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대표팀은 이번에도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지 못했다. 그러나 중국 시장에는 월드컵이 있었다. 대회가 시작되자 중국 TV와 쇼핑몰 전광판에는 메시와 호날두, 음바페, 홀란드가 등장하는 광고가 쉴 새 없이 흘러나왔다. 중국 기업들은 세계적인 축구 스타들을 앞세워 대규모 마케팅 경쟁을 벌였고, 경기 다음 날이면 밤을 새워 경기를 봤다는 이야기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었다.
스페인과 아르헨티나가 맞붙은 결승전은 이러한 열기를 반영하듯 이례적으로 CCTV1과 CCTV5에서 동시에 중계됐다. 연장 막바지, 시계가 오전 6시를 가리키자 CCTV1 화면은 정규 뉴스로 전환됐다. 한국이라면 경기 흐름에 맞춰 뉴스 편성을 몇 분쯤 늦추는 게 자연스러운 순간이었다. 화면 아래에는 중계가 CCTV5에서 계속된다는 안내가 떴다. 경기 자체는 사라지지 않은 셈이다.
그러나 하프타임 공연은 달랐다. 세계적 팝스타들이 무대에 올랐지만, 중국 방송은 그 시간을 광고와 경기 해설로 채웠다. 공연 중계권을 따로 확보하지 않았다는 설명도 있었고, 중국 소셜미디어에서는 다른 배경을 거론하는 해석도 이어졌다.
스포츠 중계에서 이런 장면은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2021년 도쿄올림픽 개회식에서 대만 선수단 입장 당시 중국 중계 플랫폼은 다른 프로그램으로 화면을 전환했다. 2024년 파리올림픽 개회식에서는 성소수자 관련 장면이 송출되는 동안 CCTV 해설이 멈췄다.
영화와 드라마에서도 비슷한 방식이 나타난다. '미니언즈: 라이즈 오브 그루'에는 악당이 체포되고 주인공이 가정으로 돌아갔다는 설명이 결말에 덧붙었고, '프렌즈'에서는 일부 대사가 삭제되거나 다른 의미로 번역됐다.
공통점은 차단보다 재구성에 있다. 외부 콘텐츠를 모두 막는 것도, 원형 그대로 내보내는 것도 아니다. 이야기의 큰 줄기는 받아들이되, 무엇을 보여주고 어떤 의미로 전달할지는 중국 내부의 기준에 따라 다시 정해진다.
물론 외국 콘텐츠를 자국 시장에 맞게 현지화하는 일은 중국만의 현상은 아니다. 다만 중국에서는 방송 질서와 산업적 이해, 문화적 허용 범위와 정치적 민감성이 함께 작동한다. 같은 콘텐츠도 중국에 들어오면 조금 다른 얼굴로 소비되는 이유다.
이런 재구성이 사소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날 하프타임, 세계의 많은 시청자가 BTS의 무대를 지켜보는 동안 중국 시청자는 그 자리에서 자국 광고를 봤다. 누군가에게는 월드컵 결승의 기억으로 남은 BTS의 무대가, 다른 누군가에게는 아예 존재하지 않은 장면이 된 것이다. 같은 경기를 보고도 각자의 머릿속에 남는 세계가 서로 다르다. 이런 작은 어긋남이 수없이 쌓이는 것이다.
중국인이 같은 사건을 두고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일 때, 우리는 흔히 가치관이나 정치적 성향의 차이를 먼저 떠올린다. 그러나 이번 월드컵에서 중국 시청자가 본 화면과 우리가 본 화면은 같지 않았다. 어떤 장면은 빠지고, 어떤 표현은 달라지고, 어떤 맥락은 다른 설명과 함께 전달됐다.
무엇을 보고 무엇을 보지 못했는지가 쌓이면, 세계를 이해하는 출발점 자체가 달라진다. 같은 것을 보았다고 믿는 동안, 우리는 서로 다른 것을 보고 있었다.
- 최여진 맥스밸류 캐피털 최고경영자(CEO), 중국 사회과학원 대학 국제커뮤니케이션 박사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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