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기술도 사줄 고객이 없으면 성장하지 못한다. AI와 로봇 같은 신산업 스타트업은 기술을 갖추고도 납품 실적이 없어 시장 진입에 어려움을 겪는다. 정부가 혁신제품을 가장 먼저 구매해 첫 번째 고객이 되면 공공기관이 성능을 검증하고, 기업은 이를 발판 삼아 민간시장과 세계시장으로 진출할 수 있다. 그 중심에 백승보 조달청장이 있다. 그는 공공조달을 단순한 구매행정에서 AI 산업의 초기시장을 만드는 국가 성장전략으로 전환하고 있다. 질문은 분명하다. 대한민국은 공공조달을 통해 세계적인 AI 기업을 키울 수 있을까.
스타트업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자금과 인재, 기술이 아니라 고객이다. 아무리 좋은 제품을 만들어도 사주는 사람이 없으면 기업은 성장할 수 없다. 특히 AI와 로봇처럼 새로운 기술과 제품은 시장에서 성능과 안전성을 검증받기 어렵다. 정부와 공공기관은 납품 실적을 요구하고, 대기업도 검증되지 않은 제품을 쉽게 구매하지 않는다. 실적이 있어야 팔 수 있지만 팔지 못하니 실적을 만들 수 없는 모순에 혁신기업은 빠진다.
백승보 청장이 주목하는 지점이 여기다. 정부가 먼저 제품을 구매해 혁신기업의 첫 번째 고객이 되는 것이다. 조달청이 유망한 AI 제품을 발굴해 시범구매하면 공공기관은 현장에서 이를 사용하고, 기업은 그 과정에서 성능을 검증하고 문제점을 개선하며 납품 실적을 확보한다. 정부 구매는 제품 하나를 사주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기술의 가능성을 확인하고 시장의 신뢰를 만드는 역할을 한다. 공공조달은 이제 물건을 싸게 사는 행정절차가 아니라 새로운 산업을 만들고 혁신기업을 키우는 국가 성장전략이 되어야 한다.
대한민국의 공공조달 시장은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을 합쳐 매년 200조 원을 훌쩍 넘는다. 이 거대한 구매력을 어디에 쓰느냐에 따라 산업의 미래가 달라진다. 기존 공공조달은 가격과 안정성, 즉 이미 시장에서 검증된 제품을 사는 것을 가장 안전한 선택으로 여겼다. 그러나 정부가 검증된 제품만 사면 혁신기업은 공공시장에 들어올 기회를 얻기 어렵다. 혁신제품은 처음부터 완벽할 수 없고, 현장에서 쓰고 개선하는 과정을 거쳐야 완성도가 높아진다. 새로운 기술에는 새로운 조달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이 백승보 청장의 문제의식이다.
백승보 청장이 강조하는 전략적 공공조달의 핵심은 공공조달을 구매행정이 아닌 산업정책으로 활용하는 데 있다. 정부의 거대한 구매력이 AI 산업의 초기시장을 만들고 기업 성장의 마중물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연구개발 지원만으로는 산업을 완성할 수 없다. 개발된 기술이 제품이 되고, 그 제품이 실제 시장에서 쓰여야 산업이 성장한다. AI 산업정책의 마지막 퍼즐은 시장이며, 조달청은 그 시장을 가장 먼저 열어줄 수 있는 기관이다.
AI 제품은 데이터 활용 능력과 학습 가능성, 지속적인 성능 개선과 확장성까지 함께 평가해야 하는 만큼, 기존 물품과 같은 기준으로 평가하면 기술의 혁신성을 제대로 판단하기 어렵다. 우수한 기술을 가진 기업도 공공조달 시장에 진입하지 못할 가능성이 커지는 이유다. 조달청이 AI 제품을 위한 별도 평가트랙을 마련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좋은 기술을 가진 기업을 발굴해 정부가 제품을 구매하고, 공공기관이 실제로 사용하며 현장에서 성능을 검증하고 문제점을 보완한다. 효과가 확인된 제품은 다른 공공기관으로 구매를 확대한다. 이러한 성장사다리가 만들어지면 AI 스타트업의 생존 가능성이 크게 높아지고, 납품 실적을 확보한 기업은 민간기업과 금융기관의 신뢰도 얻을 수 있다.
