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내 집 마련'이라는 생존욕구

 
인류는 오랜 시간 생존에 유리한 방향으로 진화해왔다. 몸은 먹을 것이 부족할 때를 대비해 에너지를 저장하고, 외부에서 병원체가 들어오면 면역체계가 작동한다. 위험을 피하고 미래를 대비하려는 본능은 인간을 살아남게 했다.

최근 한국 사회에서 생존본능은 '서울에 내 집 마련'으로 나타나고 있다. 집을 사지 않고 머뭇거리는 사이 집값은 몇 억원씩 오르고, 먼저 집을 산 사람과의 자산 격차는 근로소득으로 따라잡기 어려울 만큼 벌어지고 있다는 불안 때문이다. 내 집 마련은 더 많은 돈을 벌고 싶다는 욕망을 넘어 자산 형성의 사다리에서 밀려나지 않기 위한 경제적 생존 문제에 가까워졌다.

근거 없는 불안이 아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에 따르면 청년기 자산 형성 초기부터 부동산을 보유했거나 상속·증여 등으로 자산을 확보한 집단은 이후에도 자산 축적에서 우위를 이어가는 경향이 나타났다. 근로소득만으로 자산 격차를 만회할 통로는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는 의미다.

청년들이 레버리지를 일으켜 무리해서라도 집을 사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집을 사서 돈을 벌고 싶다'보다 '집을 사지 않으면 뒤처질 것 같다'는 감정에 가깝다. 최근 결혼이 늘어나는 것을 두고 결혼이 자산 형성의 새로운 통로가 됐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두 사람의 소득과 자산을 합쳐야만 비로소 내 집 마련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불과 몇년 전 경제적 부담을 이유로 'N포세대'라는 단어가 나왔던 것과 다른 흐름이다.

정부가 최근 수요 억제 정책을 강화하는 이유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과도한 대출은 주택시장으로 자금을 밀어 넣어 집값을 자극하고 가계부채를 키울 수 있다. 소득의 상당 부분이 원리금 상환에 묶이면 소비 여력이 줄고, 금리 상승이나 소득 감소에도 취약해진다. 상환능력을 넘어선 '영끌'을 방치할 수 없는 이유다.

그러나 일괄적인 대출 규제는 현금이 부족한 무주택 실수요자의 주거 사다리마저 걷어찰 수 있다. 대출 문턱을 일률적으로 높인 뒤 피해가 발생할 때마다 예외를 덧붙이는 방식도 해법이 되기 어렵다. 먹고살기 바쁜 무주택자가 집 한 채를 사기 위해 수시로 바뀌는 대출 규제와 세제를 공부해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 생애 최초로 주택 구입을 고민하던 한 친구는 "집을 사는 게 대학에 가려고 수능을 다시 치르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정부가 만들어야 할 것은 오늘 서울에 집을 사지 않아도 몇 년 뒤 자신의 소득과 저축으로 집을 살 기회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다. 서울 집 한 채가 경제적 생존의 거의 유일한 보험처럼 느껴지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 일이다.

서울이 아닌 곳에서도 일자리와 교육, 문화 등 삶의 기회를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최근 수도권으로 기업과 사람이 몰리고 지방에서는 인구 감소와 일자리 부족이 발생하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지역의 일자리와 교육 여건을 개선하고 교통·디지털 인프라를 확충해 지역에서도 충분한 기회를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물론 모든 지역을 서울처럼 만들 수는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일자리와 교육, 문화와 의료까지 서울에 집중된 구조를 그대로 둔 채 서울 집을 사려는 수요만 억누르는 것도 근본적인 해법은 아니다.

생존본능은 위험이 줄어들면 작동할 이유도 줄어든다. 집 한 채를 제때 사지 못했다는 이유로 경제적 생존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만드는 것. '서울에 내 집 마련'이 더 이상 생존 DNA처럼 작동하지 않게 하는 것이 부동산 정책의 궁극적인 목표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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