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태윤 한양대 국제대학원 글로벌전략·정보학과 겸임교수]
트럼프 대통령이 8월 16일 한·미연합훈련을 대폭 축소하라고 지시한 데 이어, 북한 핵을 57개라고 콕 집어서 발언하면서 북한 김정은과의 친분을 강조했다. 그는 또다시 SNS에 과거 김정은과 판문점에서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는 등 김정은 위원장에 대한 적극적인 구애를 하고 있다. 도대체 트럼프 대통령은 어떤 생각으로 미북정상회담을 다시 추진하려는 것일까? “트럼프가 북한 핵을 용인한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을 비롯한 미 정계 인사들조차 트럼프의 대북 유화정책에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갑자기 북한 문제를 화두로 삼은 이유는 무엇인가?
현재 미국과 이란 간 종전 협상 시간이 끝났는데도, 해결된 것은 없다. 이란은 여전히 호르무즈 해협을 장악하고 있으며, 미국에 반기를 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있다. 트럼프는 이란 전쟁에 발목이 잡힌 상황에서, 외교·군사작전 실패에 대한 미국 국민의 불만을 다른 쪽으로 돌릴 돌파구가 필요하다. 북한이 그 대상이 된 것이다.
2018년 당시 김정은이 문재인 정부에 비핵화 의사를 밝혔기 때문에, 트럼프가 회담을 수용하였다. 그러나 북한은 기대를 저버리고, 완전한 비핵화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북한은 사업가 출신인 트럼프를 얕잡아 보고, 스몰딜을 추진하려고 했다. 미·북 정상 간 두 차례에 걸친 북한 비핵화 협상은 실패로 끝났다. 김정은은 비핵화 의지가 전혀 없었다. 그러나 그 후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2019년 판문점에서 김정은을 다시 만나는 등 이벤트성 회동에 집착했다. 트럼프는 북한에 대한 비핵화 협상 실패를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노력 때문에 한반도가 안전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해할 수 없다.
트럼프 2기 정부가 출범한 이후, 한·미·일 외교장관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원칙을 고수하였다. 그러나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는 트럼프 1기 정부와 상당히 변화되었다. 북한은 핵 무력정책을 헌법에 못 박았으며, 핵·탄도미사일로 한국 국민을 향해 노골적으로 협박하고 있다. 김정은이 우라늄 농축시설을 시찰하는 사진도 공개하고 있다. 북한 김정은 정권은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해 달라고 떼를 쓰고 있다. 이것이 북한 실체이다.
북한 핵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인식이 변화한 것처럼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2기 정부가 출범한 이후 줄 곳 북한을 핵보유국(nuclear power)이라고 언급해서, “북한 핵을 용인한 것”이라는 논란을 촉발해왔다. 트럼프 2기 정부가 향후 북한과 미북정상회담을 추진할 경우, 빅딜이 아니라, 스몰딜을 추진할 것이라는 의구심도 생기고 있다. 북한은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해 준다”는 전제로 미국과 정상회담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이 미·북 회담에 조바심을 낼 이유가 없다. 러시아·중국이 북한을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중패권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으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진행 중이다. 북·중·러 3국은 그 어느 때 보다 결속력이 강해졌다. 북한은 북·러군사 조약을 체결한 이후, 러시아에 현재까지 누적 2만5천명 북한군을 배치했다. 우크라이나 당국은 “현재 북한군 8,500명이 파병해 있고, 11월까지 5만명으로 늘어날 것이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정은과 푸틴은 우크라이나를 상대로 함께 싸우는 혈맹관계이다. 중국 시진핑도 지난 6월 북한을 방문하여 김정은 정권과 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중국·러시아는 국제사회에서 북한을 전적으로 지지하고 있으며, 사실상 북한 핵을 용인하고 있다. 김정은이 중·러를 뒷배로 삼아 트럼프에게 배짱을 부리고 있다. 아쉬운 쪽은 트럼프이다. 트럼프가 다시 김정은과 정상회담을 할 경우, 북한 핵을 용인할 가능성을 우려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한반도에서는 최악의 위기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트럼프 정부가 이란 전쟁에서 약한 모습을 보였다. 트럼프가 군사력을 동원해도 이란을 꺾지 못했으며, 이란의 핵 개발 포기는 물론이고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통제권도 아직 확보하지 못했다. 미국의 요격 미사일 재고량은 절반 이하로 줄었다. 이것을 채우려면 향후 수년이 걸린다고 한다. 북한도 미국의 무력함을 보았을 것이다. 미북정상회담에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주제로 논의할 가능성은 적어졌다.
