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기 전인 6월이었다. 동대문구 답십리동 소재 한 술집에서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한 청년의 목소리가 조용한 술집을 가득 채웠다. 사회초년생들이 으레 자신의 직장에 대해 자부심 넘치듯 말하는 그 어투다.
내용은 신선했다. 본인이 '보험사기범'을 잡아 회사로부터 포상을 받았다는 자랑이다. 내용은 과장됐지만, 자신이 찍은 사진까지 보여주면서 자신이 훌륭한 사회구성원임을 거침없이 뽐내고 있었다.
수사기관이 아닌 민간인이 보험사기범을 잡았다는 얘기에 어깨너머로 자세히 들여다봤다. 그 청년이 보여준 사진은 사무실에 걸려있는 차트보드였다. 해당 청년은 이달에만 13건의 보험사기범을 잡았다고 했다.
전화를 끊은 청년은 인상을 찡그리며 "밤에 사람 귀찮게 하고 있어, 이러니깐 암이나 걸리지"라며 다시 술잔을 들이켰다.
해당 청년이 자신의 테이블에 두고 간 명함을 토대로 취재를 해봤다. M사의 협력사로 있는 손해사정 기업이었다. 관련 업계에 있는 지인에게 어떤 방식으로 손해사정 기업들이 보험사기범을 잡는지 물었다.
보험사기범은 일종의 은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우선 소수의 자격을 가진 손해사정사만 있으면 손해사정 정식 사업자 등록이 가능하다. 거대 보험사와 계약을 맺은 손해사정 기업의 실질적인 업무는 팀 단위로 움직이는 2030 사회초년생들이 맡는다.
피보험자의 질병, 사망 등을 이유로 일정 금액 이상의 보험금 지급 건이 발생하면 이들은 즉시 자신들과 관계가 있는 상급병원 의사와 접촉한다. 피보험자가 받은 수술이나 치료, 혹은 사망원인이 보험금 지급 요건에 부합하는지 '검토가 필요하다'는 답변 하나면 충분하다. 이 때문에 손해사정 기업들에게 상급병원 의사 접대는 필수 코스다.
이때부터는 시간을 끄는 일만 남는다. 법정이자가 붙지만 상관없다. 지급을 6개월, 1년 미루다 보면 쌓이는 치료비에 쓰러지는 건 보험사가 아니라 보험가입자다. 상대가 궁지에 몰리면 협상을 제안한다. 이를테면 실제 받아야 할 보험금이 5000만원이라면 1000만원 수준을 챙겨주는 것처럼 하면서 사건을 종결하자는 식이다. 보험금 지급은 피보험자가 원하면 협의로 액수를 조절할 수 있다는 것이 M사의 설명이다.
결과적으로 보험사는 보험금 지급 4000만원을 아끼게 된다. 이 금액의 일부가 인센티브 명목으로 손해사정 기업에 지급된다. 업무 경력 2년차가 열심히 한다면 월 300만원의 인센티브를 챙길 수 있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그들은 이렇게 보험금을 줄이는 행위를 '보험사기범을 잡았다'고 부른다.
이에 대응하기도 쉽지 않다. 피보험자 입장에서는 별도의 손해사정사를 고용해 전체 보험금의 20% 수준을 수수료로 지급하는 조건으로 계약한 뒤 맞서는 것이 일반적이다.
M사가 협력사로 두고 있는 또 다른 업체에 연락해서 “지급할 보험금을 깎는 행위로 인센티브를 받느냐”고 질문했다. 자신을 3개월차라고 소개한 직원은 자신은 아직 받지 못했지만 팀장급들은 인센티브가 주 수익원이라고 답했다.
최근 의료기술의 발달로 로봇 수술 등이 도입되면서 지급할 보험금이 증가하자 보험사들이 앞다퉈 '보험사기범 잡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는 것이 한 보험사 관계자의 설명이다.
가족에게 부담을 넘기기 싫어 수년 혹은 수십년간 보험료를 지급해 온 한 어르신을 생각해보자. 그들의 자칭 보험사기범 검거 행각에 손에는 푼돈과 과일바구니 하나가 남았을 것이다. 지급해야 할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 것이 실적이자 인센티브로 돌아오는 구조가 유지되는 한, 보험사를 믿고 계약한 고객은 언제고 그들이 부르는 보험사기범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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