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때가 되면 머리하러 온 아가씨들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어요”
강원 화천군 사내면 사창리에서 백조미용실을 운영하는 변미자 원장의 기억이다. 변 원장은 1970년대 초 현재 이디야커피 인근에서 처음 미용실 문을 열었다. 이후 두 차례 자리를 옮긴 뒤 지금의 백조미용실에 자리 잡아 약 50년 동안 한자리에서 가위를 잡아왔다.
반세기 동안 미용실 문밖의 사창리도 크게 변했다. 군인과 주민, 상인들로 북적이던 거리부터 육군 27사단 ‘이기자부대’가 역사 속으로 사라진 지금까지 백조미용실에는 사창리의 시간이 겹겹이 쌓여 있다.
사창리의 현대 생활사를 크게 바꾼 것은 군부대였다. 1953년 창설된 27사단은 1963년부터 사내면에 주둔해 2022년 해체될 때까지 59년 동안 지역과 함께했다. 백조미용실이 문을 열었던 1970년대는 군부대와 함께 사창리 상권이 활기를 띠던 시절이었다. 장병들이 외출·외박을 나오면 음식점과 술집, 다방이 붐볐고 군인을 주요 고객으로 하는 상권이 자연스럽게 형성됐다.
장기간 훈련을 마친 군인들이 돌아오는 날이면 거리 전체가 들썩였다. 변 원장은 “군인들이 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면 시내 다방과 술집 아가씨들이 도로에 나와 음료와 꽃다발을 건네기도 했다”며 “동네가 워낙 요란해서 모르던 사람도 군인들이 복귀하는 날이라는 것을 알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군기가 엄격했던 시절 헌병들이 사창리 시내를 순찰하며 외출·외박 중인 군인들을 검문하던 모습도 주민들의 기억에 남아 있다. 한 주민은 “헌병들이 시내를 돌며 군인들을 검문했다”며 “군인들이 헌병을 상당히 무서워했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그 시절 백조미용실도 바빴다. 변 원장에 따르면 당시 사창리에는 다방이 많았고 사창4리 일대에는 이른바 ‘방석집’으로 불리던 술집들도 밀집해 있었다. 저녁 영업을 준비하는 여성들이 오후 5~7시 무렵이면 머리를 하기 위해 미용실을 찾았다.
“그 시간이 되면 미용실이 항상 시끄러웠어요.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죠”
작은 미용실을 채웠던 웃음소리는 당시 사창리 상권의 활기를 보여주는 한 장면이었다. 휴대전화도 인터넷도 없던 시절 다방 역시 사람을 만나고 소식을 주고받으며 군인과 주민이 자연스럽게 마주치는 생활공간이었다.
군인과 주민의 관계가 소비로만 이어진 것도 아니었다. 훈련을 떠나고 돌아오는 장병들에게 주민과 상인들이 박수를 보내고 꽃과 음료를 건넸다. 군부대와 주민이 오랜 세월 같은 지역에서 살아오며 만들어낸 사창리 특유의 생활문화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백조미용실 문밖의 풍경도 달라졌다. 군 복무환경과 장병들의 소비문화가 변했고 과거처럼 군인들로 북적이던 거리도 점차 사라졌다. 결정적인 변화는 27사단 해체였다.
부대 해체가 현실화되자 2019년 10월 8일 화천군 용화축전에서는 27사단 해체 반대 총궐기대회가 열렸다. 군민들은 부대 해체 철회와 지역경제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하지만 27사단은 2022년 11월 해체됐고 같은 해 12월 화천군의회에서는 ‘27사단 해체에 따른 사내면 지역 상권 붕괴’ 문제가 군정질문으로 다뤄졌다.
59년 동안 지역과 함께했던 군부대가 사라지면서 백조미용실 문밖의 거리도 예전 같지 않다. 군인들이 무리를 지어 걷고 외출·외박 장병들로 상가가 붐비던 모습은 이제 주민들의 기억 속 장면이 됐다.
그러나 사창리의 시간은 다시 움직이고 있다. 지난 3일 밤 사창리 5일 장터에서 열린 첫 ‘별별 야시장’에는 화천군 집계 기준 면민과 군인가족, 장병, 면회객, 외국인 근로자 등 1,500여명이 찾았다. 먹거리 장터와 벼룩시장, 주민 노래자랑이 펼쳐지면서 평소 한산했던 저녁 거리가 다시 사람들로 채워졌다.
과거에는 군인들이 외출·외박을 나오면 자연스럽게 상권이 움직였다. 이제는 주민과 상인들이 직접 사람들이 찾아올 이유를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사창리에는 또 하나의 큰 변화가 다가오고 있다. 화천군 사내면과 경기 포천시를 연결하는 광덕터널은 2027년 6월 실시설계를 마치고 같은 해 하반기 착공해 2031년 준공을 목표로 추진되고 있다. 터널이 뚫리면 사내면과 수도권 사이의 접근 여건도 크게 달라질 전망이다.
하지만 길이 가까워진다고 지역경제가 저절로 살아나는 것은 아니다. 수도권에서 사람들이 들어오는 길이 될 수 있는 반면 지역 소비가 외부로 빠져나가는 통로가 될 가능성도 있다. 결국 사람들이 사창리를 지나치지 않고 ‘머물 이유’를 만드는 것이 과제다.
화천군도 광덕터널 이후를 준비하고 있다. 김세훈 화천군수는 지난달 사내면 주민설명회에서 화악산과 삼일계곡, 촛대바위, 곡운구곡, 목장과 힐링센터 등을 연결하는 관광개발 구상을 제시했다. 상당수는 아직 구상 단계로 개발용역과 타당성 검토, 인허가, 재원 확보 등 실제 사업으로 이어지기까지 넘어야 할 절차도 남아 있다.
사창리가 지나온 시간 역시 자산이 될 수 있다. 군인들로 붐볐던 거리와 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는 장병들에게 꽃과 음료를 건네던 풍경, 다방과 오래된 상점, 군인과 주민이 함께 살아온 기억은 사창리만의 생활사다.
그 시간을 기억하는 공간 가운데 하나가 백조미용실이다. 1970년대 초 처음 문을 연 뒤 두 차례 자리를 옮겼고 지금의 자리에서 약 50년 동안 사창리의 변화를 지켜봤다. 그 문밖으로 수많은 군인과 주민, 상인들이 지나갔고 저녁이면 여성들의 웃음소리가 미용실을 채웠다. 훈련을 마친 군인들이 돌아오는 날이면 거리 전체가 들썩였다.
그렇게 59년을 함께했던 ‘이기자부대’는 떠났다. 그리고 2031년 사창리에는 광덕터널이라는 새로운 길이 놓일 예정이다. 군부대가 사람을 불러오던 시대에서 스스로 사람을 불러와야 하는 시대로 바뀌고 있는 셈이다.
변미자 원장은 오늘도 백조미용실에서 가위를 잡는다. 문밖의 거리는 예전과 달라졌지만 미용실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군인들이 거리를 채우던 시대는 끝났다. 이제 사창리는 사람들이 스스로 찾아오는 이유를 만들어야 할 또 하나의 갈림길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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