만, 인도가 잠재적 경제 경쟁자로 성장하는 데 대해서는 경계한다. 결국 양국 모두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면서도 상호의존이 전략적 취약성으로 전환되는 것은 피하려 하고 있다.
시 주석의 방문은 더 큰 지정학적 변화 속에서도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인도와 중국의 관계는 미·중 경쟁 심화, 무역 갈등, 전쟁,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분리돼 있지 않다. 그렇다고 최근의 관계 개선이 인도가 중국의 지정학적 진영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뉴델리가 외교적 선택의 공간을 최대한 확보하려는 움직임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브릭스는 이를 가장 잘 보여준다. 회원국 확대를 통해 브릭스의 국제적 비중은 더욱 커졌으며, 이는 국제 거버넌스에서 더 큰 대표성과 발언권을 요구하는 신흥국들의 목소리를 반영한다. 그러나 브릭스를 단순히 ‘반서방 연합’으로 규정하면 내부의 복잡성을 놓치게 된다. 중국이 브릭스를 서구 중심성이 약화된 국제질서를 구축하는 플랫폼으로 바라본다면, 인도는 이를 다극화와 글로벌 사우스의 대표성을 확대하는 수단으로 활용하려 한다.
동시에 뉴델리는 서구의 지배를 중국의 지배로 대체하는 것에도 관심이 없다. 이는 인도가 추구하는 다중정렬(multi-alignment)을 통한 전략적 자율성과 연결된다. 뉴델리는 브릭스와 상하이협력기구(SCO)에서 중국·러시아와 협력하는 동시에
쿼드(Quad)를 통해 미국·일본·호주와 관계를 강화하고 유럽과의 협력도 확대하고 있다.
이는 외교적 모순이라기보다 특정 국가와의 관계가 인도 외교 전체를 규정하지 않도록 하면서 사안별로 다양한 국가와 협력하려는 전략이다. 따라서 시 주석의 뉴델리 방문을 인도가 ‘중국에 가까워지고 있다’거나 ‘서방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식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이러한 이분법적 시각으로는 오늘날 인도의 외교전략을 제대로 설명하기 어렵다.
인도와 중국은 여전히 전략적 경쟁국이다. 국경 분쟁과 역내 영향력 경쟁은 계속되고 있으며, 중국과 파키스탄의 전략적 관계에 대한 인도의 우려도 여전하다. 반대로 중국은 인도가 미국을 비롯한 인도·태평양 국가들과 전략적 협력을 확대하는 것을 주시하고 있다. 양국 간 신뢰 부족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경쟁 관계이기 때문에 오히려 외교는 더욱 필요하다. 시 주석의 이번 방문은 양국이 경쟁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경쟁이 양국 관계 전체를 지배하지 않도록 관리하려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앞으로 인도·중국 관계에서는 전략적 경쟁과 경제적
상호의존, 선택적 협력과 지속적인 정치 대화가 동시에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이는 향후 아시아 질서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 경직된 진영 간 대립이 아니라, 경쟁과 협력이 동시에 존재하는 중첩된 파트너십의 시대가 나타나고 있다.
라지브 쿠마르 필진 주요 이력
▷ India–Korea Forum (한-인도 포럼) 회장, 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학과 강사, ,
한국외국어대학교 인도연구소 초빙연구원·전 HK+ 연구교수, 전 미국
동서문화센터(East-West Center) 객원연구원, 인도 델리대학교 학사, 성균관대학교
정치외교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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