미북정상회담에서 북한 김정은이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할 소지가 있다. 지난 문재인 정부에서 종전선언을 북한에 제의했을 때도, 북한은 한반도에서 한미연합훈련·전략무기투입 영구중단 등을 중대 선결과제로 주장하였다. 이는 우리가 수용할 수 없는 사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호르무즈 해협에 나토국가들이 군함을 보내지 않았다는 이유로, 독일에서 미군 5,000명을 감축시켰으며, 스페인·이탈리아에서도 미군 감축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또한 트럼프는 1기 정부에서 “주한 미군을 철수시키자”는 주장을 한 바 있다.
트럼프는 김정은을 칭찬하면서, 오히려 동맹국인 한국에 대해 “호르무즈 해협에서 미국을 돕는 것을 거부했다”며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미국은 한국의 2,0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지연과 쿠팡 문제 등으로 한국 정부와 갈등을 빚고 있다. 미국 우선주의를 지향하고 있는 트럼프가 향후 미북정상회담에서 평소 자신의 불만을 반영하여, 자칫 예상치 못한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도 상상해 볼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핵을 57개라고 지적한 근거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이 숫자가 “북한 핵을 용인한 것인지”, 아니면 북한 핵을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다고 북한을 압박한 것인지, 그 속셈을 도무지 알 수 없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북한 핵을 80∼120개로 추정하고 있다. 북한 핵 숫자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과거 역대 미국 대통령이 북한의 핵 숫자를 콕 집어서 말한 전례는 없었다.
이란 전쟁을 둘러싼 트럼프의 ‘힘의 외교’는 동맹국들의 신뢰를 잃었다. 트럼프 대통령의 돌출적 행동과 이벤트 지향적 성향이 걱정스럽다. 11월 중간선거가 임박한 상황에서 트럼프의 이벤트성 미북정상회담 추진은 결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으로 본다.
만일 트럼프 대통령이 미북정상회담에서 북한 핵을 용인할 경우, 북한 핵으로부터 우리 국민 안전은 누가 지켜 줄 것인가? 핵을 보유한 북한·러시아·중국이 뭉쳐서 북·중·러 동맹관계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반면, 우리는 미국의 핵우산 정책 보호 아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연합훈련 축소를 지시하는 등 유약한 모습을 보이고 있어, 어떻게 그를 신뢰할 수 있을지 답답한 상황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이재명 정부에 약속한 핵추진잠수함 건조와 원자력협정 개정 문제도 진전이 없다. 트럼프 정부는 경제와 안보 문제를 패키지로 삼아 한국을 압박하고 있다. 북한의 핵 문제는 간단하지 않다. 핵무기는 비대칭 무기다. 재래식 무기로 상대할 수 없는 영역이다. 한국이 잘나가는 방산 수출국이고, 군사력 5위라고 해서, 핵무기를 가진 북한을 쉽게 보아서는 안 된다.
한국과 미국은 70년 찐 동맹국이다. 미국 우선주의를 지향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핵 위협으로부터 한국을 확실하게 지킬 생각이 있는지를 밝혀야 할 때이다. 트럼프 정부는 이란의 핵 개발 위협에 대한 플랜B로 사우디아라비아와 원자력협정을 체결했다. 바이든 전 대통령도 러시아 푸틴의 핵 위협으로부터 나토국가를 보호하기 위해 영국에 핵무기 재배치를 결정했었다. 최근 미 국방부 정책차관 엘브리지 콜비가 괌·동북아지역 등에 단거리 전술핵 배치를 검토하고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북정상회담을 통해 북핵 문제 해법을 찾는 것에 찬성한다. 다만 핵심 주제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스몰딜이 아니라, 빅딜이 되어야 한다. 만일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성과를 얻지 못하고 실패한다면, 그때부터는 플랜B를 추진해야 한다. 한국 등에 미국의 단거리 전술핵을 재배치하여, 북한의 핵 위협으로부터 동맹국을 적극적으로 방어한다는 의지를 보여주어야 한다.
또한, 트럼프 정부는 조속히 한국이 핵잠수함을 건조토록 해야 하며, 한미원자력 협정을 개정하여 한국에 우라늄 농축 권한을 제공해야 할 것이다. 이재명 정부도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시점을 서둘러서는 안 될 것이다. 대한민국의 안보를 지키기 위해 온 국민이 지혜를 모아야 할 때이다.
엄태윤 필자 주요 이력
△한국외국어대 국제관계학 박사 △Pace 대학 경영학 박사 △한국외국어대 정치외교학과 겸임교수 △주미 한국대사관 참사관 △주 보스턴 총영사관 영사 △통일연구원 초빙연구위원 △제주평화연구원 객원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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