그동안 AI 정책은 연구개발과 자금지원 중심이었다. 이제는 개발한 제품을 정부와 공공기관이 사주는 정책이 필요하다. AI 산업 육성정책의 패러다임을 지원에서 구매로 확장해, 기술개발비를 주는 데서 나아가 제품을 쓸 시장까지 만들어줘야 한다.
AI는 로봇과 자동차, 공장과 농업기계 속으로 들어가 현실세계에서 움직이는 피지컬 AI 시대를 열고 있다. 제조업 강국인 대한민국에는 소프트웨어 중심 AI 경쟁에서 제조업과 하드웨어 역량이라는 강점이 살아날 거대한 기회다. 다만 새로운 기술이 시장에 진입하려면 실증이 필요하다. 자율주행 장비와 서비스 로봇, 스마트 안전장비와 AI 의료기기는 연구실이 아니라 실제 도로와 병원, 공장과 공공시설에서 써봐야 성능과 안전성을 제대로 검증할 수 있다.
대한민국 AI 기업의 최종 목표는 국내시장이 아니라 세계시장이다. 해외 고객은 어느 기관이 제품을 사용했고 어떤 성과를 냈는지를 중요하게 본다. 정부와 공공기관의 구매 실적은 강력한 신뢰 자산이 될 수 있다. 공공조달의 역할은 제품 구매로 끝나서는 안 되며, 공공기관 구매에서 민간시장으로, 국내시장에서 해외시장으로 이어지는 성장사다리를 연결해야 한다. 국내에서 축적된 실증자료와 납품 실적이 해외 공공조달과 수출로 이어지도록 지원해, 공공기관의 사용 경험이 기업의 해외 진출 보증서가 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조달청은 AI 기업을 지원하는 동시에 스스로 AI를 활용해야 하는 행정기관이다. 방대한 계약·가격·입찰 데이터를 분석해 적정 가격을 제시하고, 품목별 가격 변동과 공급 상황을 예측하며, 기업 맞춤형 조달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 복잡한 조달절차를 안내하는 AI 상담서비스를 구축하면 공공시장 진입 문턱도 낮아진다. 백승보 청장은 AI 시대가 공공조달에도 패러다임의 대전환을 요구한다며, 디지털 조달청을 넘어 AI 조달청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AI가 반복 업무와 데이터 분석을 맡으면 조달 공무원은 기업 지원과 정책 판단, 현장 문제 해결에 더 집중할 수 있다. AI가 공무원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공무원이 더 정확하고 빠르게 판단하도록 돕는 것이다.
방대한 입찰·계약 데이터를 분석하면 이상 거래와 담합 가능성을 더 빠르게 찾아낼 수 있다. 특정 기업의 반복 낙찰이나 순번제 계약 나눠먹기, 시장가격 대비 과도한 계약 사례 등 사람이 발견하기 어려운 패턴을 AI가 찾아낼 수 있다. 사후 조사에서 사전 감지로 전환하면 조달 비리를 예방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다만 AI가 모든 것을 결정해서는 안 되며, 이상 징후를 찾아 공무원의 판단을 지원하는 역할에 머물러야 한다. 잘못된 데이터로 정상 기업이 의심받을 가능성도 있는 만큼 최종 확인과 책임은 사람이 져야 한다.
