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기고] 쿠팡 개인정보 유출 사태, 더 이상 '기업 실수'로 넘겨선 안 된다

  • 구교훈 한국국제물류사협회장 기고

구교훈 한국국제물류사협회장 사진아주경제DB
구교훈 한국국제물류사협회장 [사진=아주경제DB]
3370만명에 달하는 국민 개인정보가 유출된 쿠팡 해킹 사건은 단순 보안 사고가 아니다. 국민의 약 3분의 2가 직간접적인 피해자가 된 국가적 개인정보 재난이며, 우리 사회의 개인정보 보호 체계와 기업 책임의 한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건이다. 

더 큰 문제는 사고 이후 쿠팡의 대응이다. 기업은 사고가 발생하면 신속한 공개와 진정성 있는 사과, 피해 구제, 재발 방지 대책을 제시하는 것이 기본이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서 쿠팡은 책임 인정에 앞서 법률적 방어와 해명에 집중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개인정보 유출 통지에서도 '유출' 대신 '노출'이라는 표현을 사용했고, 이용자들이 회원 탈퇴에 어려움을 느낄 만큼 복잡한 절차를 유지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더욱 우려스러운 점은 쿠팡이 상황에 따라 미국 기업과 한국 기업이라는 지위를 선택적으로 강조한다는 인상을 준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미국 상장기업이라는 점을 내세우고, 미국에서는 한국 시장 중심의 기업이라는 논리를 편다면 사회적 책임을 회피하려는 것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쿠팡 매출의 대부분은 한국에서 발생하고 고객 역시 대부분 한국 소비자다. 그렇다면 개인정보보호법, 공정거래법, 노동관계법 등 대한민국 법률을 성실히 준수하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다. 국내 소비자를 대상으로 영업하면서 해외 법인을 이유로 책임을 분산시키려는 태도는 국민 정서상 받아들이기 어렵다.

쿠팡의 개인정보 관련 논란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간 배달 서비스와 판매자 시스템 등에서 여러 차례 개인정보 관련 사고가 발생했다. 반복되는 사고는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관리 체계의 구조적 문제를 의심하게 한다. 개인정보 보호를 비용이 아닌 기업의 핵심 경쟁력으로 인식하지 않는다면 같은 사고는 언제든 반복될 수 있다.

이번 사태의 파장은 소비자에게만 그치지 않는다. 쿠팡 플랫폼에 입점한 수많은 소상공인과 협력업체도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다. 플랫폼 기업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면 판매자와 협력업체 역시 피해를 피하기 어렵다. 결국 개인정보 보호는 소비자 보호인 동시에 산업 생태계를 지키는 문제이기도 하다.

필자는 오래전부터 쿠팡의 물류 혁신과 플랫폼 경쟁력을 높이 평가해 왔다. 대규모 물류센터 투자와 자체 배송망 구축은 국내 유통산업 패러다임을 바꾼 혁신이었다. 실제로 많은 전문가가 적자를 이유로 쿠팡의 실패를 전망할 때도 필자는 규모의 경제와 물류 경쟁력을 바탕으로 한 성공 가능성을 유튜브 방송 등을 통해 공개적으로 전망한 바 있다.

하지만 혁신 기업일수록 더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한다. 아무리 뛰어난 물류 시스템과 인공지능(AI), 플랫폼 기술을 갖추었더라도 고객의 신뢰를 잃는 순간 경쟁력은 무너질 수 있다. 개인정보는 기업의 자산이 아니라 국민의 권리다. 이를 제대로 보호하지 못한 기업은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 한다.

우리나라의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제재 수준은 여전히 선진국과 비교해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에서는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이나 고의·중과실이 인정됐을 때 거액의 제재와 손해배상 소송 등을 통해 기업의 책임을 엄격하게 물은 사례가 있다. 이 같은 강력한 책임 부과는 기업이 정보보호에 적극적으로 투자하도록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우리 역시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제도를 근본적으로 재정비해야 한다.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과 과징금 등 제재의 실효성을 높이고, 반복적이고 중대한 사고에는 최고경영자와 책임자에게도 실질적인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관련 제도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 또한 대기업뿐 아니라 중견·중소기업의 정보보호 수준을 높일 수 있도록 정부의 지원과 관리 체계도 함께 강화해야 한다.

기업은 국민의 신뢰 위에서 성장한다. 신뢰를 잃으면 시장도 잃는다. 쿠팡은 이번 사건을 단순한 해킹 사고가 아니라 기업의 존립을 좌우할 수 있는 신뢰의 위기로 받아들여야 한다. 정부와 국회 역시 국민의 개인정보를 기업의 비용 절감 대상이 아닌 국가가 반드시 보호해야 할 기본적인 권리로 인식하고 보다 실효성 있는 법과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이번 사건이 '역대 최대 개인정보 유출 사고'라는 오명으로 끝날 것인지, 아니면 대한민국 개인정보 보호 체계를 근본적으로 혁신하는 계기가 될 것인지는 이제 정부와 국회 그리고 사법부의 대응과 판단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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