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기고] 농지 전수조사, 단속이 아닌 희망을 심어야 한다

  • 농민의 삶을 지키는 농지정책으로 전환해야

조덕현
조덕현 동천안농협 조합장 
농지 전수조사는 농민에게 희망을 심는 정책이어야 한다. 정부가 추진하는 농지 전수조사는 농지 투기를 차단하고 경자유전의 원칙을 확립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정책이다. 농지가 투기의 대상이 아니라 농업생산의 기반으로 이용되도록 관리하는 것은 국가의 책무다. 그러나 정책의 목적이 아무리 정당하더라도 그 과정에서 평생 농업을 지켜온 농민들이 가장 큰 피해를 입는다면 정책은 다시 점검돼야 한다.
 
최근 농촌 현장은 농지 거래가 사실상 멈춰 섰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심각한 침체를 겪고 있다. 전수조사에 따른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농지를 사려는 사람은 사라지고 팔려는 농민들만 늘어나고 있다. 특히 은퇴를 준비하는 고령농들은 평생 일군 농지를 처분하지 못해 노후 설계는 물론 생활자금 마련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농지가 농민의 마지막 자산임에도 제값을 받지 못하는 현실은 단순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농업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심각한 사회적 문제다.
 
더 큰 우려는 농지가격 하락이 농민 개인의 자산 감소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농지의 담보가치가 떨어지면 영농자금 조달이 어려워지고 농지를 담보로 대출을 취급하는 지역 농축협도 부실 위험에 노출된다. 이는 농업금융 위축과 지역경제 침체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초래한다. 실제 일부 지역에서는 농지가 여러 차례 경매에서 유찰되고 감정가의 절반 이하에 낙찰되는 사례까지 나타나고 있다. 농민의 자산가치 하락은 곧 농촌경제 전체의 활력을 떨어뜨리는 결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제 농지정책의 방향은 단속과 규제 중심에서 농민에게 희망을 주는 정책으로 전환돼야 한다.
 
무엇보다 오랜 기간 성실하게 농사를 지어온 고령농들이 안정적으로 은퇴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10년 이상 자경한 농지에 대해서는 농지은행의 공공매입 기준을 현실에 맞게 완화하고 소규모 농지나 개발예정지 등도 일정 요건을 충족하면 공공이 매입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 농지를 처분할 길이 막힌 농민들에게 국가가 최소한의 안전망이 돼줘야 한다.
 
아울러 농지연금과 농지이양 은퇴직불제를 더욱 확대해 농민들이 농지를 급매하지 않고도 안정적인 노후소득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동시에 청년농과 후계농이 농지를 쉽게 임차하거나 매입할 수 있도록 장기 임대와 공동영농, 농지 집적화 정책도 강화해야 한다. 농지가 은퇴농에서 청년농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이야말로 농업의 미래를 위한 가장 중요한 투자다.
 
무엇보다 이번 전수조사는 적발과 처벌을 위한 행정이 아니라 국가 농지정책을 새롭게 설계하는 출발점이 돼야 한다. 지역별 농지 이용 실태를 분석해 농지의 집적화와 규모화를 추진하고 비효율적으로 이용되는 농지를 생산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조사 결과를 규제의 근거로만 활용한다면 농민들의 불안과 시장 위축은 더욱 커질 것이다. 반대로 이를 농지 이용의 효율성을 높이고 농업 구조를 개선하는 정책자료로 활용한다면 전수조사는 우리 농업의 새로운 전환점이 될 수 있다.
 
농업은 단기간의 성과를 위해 존재하는 산업이 아니다. 수십 년 동안 농촌을 지켜온 농민들의 삶을 존중하고, 다음 세대가 희망을 가지고 농업에 뛰어들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농정의 본질이다. 정부는 농민을 규제의 대상이 아니라 농업을 함께 지켜갈 동반자로 바라봐야 한다. 농지 전수조사의 성공 여부는 얼마나 많은 위반 사례를 적발했는지가 아니라 농민의 삶을 안정시키고 농촌경제를 살리며 청년농에게 새로운 기회를 열어주었는지에 달려 있다.
 
지금 농촌에 필요한 것은 단속이 아니라 농지가 농민에게는 희망이 되고 청년에게는 미래가 되며 국가에는 식량안보를 지키는 소중한 자산이 될 수 있도록 보다 따뜻하고 현실적인 농지정책이 마련되기를 기대한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댓글0
0 / 300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