AI 산업의 수도권 집중도 풀어야 할 과제다. 지역기업은 기술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제품을 실증할 기회가 부족해 성장이 막히는 경우가 많다. 조달청이 지역의 AI·로봇·수소에너지·스마트농업 기업을 발굴해 공공시장 진입을 지원하고, 지역 공공기관과 지자체가 지역 혁신제품을 먼저 써주면 기업은 가까운 곳에서 실증 기회와 납품 실적을 얻을 수 있다. 기업이 성장하면 좋은 일자리가 생기고 청년이 지역에 머물 수 있으며, 지역대학·연구기관·기업·공공기관이 연결되는 혁신 생태계도 만들어질 수 있다. 공공조달이 지역균형발전과 연결되는 것이다.
대한민국 산업정책은 오랫동안 연구개발비 지원과 정책자금 대출, 창업지원금 지급 중심으로 운영돼 왔다. 필요한 정책이지만, 기업에게 더 중요한 것은 매출을 일으켜줄 고객이다. AI 시대의 정부 역할도 돈을 주는 정부에서 제품을 사주는 정부로 확장해야 한다. 정부가 첫 번째 고객이 되어 성능을 검증하면, 기업은 이를 발판 삼아 민간시장을 거쳐 세계시장으로 나간다. 이것이 백승보 청장이 추진하는 AI 혁신조달의 가장 중요한 의미다. 지원금은 일시적이지만 고객과 시장은 기업을 지속적으로 성장시킨다. AI 산업정책의 중심도 기술개발 지원에서 기술을 구매하고 활용하는 수요정책으로 확장돼야 한다.
AI 산업 경쟁은 개발 속도만큼이나 현장 검증과 시장 출시 속도의 경쟁이다. 대한민국은 세계적인 디지털 인프라와 제조업 기반, 우수한 인재에 더해 200조 원이 넘는 공공조달 시장을 갖고 있다. 정부와 지자체, 공공기관을 AI 신기술의 실증 현장으로 활용하면 대한민국 전체가 거대한 AI 테스트베드가 될 수 있다. 기업이 기술을 개발하면 정부가 사고 공공기관이 쓰며, 기업은 현장 데이터로 제품을 개선하고 검증된 제품은 민간시장과 세계시장으로 확산된다. 정부가 첫 번째 고객, 공공기관이 실증 현장, 민간기업이 확산 주체가 되는 생태계가 만들어진다면 대한민국에서도 세계적인 AI 기업이 나올 가능성은 더욱 커진다.
백승보 청장에게 주어진 과제는 정부가 필요한 물건을 잘 사는 것이 아니라 공공조달로 대한민국의 미래산업을 키우는 것이다. AI 전용 혁신제품 트랙과 시범구매, 피지컬 AI 육성과 지역 혁신기업 발굴, 조달행정 AX는 모두 공공조달을 AI 산업의 성장사다리로 만든다는 하나의 목표를 향한다. 정부가 첫 번째 고객이 되어 공공기관이 제품을 검증하면 기업은 민간시장과 세계시장으로 나갈 수 있다.
보조금을 주는 정부에서 제품을 사주는 정부로, 기업을 지원하는 정부에서 시장을 만들어주는 정부로 전환하는 것. 좋은 기술을 가진 기업의 제품을 정부가 가장 먼저 사주고, 공공기관이 거대한 테스트베드가 되며, 검증된 AI 제품이 세계시장으로 나가는 것. 그것이 백승보 청장이 이끌어야 할 대한민국 AI 조달혁명의 출발점이다.
:백승보 조달청장:
백승보 조달청장은 조달 행정 전문가다. 조달청 신기술서비스국장과 서울지방조달청장, 조달청 차장을 거쳐 2025년 8월 이재명 정부 첫 조달청장에 임명됐다. AI 등 신기술을 접목한 차세대 나라장터 설계와 창업벤처기업의 공공시장 진입 촉진에 기여해왔다. 취임 후에는 AI 제품 평가트랙과 시범구매를 확대하고 공공기관을 실증 현장으로 활용해, 혁신기업의 초기시장과 납품 실적 확보를 돕는 AI 혁신조달을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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