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물가 안정 기조로 가격 조정을 미뤄왔던 식품기업들이 고환율과 국제유가 상승에 따른 원가 부담을 견디지 못하고 잇달아 가격 인상에 나서고 있다. 중동 정세 불안에 따른 원자재 가격 상승 우려까지 더해지면서 먹거리 물가 부담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CJ제일제당은 대형마트 기준 오는 30일부터 햇반과 만두, 생선구이 등 8개 카테고리 27개 품목의 가격을 평균 8% 인상한다. 품목별 인상률은 햇반 12%, 생선구이 8.4%, 만두 4.6%다. 다만 햇반 컵반과 장류, 냉장·냉동면 등 일부 품목은 소비자 부담을 고려해 인상 대상에서 제외했다.
사조도 다음 달 3일부터 참치캔과 수산 통조림, 장류, 식용유지 등의 출고가를 올린다. 참치캔은 10%, 꽁치·고등어 등 수산 통조림은 20%, 고추장·된장·쌈장과 참기름·들기름 등은 각각 12% 인상된다. 일부 어묵과 맛살 제품은 이미 지난 2일부터 6~7% 가격이 오른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오뚜기는 지난 16일부터 카레와 당면, 케첩, 후추 등 29개 품목의 출고가를 조정했다. 평균 인상률은 후추류 17%, 당면류 10%, 카레류와 케첩류는 각각 6.1%다. 롯데칠성음료도 지난달 26일부터 칠성사이다와 펩시콜라, 밀키스 등 12개 브랜드 44개 품목의 출고가를 평균 5.3% 인상했다.
외식업계 역시 가격 조정이 이어지고 있다. 더본코리아는 지난달 역전우동과 롤링파스타, 새마을식당 등 11개 브랜드 일부 메뉴 가격을 평균 11% 인상했다. 롯데리아는 지난 5월, 메가MGC커피와 더벤티는 지난달 각각 주요 메뉴 가격을 인상했다. 굽네치킨은 닭다리 순살 제품의 중량을 기존 800g에서 700g으로 줄이며 '슈링크플레이션' 논란이 일기도 했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3.2%로 지난 5월(3.1%)에 이어 2개월 연속 3%를 웃돌며 2023년 12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가공식품 물가 상승률은 0.9%에 그쳤지만 최근 주요 식품기업들이 잇달아 가격 인상에 나서면서 소비자 체감 물가 부담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기업들은 공통적으로 원재료와 포장재 가격, 물류비 상승을 가격 인상 배경으로 꼽고 있다. 롯데칠성음료에 따르면 지난해 5월 t(톤)당 2440달러 수준이던 알루미늄 가격은 올해 5월 3670달러로 약 50% 상승했고, 나프타 가격도 같은 기간 t당 568.6달러에서 957.7달러로 약 68% 뛰었다.
고환율도 부담을 키우고 있다. 지난달 말 장중 1549.4원까지 치솟았던 원·달러 환율은 지난 16일 기준 1490원대로 다소 안정됐지만 중동 정세와 달러 강세 등의 영향으로 변동성이 이어지고 있다. 원재료와 포장재를 해외에서 조달하는 식품업계에서 고환율은 제조원가 부담으로 작용한다.
여기에 미국과 이란의 무력 충돌 재개로 호르무즈 해협 긴장이 높아지면서 국제유가까지 다시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석유공사 오피넷에 따르면 지난 15일 기준 브렌트유는 배럴당 88.1달러로 이달 1일보다 23.1% 상승했고, 두바이유와 서부텍사스산원유(WTI)도 각각 16.0%, 20.3% 올랐다.
실제로 한국은행도 지난 16일 발표한 '7월 경제상황 평가'에서 중동 전쟁 여파로 원유와 원자재 가격이 상승하면서 기업들의 비용 부담이 확대됐다고 진단했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원가 부담을 자체적으로 흡수해 왔지만 더 이상 버티기 어려운 수준"이라며 "환율과 국제 원자재 가격이 안정되지 않는다면 식품과 외식업계를 중심으로 가격 조정이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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