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차관부터 대통령비서실 정책실장, 국회 사무총장, 그리고 금융·국세·공정위를 아우르는 경제·사정당국 수장들까지. 변호사 자격이 없는 이들 최고위 공직자의 퇴직 후 단골 행선지는 대형 로펌이다. 법정에 서지도, 직접 변론을 맡지도 못하는 비(非)변호사 출신 관료들을 로펌들이 '고문'이나 '전문위원'이라는 이름으로 대거 영입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로펌들은 수십 년간 정부에서 축적한 정책 전문성과 행정 경험을 활용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한다. 복잡해진 정부 규제와 산업정책을 분석하고 기업의 의사결정을 돕기 위해서는 정부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이해하는 전문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역할 가운데 기업, 단체 등 의뢰인의 입장을 관계 부처와 국회에 설명하고 법령과 정책 변경을 설득하는 이른바 '대관(對官)' 업무가 포함되면 얘기는 달라진다. 미국 등에서는 통상 '로비' 영역에서 등록·공개 대상으로 관리하는 활동이 국내에서는 '고문'과 '정책자문'이라는 이름 아래 이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미국의 '연방 로비공개법'과 같이 '등록 로비스트' 제도를 통해 누가 누구를 만나, 누구의 돈을 받고, 어떤 법이나 정책을 바꾸려고 했는지를 공개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이와 관련해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2일 국무회의에서 로비스트 등록제 도입 검토를 공식 지시한 바 있다.
8일 아주경제 탐사보도팀은 국내 주요 10개 로펌(김앤장·태평양·광장·세종·율촌·화우·지평·바른·대륙아주·YK)의 비변호사 공직 출신 고문·전문위원을 전수조사했다. 모두 697명이며 이 중 장관·위원장급이 26명, 차관·청장급이 89명, 지방청장·공공기관장급이 138명, 국장·실장급이 149명 등이다. 변호사·외국변호사 등 법 관련 자격 보유자와 민간기업 경력자는 제외했다.
금융·경제 등 '규제 부처' 출신 압도적
이들의 출신 부처를 보면 경제·금융 분야 규제기관 출신이 압도적이다. 금융위원회 위원장 출신이 은성수(김앤장)·고승범(태평양)·최종구(화우)·김석동(지평) 등 4명이고,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 출신 노대래(세종)와 개인정보보호위원회 위원장 출신 윤종인(세종)도 포함돼 있다. 고용노동부 장관 출신 이기권(김앤장)·안경덕(광장)과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 출신 정종수(김앤장)도 이름을 올렸다. 기업과 분쟁이 잦고 인허가 권한이 집중된 부처일수록 로펌의 최우선 영입 타깃이 되는 경향이 뚜렷했다.
차관급도 비슷한 경향을 보였다. 김앤장에는 박원주·윤종원 전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비서관, 도규상 전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김재신 전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 안총기 전 외교부 제2차관 등이 이름을 올렸다. 세종에는 지철호 전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 윤형중 전 국가정보원 제1차장, 강도현 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2차관이, 광장에는 진웅섭 전 금융감독원장, 이성한 전 경찰청장, 박선호 전 국토교통부 제1차관이 자리했다. 화우에는 김덕중 전 국세청장, 태평양에는 임재현 전 관세청장과 조경식 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차관이 포함됐다.
전문가들은 실무를 주도하는 국장·실장급에 더 주목한다. 법안 초안을 쓰고 허가·승인 권한을 실질적으로 행사하는 것이 이 라인이기 때문이다. 로펌이 장관급을 '간판'으로 내세우더라도 실제 업무에서 실질적 영향력 행사는 국장·실장급 출신 네트워크를 통해 이뤄진다는 뜻이다.
장관은 간판, 국장·실장급이 실질적 영향력 행사
'고문'이든 '전문위원'이든 포괄적 자문 계약 아래 은밀하게 이뤄지는 접촉을 추적할 수단은 현행 제도상 전무하다. 법률 자문이라는 형식을 띠지만 실질적으로는 전관 네트워크를 활용한 행정·입법 대관 창구로 기능한다는 지적이 오래전부터 제기돼 왔다. 이창현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변호사 자격이 없는 분들까지 로펌에 고문이라는 이름으로 들어가 사실상 로비스트 역할을 하고 있다"며 "어떻게 보면 변호사법 위반인데, 그 관행을 정리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한 대형 로펌 관계자는 "로펌에 대한 기업들의 요구가 단순 소송·계약서 검토를 넘어 신사업 입법과 규제 완화 같은 컨설팅 차원 자문으로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전직 장차관이 해당 부처에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건 완전히 옛말"이라며 "그보다는 실무를 경험한 이들이 현직 실무진과 대화가 되니 논리적·행정적으로 설득하고자 고용하는 것"이라고 했다.
