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강' 미국 여권의 추락…20년 만에 1위서 10위로

  • 미국, 외교자산 힘입어 여권 경쟁력 유지했지만 평화지수는 134위

사진Getty Images
[사진=Getty Images]

세계 각국 여권의 ‘힘’이 단순한 여행 편의성을 넘어 국가의 평화 수준과 외교적 신뢰도를 보여주는 지표가 되고 있다. 싱가포르와 한국, 일본이 세계 최상위권을 차지한 반면 한때 가장 강력한 여권으로 꼽혔던 미국은 20년 만에 10위까지 내려앉았다.
 
CNN은 21일(현지시간) 헨리앤파트너스가 발표한 ‘헨리 여권지수’ 20주년 보고서를 인용해 여권 파워와 국가의 평화 수준 사이에 강한 상관관계가 있다고 보도했다.
 
헨리 여권지수는 여권 소지자가 사전 비자 없이 방문하거나 도착비자를 받을 수 있는 목적지 수를 기준으로 각국의 이동 자유도를 평가한다.
 
2026년 7월 기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여권은 싱가포르 여권이다. 싱가포르 국민은 전 세계 192개 목적지를 무비자로 방문할 수 있다. 2006년과 비교하면 무비자 방문 가능 지역이 70곳 늘었다.
 
한국과 일본은 아랍에미리트(UAE)와 함께 공동 2위에 올랐다. 세 나라 여권으로 방문할 수 있는 무비자 목적지는 각각 188곳이다. 20년 동안 한국은 73곳, 일본은 60곳이 늘었다. UAE는 무려 153곳이 증가하며 가장 가파른 상승세를 보였다.
 
반면 미국은 아이슬란드와 함께 공동 10위에 머물렀다. 미국 여권 소지자가 무비자로 방문할 수 있는 목적지는 180곳으로, 2006년의 130곳보다 50곳 늘었다. 절대적인 이동 가능 범위는 확대됐지만 다른 국가들의 증가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순위가 하락했다.
 
2006년 미국은 덴마크, 핀란드와 함께 세계 1위권에 있었다. 그러나 현재 헨리 지수는 같은 점수를 받은 여러 국가를 하나의 순위로 계산하기 때문에 실제로는 미국보다 앞선 나라가 36개국에 달한다.
 
보고서는 이 같은 변화가 각국의 경제력뿐 아니라 외교 관계와 평화 수준, 국제사회가 해당 국가의 제도와 국민에게 부여하는 신뢰를 반영한다고 분석했다.
 
헨리 여권지수를 만든 크리스티안 H. 케일린 헨리앤파트너스 회장은 CNN에 “20년간의 데이터는 여권의 힘이 한 국가의 지정학적 자본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는 지표 가운데 하나라는 점을 드러낸다”고 밝혔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여권은 다른 나라들이 무역과 투자, 안보, 협력의 파트너로 삼고 싶어 하는 국가들이 보유하고 있다”며 “이동성은 결국 다른 국가들이 특정 국가와의 관계에 얼마나 높은 가치를 두는지를 보여주는 척도”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헨리 여권지수와 경제평화연구소의 세계평화지수를 비교하면 상위권 국가 상당수가 겹친다. 싱가포르는 여권지수 1위이면서 세계평화지수에서도 8위를 기록했다. 일본을 비롯해 스위스, 아일랜드, 오스트리아, 포르투갈, 핀란드, 덴마크, 뉴질랜드, 캐나다, 체코, 말레이시아도 두 지수에서 모두 상위권에 포함됐다.
 
평화로운 사회와 안정적인 제도, 국제적 협력 관계를 갖춘 국가는 자국민이 다른 나라에 입국할 때도 높은 신뢰를 얻는다는 의미다. 여권이 개인의 여행증명서인 동시에 한 국가가 국제사회에서 축적한 신뢰와 외교적 자본을 압축해 보여주는 문서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다만 미국은 대표적인 예외로 꼽혔다. 미국은 헨리 여권지수에서는 10위를 유지했지만 세계평화지수에서는 134위에 그쳤다. 이스라엘도 여권지수 18위인 반면 평화지수는 149위였다.
 
헨리앤드파트너스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여권 경쟁력이 수십년간 축적한 외교적 자본과 지정학적 영향력, 경제적 중요성, 제도와 여행 서류에 대한 국제적 신뢰에서 비롯됐다고 분석했다. 국내외 갈등이나 군사적 긴장이 분명히 상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존에 쌓아온 외교·경제적 영향력이 이동성을 어느 정도 뒷받침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20년간 순위 하락은 과거의 외교적 자산만으로 여권의 우위를 영구적으로 유지하기 어렵다는 점도 보여준다. CNN은 여권 파워가 평화 수준만으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지만, 국가가 국제사회에서 얼마나 안전하고 신뢰할 만한 파트너로 인식되는지가 시민들의 이동 자유와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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