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환의 교육&시선] 서·논술형 수능 그리고 공교육과 사교육

<교육&시선>은 무너져가는 공교육의 현장, 학령인구 감소, 요동치는 대입 제도 속에 초중등·고등교육의 이슈를 진단하고, 당면한 교육 현안·과제들을 날카로운 시선으로 짚어봅니다. 또 한편으론 지속 가능한 대안을 탐색합니다. 때로는 우리 사회에 대한 냉철하지만 따뜻한 시선도 담겠습니다.
차정인 국가교육위원회 위원장이 1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2026년 제8차 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백두산 기자
차정인 국가교육위원회 위원장이 1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2026년 제8차 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백두산 기자]
생성형 인공지능(AI)이 단 몇 초 만에 최적의 해답을 도출해내는 시대다. 정답을 빠르게 찾아내는 능력은 이미 AI가 인간을 앞지르고 있다. 이제 정답 찾기에 갇힌 기존 교육 패러다임과는 작별을 고할 때다. 묵직한 물음을 던지고, 산재한 지식 데이터를 능동적으로 재구성하는 주체성이 미래 인재의 새로운 척도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학교 현장은 여전히 선택형 객관식 시험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해진 보기 중 답을 고르는 훈련을 십수 년간 되풀이하는 대입 측정 방식으로는 미래 사회가 요구하는 자율적 탐구자를 육성하기 어렵다. 암기 위주의 단편적 평가를 넘어 학생의 비판적 사고력과 논증 능력을 진단하는 서·논술형 평가 체제로의 전환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다.

대통령 직속 국가교육위원회(국교위)가 대입 수능에 서·논술형 문항 도입 구상을 제시하며 사회적 공감대 형성에 나선 까닭도 여기에 있다. 그간 서·논술형 도입의 최대 걸림돌은 막대한 채점 인력과 비용, 그리고 채점자 개인 성향에 따른 공정성 논란이었다. 하지만 최근 현장 토론회에서 제시되었듯, AI 채점 기술은 이 거대한 난제를 푸는 열쇠가 될 수 있다. AI를 단순 성적 산출 기계가 아닌, 사전 설정 기준에 따라 평가 기초안과 채점 근거를 신속·정확히 정립해 주는 유능한 보조자로 활용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문제는 현실적으로 당장 어려운 상황이라는 점이다. 일례로 AI 시대에 아이들이 키보드를 주로 쓰면서 손글씨가 약해지고 있다. 디지털 기기 활용이 늘면서 연필을 쥐는 악력이 약해지고 글씨체가 엉망인 아이들이 늘고 있다. 사교육 시장에선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글씨 교정학원이나 단기 특강 같은 프로그램에 대한 수요가 들썩이고 있다는 점이다.

공교육에선 무의미한 사교육 시장을 만들 필요가 없다. 학부모와 아이들의 불안감을 조장할 필요가 없다. 글씨를 바르게 쓰고 생각의 기초를 다지는 과정은 공교육의 영역 내에서 충분히 다뤄져야 할 기본 과제다. 교육당국은 불필요한 사교육 마케팅에 학부모들이 흔들리지 않도록 초등 기초교육 과정 내 바른 글씨 쓰기와 기초 문해력 교육을 더욱 철저히 강화하고 책임지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물론, AI 채점 도입을 둘러싼 우려도 엄존한다. 핵심은 ‘평가의 객관성과 신뢰도를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다. 기술적 오류나 알고리즘의 불투명성 우려를 해소하려면 '인간 중심 통제(Human-in-the-loop)' 원칙이 철저히 확립돼야 한다. AI는 채점 근거와 1차 판정안을 제시하는 역할에 머물고, 최종 성적 확정권은 온전히 현장 교사에게 부여해야 한다. 이에 더해 인간 평가자와 AI 알고리즘 간의 판정 일치도를 정기적으로 공개하고, 이상 답안 감시 및 재심의 인프라를 다중으로 구축해야 사회적 승인을 얻을 수 있다.

사교육 시장의 변칙적 팽창 역시 치밀하게 대비해야 한다. 서·논술형 평가가 도입되면 정형화된 글쓰기 기술을 파는 맞춤형 과외가 극성을 부릴 것이란 지적이 과언은 아니다. 이 부작용을 차단하는 근본책은 평가의 축을 ‘단순 결과물 제출’에서 ‘교실 수업 속 과정 중심 평가’로 옮기는 것이다. AI 활용으로 채점 업무 부담을 줄인 교사는 확보된 시간으로 학생 개별 맞춤형 피드백과 토론·글쓰기 수업 설계에 집중할 수 있다. 여기에 정부 차원의 ‘AI 기반 공공 논술 피드백 시스템’을 전국 학교에 보급해 정규 교육과정 내에서 충분한 대비가 가능해진다면, 사교육 의존을 저지함과 동시에 지역 간 교육 격차도 완화할 수 있다.

서·논술형 평가와 지능형 채점 도입의 궁극적 지향점은 대입 변별력 확보가 아니다. 교실의 풍경과 아이들의 학습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데 있다. 평가 제도가 교육과정을 규정하듯, 수능이 생각하는 역량을 측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때 교실은 토론과 프로젝트 중심의 배움터로 재생될 수 있다.

AI 채점 기술은 해답을 대신 제시하는 전능한 도구가 아니라, 우리가 오랫동안 지향해 온 ‘역량 중심 교육’으로 건너가게 돕는 유용한 교량이다. 교육당국은 단편적 제도 변경을 넘어, 교원의 평가 전문성 고양과 신뢰할 수 있는 기술 기반 조성에 신중하고 단계적으로 나서야 한다. 수동적 정답 맞히기 시대를 끝내고, 스스로 물음을 던지는 참된 교육 대전환의 길에 우리 아이들의 미래가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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