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석만의 프리즘] 기로에 선 100년 제약산업, 규제가 '명약'은 아니다

AI를 활용해 제작한 이미지 챗GPT
AI를 활용해 제작한 이미지 [챗GPT]

국내 제약산업이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정부는 건강보험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이유로 오는 8월부터 제네릭(복제약)을 중심으로 한 약가 인하 제도를 시행할 예정이다. 동일 성분 의약품의 가격 조정으로 약가를 낮춰 건강보험 재정을 절감하겠다는 것이 정책의 핵심이다. 

건강보험 재정 관리와 국민 의료비 부담 완화는 정부가 반드시 챙겨야 할 책무다. 그러나 정책은 의도만으로 평가받지 않는다. 국민 건강과 산업 경쟁력까지 고려한 결과가 중요하다. 약가를 반복적으로 낮추는 정책이 국내 제약사의 연구개발 기반을 흔들고 신약 개발 의지를 약화시킨다면 단기적인 재정 절감 효과보다 훨씬 큰 사회적 비용을 치르게 될 가능성이 크다.

우리나라에는 100년 안팎의 역사를 가진 제약사들이 적지 않다. 한국전쟁 이후 국민에게 필수 의약품을 공급하며 성장해 온 이들 기업은 이제 바이오의약품과 혁신 신약을 개발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을 시도하고 있다. 국산 신약의 해외 기술수출이 잇따르는 등 국내 제약산업은 새로운 전환점을 맞고 있다.

그러나 신약 개발은 대표적인 고위험·장기 투자 산업이다. 신약 하나를 개발하는 데는 통상 10년 이상의 시간과 수조 원에 이르는 자금이 투입된다. 수많은 후보물질이 임상시험 과정에서 실패하고, 최종 허가까지 이어지는 성공 확률은 극히 낮다. 그럼에도 기업들이 연구개발을 멈추지 않는 이유는 성공한 신약 하나가 매출을 견인할 뿐 아니라 나아가 국민의 생명을 살리고 국가 경제의 새로운 성장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실패를 전제로 하는 산업일수록 정부 정책은 기업이 다시 도전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줘야 한다. 하지만 약가가 지속적으로 인하되는 구조에서는 연구개발에 재투자할 재원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정부가 이번 약가 개편에서 연구개발 비중이 높은 혁신형·준혁신형 제약기업에는 약가 우대 혜택을 부여한다고는 하지만, 당장 매출이 악화되면 중견·중소 제약사는 가장 먼저 연구개발 예산을 줄일 가능성이 높다. 연구개발은 비용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투자다. 투자가 위축되면 결국 신약 개발도 멈출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정부가 추진해야 할 것은 획일적인 약가 인하가 아니라 혁신을 촉진하는 약가 정책이다. 혁신 신약에는 그 가치에 걸맞은 보상을 제공하고, 임상시험 지원과 연구개발 세제 확대, 인공지능(AI) 기반 신약개발 인프라 구축, 데이터 활용 확대, 인허가 절차 개선 등을 함께 추진해야 한다. 건강보험 재정의 효율성과 제약산업 경쟁력은 서로 양립할 수 없는 가치가 아니라 함께 추구해야 할 국가적 과제다.

무엇보다 정책에는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건강보험 재정 부담을 이유로 약가 제도 개편 시행을 앞두고 있는 마당에 다른 한쪽에서는 한정된 건강보험 재정을 탈모 치료에 쓰겠다고 나서는 상황이 아이러니하지 않을 수 없다. 국회예산정책처는 탈모 치료에 건강 보험을 적용할 경우 본인 부담률 등에 따라 건강보험 재정에서 연간 최대 1600억원의 추가 지출이 발생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정부는 제약사를 단순히 약가를 낮춰야 할 대상으로만 봐서는 안 된다. 국민 건강의 최전선에는 제약사가 있다. 감염병이 발생했을 때도, 희귀질환 환자가 마지막 희망을 찾을 때도 결국 답은 새로운 치료제와 혁신 신약이다. 신약 개발은 기업만을 위한 투자가 아니라 국민의 생명과 국가의 미래를 위한 투자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과감하게 연구개발에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야말로 국민 건강을 지키는 가장 확실한 투자인 것이다. 100년의 역사를 이어온 국내 제약사들이 다음 100년에는 세계 시장을 선도하는 혁신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정부의 정책도 규제 중심에서 혁신 중심으로 전환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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