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부가 미국 정부에 자국민 보호를 공식적으로 요청했다. 방한 중인 미 국무부 고위 인사를 21일 서울에서 만나 이민정책 집행 과정에서 우리 국민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해 달라고 직접 요청한 것이다. 300명 넘는 한국인 근로자가 붙잡혀 전세기로 돌아와야 했던 조지아 공장 단속 사태가 벌어진 지 10개월 만이다.
박종한 외교부 경제외교조정관은 이날 제이슨 에반스 미 국무부 관리차관을 면담하고, 미국의 이민정책과 관련해 우리 국민에게 "의도하지 않은 피해나 부당한 권익 침해"가 없도록 미측의 관심과 지원을 요청했다고 외교부가 22일 밝혔다.
표현 하나하나가 예사롭지 않다. '부당한 권익 침해'는 지난해 9월 이재명 대통령이 조지아 사태 당시 썼던 바로 그 말이다. 당시 미 이민세관단속국(ICE)은 조지아주 서배나 인근 현대차·LG에너지솔루션 배터리 공장 건설 현장을 급습해 475명가량을 체포했고, 이 가운데 300명 이상이 한국인이었다. 일부는 수갑과 족쇄를 찬 채 끌려갔다. 미 국토안보부 역사상 단일 사업장 최대 규모의 단속이었다. 정부가 석방 협상에 나서 전세기를 띄우고서야 한국인 직원들은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 사태로 오래 묵은 비자 문제가 동맹의 상처로 번졌다. 한국 기업들은 미국 제조업에 수천억 달러를 쏟아붓고 있는데, 정작 공장을 짓고 운영할 기술 인력에게는 전용 비자가 없다. 상당수가 단기 상용 비자나 무비자로 들어가 설치와 시운전 같은 현장 업무를 해 왔고, 이 애매한 지대를 ICE는 불법으로 간주했다. 호주처럼 한국인 전문인력에게 별도 비자를 주자는 E-4 비자 법안은 아직 미 하원 법사위에 묶여 있다. 이 대통령이 올봄에 방한한 미 상원의원들에게 직접 비자 개선을 촉구했을 정도다.
트럼프 대통령의 두 번째 임기 들어 단속 기조는 오히려 더 세졌다. 행정명령으로 외국인 입국과 이민 심사를 대폭 강화했고, 하루 3000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진 체포 할당량이 조지아 같은 대규모 사업장 단속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 조정관이 마주 앉은 상대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에반스 차관은 조지아 사태 직후인 지난해 9월 취임한 직업 외교관으로, 조직과 예산은 물론 비자를 발급하는 영사 업무까지 국무부 행정 전반을 총괄한다. 비자 문제를 풀 열쇠를 쥔 당사자에게 직접 얘기한 셈이다.
박 조정관은 이날 한미 간 활발한 인적 교류가 양국 국민의 상호 이해를 높이고 미래지향적 동맹을 지탱하는 핵심 동력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외교부는 앞으로도 한미 간 다양한 소통 계기에 인적교류를 포함한 여러 분야의 협력을 강화하고 양국 관계의 지평을 넓혀 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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