결국 이들 '전관 고문'을 음지에 두지 말고 제도권으로 끌어들여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 핵심 쟁점은 허용 범위, 즉 법률대리와 정책대리를 어떻게 나눌 것인가다. 수사 대응이나 소송 수행은 변호사 전담으로 두되 국회와 정부를 상대로 법·정책 개정을 촉구하고 산업계 의견을 전달하는 활동은 등록·공개를 조건으로 별도 전문직에도 허용하자는 논리다. 이 경계가 확립되면 전관뿐 아니라 회계사·세무사·산업 전문가도 '등록 로비스트'로 정책 시장에 공식 참여하는 길이 열린다. 다만 퇴직 직후 출신 기관을 상대로 한 로비를 제한하는 '냉각 기간' 장치는 핵심 조건으로 꼽힌다.
美, 등록 로비스트 1만2000명···활동 내역 공개돼
미국에서는 1995년 연방 로비공개법(Lobbying Disclosure Act·LDA)에 따라 로비 활동이 제도권 안에서 이뤄진다. 상원의원 출신은 2년, 하원의원 출신은 1년, 행정부 고위직은 1년간 '쿨링오프' 기간을 거쳐 등록 로비스트로 활동할 수 있다. 미국 정치자금 감시 비영리단체 오픈시크리츠(OpenSecrets)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연방 등록 로비스트는 약 1만2000명에 달한다. 등록 로비스트는 분기마다 로비 주제와 지출 비용, 접촉한 연방 기관 및 의회 명칭을 의무적으로 공개해야 하며 위반 시 최대 20만 달러의 민사 벌금과 형사 처벌이 따른다.외국 정부나 외국 정치세력의 이해를 대변하는 활동에는 1938년 제정된 외국대리인등록법(Foreign Agents Registration Act·FARA)이 별도로 적용된다. 일정한 외국 주체의 대리인이 미국 정부기관이나 공무원을 상대로 활동하면 등록과 정기 공개 의무가 부과된다. 활동 내역뿐 아니라 관련 수입과 지출까지 공개 대상이고, 등록 자료는 온라인으로 검색 가능하다. 미 법무부가 명시하듯 이 제도의 목적은 로비 자체를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누가, 누구를 위해, 무엇을 했는지'를 국민과 정부가 알 수 있게 투명하게 드러내는 데 있다.
한국 기업도 미국에서는 이 제도 안에서 움직인다. 삼성과 현대차 등은 워싱턴 로비 회사를 선임해 활동 내역을 주기적으로 공개한다. 미국에서는 '투명한 공개'를 전제로 합법화된 활동이 정작 한국에서는 아무런 기록도 없는 '포괄적 자문 계약'이라는 음성적 형태로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변협 "변호사법 충돌" vs 시민사회 "음성적 권력 투명화"
그러나 대한변호사협회는 일관되게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핵심 논거는 변호사법 제109조다. 협회는 공식 의견서를 통해 기업이나 외국인을 대리해 공공기관에 자료를 제출하거나 의견을 개진하는 행위는 변호사만 할 수 있는데 로비스트 등록제가 도입되면 이 원칙이 무너진다는 입장을 표명해 왔다.변협은 법률시장 개방 효과도 경계한다. 외국 변호사나 외국 법인이 로비스트로 등록하면 별도의 법률시장 협상 없이 국내 대관 활동 시장이 사실상 개방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논리다. 비변호사 브로커들의 대리활동으로 행정이 불투명하게 처리될 수 있다는 우려도 덧붙인다. 변협은 2004년 '외국대리인 로비활동 공개에 관한 법률안'에 이어 2024년 1월 최재형 의원이 대표발의한 '외국대리인 등록에 관한 법률안'에 대해서도 "변호사법과 충돌 우려"를 이유로 같은 반대 의견을 제출했다.
그러나 이미 현실에서 사실상 로비 활동이 이뤄지고 있다면 음성화 상태로 두기보다 제도권 안에서 투명하게 관리해야 한다는 주장 역시 법조계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판검사들에 대한 전관예우는 힘 있는 사람 한 명 풀어주는 데 그치지만 전관 고문들은 정책을 바꾸고 예산을 바꿔 국가 전체를 움직여 버린다"며 "이런 것들은 외국에서는 로비로 통용되는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로비스트 양성화법에 대해서는 "사적으로 전유돼 왔던 로비 과정을 공식적으로 드러내고 기록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며 "시민사회가 감시하고 견제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697명이라는 숫자는 한국 대형 로펌에 집적된 전관 인맥의 '외형'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 인맥이 어떤 기업을 위해, 어떤 기관을 상대로, 어떤 사안에 관여했는지 등 '내부 효과'는 어디에도 남지 않는다. 검찰청이 폐지되고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공소청이 출범해도 이 구조가 해소되지 않으면 전관 인맥은 새로운 기관을 중심으로 재집적될 뿐이다. 기관 재편보다 기록조차 남지 않는 '그림자 로비' 구조에 대한 투명화가 먼저라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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