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전쟁 장기화에 현금 사용 급증…인터넷 차단·증세 여파

  • 모바일 인터넷 차단에 카드결제 차질…부가세 22% 인상·中企 과세 문턱 낮춰

러시아 루블화 사진로이터연합뉴스
러시아 루블화 [사진=로이터·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와 경기 둔화, 잇단 모바일 인터넷 차단이 겹치면서 러시아에서 현금 수요가 빠르게 늘고 있다.

19일(현지시간) BBC가 러시아 중앙은행 자료를 분석한 결과 올해 들어 러시아 시중에 추가로 풀린 현금은 1조5600억 루블(약 29조7000억원)에 달했다. 코로나19 대유행 기간을 제외하면 같은 기간 기준 가장 큰 증가폭이다.

현금 수요가 급증한 배경에는 러시아 당국의 모바일 인터넷 차단이 있다. 우크라이나의 드론 공격이 이어지자 러시아 정부는 드론 운용을 방해한다는 이유로 전국 곳곳에서 모바일 인터넷 접속을 반복적으로 제한하고 있다.

인터넷이 끊기면서 카드와 모바일 결제를 이용하지 못하는 사례가 늘자 시민들이 비상 상황에 대비해 현금을 확보하고 있다고 BBC는 전했다.

러시아 정부의 증세도 현금 거래 확산을 부추긴 요인으로 꼽힌다. 러시아는 전쟁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올해 1월 부가가치세율을 기존 20%에서 22%로 인상하고, 중소기업에 부가가치세를 부과하는 매출 기준도 낮췄다.

세금 부담이 커지자 식당과 약국, 미용실, 동네 상점 등에서는 신고 매출을 줄이기 위해 고객들에게 현금 결제를 요청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직원들에게 임금을 현금으로 지급해 급여 관련 세금을 피하는 이른바 '봉투 급여'도 확산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러시아 최대 중소기업 단체인 오포라 러시아가 지난 5월 실시한 조사에서도 사업자의 약 6%가 현금영수증을 발급하지 않는 등 세금 부담을 줄이기 위한 '회색 거래 방식'을 활용하고 있다고 답했다.

러시아 중앙은행이 전쟁으로 촉발된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고금리를 유지하면서 은행 예금금리가 연 10% 수준에 달하지만, 은행에서는 오히려 자금이 빠져나가고 있다.

러시아 중앙은행에 따르면 지난 5월 한 달간 은행 계좌에서 인출된 자금은 5500억 루블(약 10조5000억원)에 달했다. 이 가운데 2000억 루블(약 3조8000억원)은 정기예금에서 빠져나왔다.

전쟁에 따른 경제·사회적 불안이 커지면서 은행에 돈을 맡기기보다 옛 소련 시절처럼 현금을 집에 보관하려는 심리가 되살아나고 있다. 러시아에서는 2022년 9월 부분 동원령 발표와 2023년 6월 용병기업 바그너그룹의 무장반란 당시에도 현금 인출이 급증한 바 있다.

현금 거래 확대는 재정적자에 시달리는 러시아 정부의 고민도 키우고 있다. 현금 결제가 늘어날수록 기업들이 매출과 임금을 축소 신고하기 쉬워져 세금 징수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러시아 경제개발부는 지난 5월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0.4%로 낮췄다. 전망대로라면 러시아 경제는 전쟁이 시작된 2022년 이후 가장 낮은 성장률을 기록하게 된다.

이란 전쟁에 따른 국제유가 상승으로 정부 세입의 약 4분의 1을 차지하는 석유·가스 부문은 수혜를 보고 있지만, 전쟁 장기화에 따른 재정 부담과 고금리, 증세 여파로 경제 전반의 성장세는 둔화하고 있다.

러시아 최대 은행 스베르방크의 타라스 스크보르초프 최고재무책임자(CFO)는 "현금이 현금 수송이나 현금자동입출금기(ATM) 등을 통해 은행 시스템으로 돌아오지 않고 사람들의 손에 머물고 있다"며 "매우 우려스러운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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