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오락가락 대출정책, 사라진 상식

권가림 금융부 기자
권가림 금융부 기자
최근 부동산 정책을 보면 일관된 원칙을 찾기가 어렵다. 대출을 조이겠다는 것인지, 실수요자에게 다시 문을 열어주겠다는 것인지 정책 방향이 선뜻 읽히지 않는다.  

대표적인 것이 잔금대출이다. 분양 당시에는 대출 규제가 없었다는 이유로 신축 아파트 입주 예정자들에게 잔금대출을 더 내주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물론 이미 분양계약을 체결한 실수요자의 자금 사정을 고려할 필요는 있다. 하지만 같은 규제 환경에서 집을 사기 위해 자금을 마련하고 있는 다른 실수요자는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다. 입주를 앞둔 단지에 나간 추가 대출을 대출 총량에 포함하게 되면 다른 이들의 대출 한도를 줄이는 결과를 낳는다. 잔금 대출 등을 대출 규제 총량에서 빼게 되면 그동안의 규제가 잘못됐다는 얘기다. 

더 큰 문제는 정책이 만들어진 과정이었다. 수원의 한 아파트 입주 예정자가 지난달 23일 대통령 주재 부동산 대토론회에서 대출이 막혀 잔금을 치를 수 없다고 호소하자 "한번 점검해 보라"는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대출 문이 바로 열렸다. 5대 은행이 5000억원 추가 대출을 했다. 은행들이 이주비·중도금·잔금 등 집단대출을 공격적으로 풀면서 잔액이 한 달 만에 9000억원 넘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계대출을 조이기에 앞서 잔금대출 대란을 충분히 파악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가계대출 총량 관리도 마찬가지다. 목표치를 종전 1.5%에서 3%로 2배 올려 청년과 중저소득층 등 실수요자에 대해 총량을 더 열어주겠다고 한다. 연중 총량규제를 상향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정책을 조인 뒤 문제가 불거지자 다시 푸는 식이라면 애초에 정교한 대책이라고 하기 어렵다. 금융권에서도 허탈하다는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17개 은행의 공개 조치를 집계한 결과 올해 들어 가계대출 취급 기준이 바뀐 횟수는 73차례에 달했다. 집 계약은 잔금까지 수개월을 내다보고 자금 계획을 짜야 하는데 대출 기준은 며칠 사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대출의 원칙이 사라진 지 오래다. 고신용자의 금리가 더 높아지고 담보 가치가 높아도 대출 한도는 줄었다. 대출을 받으려면 정부의 배려를 요구하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정부의 오락가락 규제로 시중은행들은 대출을 풀었다 조였다 하고 있다. 대출 허들이 점점 높아지며 '대출 오픈런'이 이어지고 있다. 급한 마음에 2금융권과 3금융권을 찾아 나서고 사채까지 동원해야 하냐는 아우성이 나오고 있다. 

오락가락 정책에 더해 정작 실수요자가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한 고민도 충분해 보이지 않는다. 정부는 청년층의 주거 부담을 낮추기 위한 대안으로 연립·다세대 등 비아파트를 제시하고 있다. 비아파트를 선택지로 넓히는 것 자체가 잘못은 아니다. 다만 청년층이 왜 아파트를 선호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아파트는 상대적으로 주거 환경과 관리 체계가 안정적인 데다 향후 매매·전세 등 거래가 쉽고 자산가치 측면에서도 선호도가 높다. 이 때문에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하다고 비아파트가 청년의 대안이 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청년이 빚 없이 자산을 모아 갈 수 있도록 정책 설계를 해 주는 것이 정부의 임무다. 정책을 내놨다가 반발하면 달래기 식으로 땜질 처방하는 것은 눈 가리고 아웅일 뿐이다. 

물론 가계부채 관리는 시급하고 중요한 과제다. 가계의 소득을 보전하고 한국 경제의 성장을 고려한다면 모든 정책 역량을 동원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국민의 주거 안정과 자금 조달 문제가 걸려 있다는 점에서 금융당국이 세심하면서도 정교하게 접근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정부가 부동산 정책의 목적을 찾아가는 동안에 발품을 팔아야 하는 소비자와 그리고 은행의 피로는 더욱 커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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