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동·설경구·전도연 만난 李, "독립·예술영화-상업영화 사다리 끊겨"

  • 영화인과의 대화서 "정부가 간극 메워야"…상업·독립영화 생태계 보완 강조

  • 이창동·정주리 감독, 국내 투자·제작·개봉 어려움 호소…AI창작 위기도 제기

  • 내년 청소년 문화예술 바우처 8000억원…프랑스식 민간투자 세제지원 제안

이재명 대통령이 7일현지시간 프랑스 남부 생폴드방스 마그 재단에서 열린 뤼미에르 서밋의 영화·영상 관련 라운드 테이블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7일(현지시간) 프랑스 남부 생폴드방스 마그 재단에서 열린 뤼미에르 서밋의 영화·영상 관련 라운드 테이블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K콘텐츠의 세계적 성과 이면에서 독립·예술영화와 신인 창작자가 설 자리가 좁아지고 있다며 상업영화와 독립영화를 잇는 ‘사다리’가 끊겼다고 진단했다. 정부가 제작·유통·수요·투자 기반 전반을 지원해 이 간극을 메워야 한다는 것이다. 내년 예산에 청소년 문화예술 바우처 약 8000억원을 편성했다고 소개하며 창작자들이 체감할 수 있는 정책도 예고했다.
 
이 대통령은 7일(현지시간) 프랑스 생폴드방스의 마그재단에서 ‘넥스트 씬, K-콘텐츠의 내일을 말하다’를 주제로 한국 영화인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이날 행사에는 이창동·정주리 감독, 전도연·설경구·김도연 배우, 김민영 넷플릭스 아시아·태평양 콘텐츠 총괄 부사장 등이 참석했다.
 
이 대통령은 문화가 국가 이미지와 기업의 해외 진출, 상품 경쟁력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한국과 프랑스가 각각 5억 유로를 출연해 공동 출자금을 조성하고, 양국 영화·영상산업에 투자하는 협력 구상도 소개했다. 필요할 경우 공동제작과 추가 협업에도 나설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다는 취지다.
 
간담회에서는 한국 창작자들이 최근 국제무대에서 거둔 성과와 해외 관객들의 반응이 먼저 소개됐다. 이창동 감독은 전날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영화 <가능한 사랑>이 처음 공개된 뒤 현지 반응이 뜨거웠고, 한국 배우들을 향한 해외 팬들의 관심도 크게 체감했다고 전했다.
 
설경구 배우는 베니스영화제 공식 외신 기자회견이 끝난 뒤 100여명의 기자들이 단상으로 몰려와 배우와 감독에게 사인을 요청한 이례적인 장면을 소개했다. 전도연 배우도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작품들이 모이는 영화제에서 <가능한 사랑>이 관심을 받으면서 이창동 감독의 위상을 다시 확인했다고 말했다.
 
정주리 감독은 프랑스 관객들이 자신의 전작을 본 뒤 현지 제작자들이 먼저 공동제작을 제안했다고 설명했다. 영화 <도라>는 프랑스 아르테와 영화진흥위원회의 제작 지원을 바탕으로 촬영에 들어갔고, 프랑스 촬영팀이 한국에 와 작업했으며 후반 작업의 상당 부분은 프랑스와 룩셈부르크에서 진행됐다.
 
정 감독은 일본인 배우까지 참여한 다국적 제작 환경에서 언어와 기후의 어려움을 겪었지만, 서로 다른 국가의 제작진이 하나의 영화를 완성해가는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김민영 부사장은 한국 콘텐츠가 세계적으로 통하는 배경으로 한국적 이야기와 삶을 진정성 있게 다루는 창작자들의 역량을 꼽았다. 가장 한국적인 이야기가 오히려 세계 관객에게 더 멀리 전달되고 있으며, 창작자와 민간기업, 정부 간의 균형 있는 협업이 새로운 도전과 스토리텔링을 가능하게 하는 생태계를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이 대통령은 독립예술영화에 대한 의견을 묻는 질문에 한국 영화산업이 외형적으로는 큰 성과를 냈지만 내부 생태계는 취약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일부 대형 작품과 유명 창작자에게 성과가 집중되는 동안 독립영화와 신인 창작자가 성장할 기반이 약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독립·예술영화와 순수문화예술 분야에 대해 “상상했던 것 이상의 체감되는 정책들을 시행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영화·영상산업이 한국의 국가 이미지를 높이고 국민의 자긍심을 키우는 동시에 높은 공익적 효과를 내는 분야인 만큼 재정 투자 대비 효율도 크다고 강조했다.
 
이창동 감독은 한국 영화산업에 대해 “구조적인 위기에 있다고 생각한다”고 진단했다. 자신이 연출한 <가능한 사랑>도 국내 투자자를 찾지 못했고 넷플릭스 투자를 통해 제작할 수 있었다며 국내 영화 투자 생태계의 어려움을 설명했다.
 
이 감독은 넷플릭스가 영화산업의 중요한 축이기는 하지만 극장영화와 상호보완적인 관계를 형성하는 데에는 아직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주리 감독의 <도라>가 프랑스에서 호평받아 공동제작 제안과 개봉을 앞두고 있지만, 국내 개봉 일정은 잡히지 않은 현실도 언급했다.
 
정주리 감독은 두 작품 모두 제작 지원을 받아 만들 수 있었지만, 이는 제작 지원을 받지 못하면 영화를 만들기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내년도 예산과 관련해 “내년 예산에는 청소년들 문화예술 바우처를 지금 8000억 정도를 편성해 놨다”고 설명했다. 청소년들이 영화관 등 문화활동에 참여하도록 수요를 늘리면 창작자와 예술인의 활동 기회도 확대될 수 있다는 취지다.
 
현장 의견을 정책에 반영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정부 당국은 현장에서 구체적으로 뭐가 필요한지를 잘 모른다”라며 “몰라서 못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문화예술인들이 현장에서 필요한 정책과 예산을 적극적으로 제안해달라고도 당부했다.
 
이창동 감독은 프랑스에서 시행 중인 민간 영화투자 세제지원 제도를 한국에도 도입하자고 제안했다. 개인과 민간기업의 영화 투자를 세제 혜택으로 유도해 독립영화와 신인 감독 작품 등 대형 상업영화 외부의 작품에도 자금이 흘러가도록 해야 한다는 취지다.
 
이 감독은 류진 한국경제인협회 회장에게 이 같은 구상을 설명했으며, 정부가 의지를 보이면 기업도 적극 참여하겠다는 뜻을 들었다고 전했다. 이 대통령은 “제가 돌아가서 바로 시작해보라고 하겠다”라며 “결과는 나중에 알려주겠다”고 답했다.
 
정주리 감독은 AI 시대 영화산업 창작자들이 생존의 위기를 느끼고 있다며 관련 논의를 위한 후속 간담회도 요청했다.
 
이 대통령은 간담회를 마무리하며 “드디어 대한민국의 기회가 왔다는 생각이 든다. 전 세계가 대한민국을 쳐다보고 있다”라며 “가장 한국적인 게 가장 경쟁력이 있다”고 말했다.
 
간담회 이후 이 대통령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부부와 각국 문화장관, 국제기구 인사, 영화·영상 기업 및 단체 대표, 감독·배우 등 200여명이 참석한 뤼미에르 서밋 공식오찬에 참석했다. 이 대통령은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지닌 참석자들의 협력을 통해 문화적 다양성의 가치를 키우고 영상산업의 미래를 함께 열어가자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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