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선 넘는 미술사

선 넘는 미술사
 


오늘날의 걸작은 한때 '선을 넘는 그림'이었다. 사람들은 언제부터 그 그림을 외설이 아닌 예술로 받아들이기 시작했을까.

신간 <선 넘는 미술사>는 19세기 후반 모더니즘 시대 누드화를 둘러싸고 벌어진 예술과 검열의 역사를 따라가며, 아슬아슬한 경계에 있는 '선 넘는 미술사'를 들여다본다. 

오랫동안 서양의 누드화는 신화나 종교의 이야기로 포장하며 아름답고 이상적인 몸을 그렸다. 그러나 근대로 접어들면서 일부 화가들은 있는 그대로의 몸과 인간의 욕망을 솔직하게 표현했다. 이들 작품은 예술과 외설의 경계에서 논쟁을 일으켰고, 화가들은 재판받거나 작품을 압수당했다.

에곤 실레는 1912년 노골적인 나체 그림을 그렸다는 이유로 체포됐다. 뒤틀린 인체와 적나라한 성적 욕망을 숨김없이 드러낸 그의 작품은 법정에서 불태워지기까지 했다. 하지만 '포르노'로 낙인찍혔던 그의 작품은 오늘날 현대미술의 걸작으로 격상돼 세계 주요 미술관에 전시되고, 수백만 달러에 거래된다.


책에는 에곤 실레를 비롯해 구스타프 클림트, 에두아르 마네, 귀스타브 쿠르베,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레크,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등의 이야기가 담겼다. 이들은 체포되고, 조롱받고, 탄압받는 등 집단 폭력의 표적 속에서도 자신이 믿는 예술을 포기하지 않았다. 이들의 작품이 어떻게 점차 자유를 얻고, 불멸의 존재가 되어갔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저자는 예술과 외설의 경계는 시대마다 달라졌지만, 그 경계를 정한 것은 결국 사람이라고 말한다. 과거에는 판사와 종교인이 그 역할을 했다면, 오늘날에는 플랫폼의 규정과 알고리즘도 새로운 검열의 기준이 되고 있다는 점도 짚는다. 그러면서도 '결국 검열의 기준을 세우고 적용하는 것은 여전히 사람의 잣대'라고 강조하며 '우리는 어떤 시야를 가져야 할까'라고 묻는다. 

저자 이지호는 미국에서 현대미술사와 철학, 회화, 디자인 등을 공부한 뒤 전시 기획과 미술 번역, 도슨트 활동 등을 했다. 다양한 현장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어려운 미술사를 쉽고 흥미롭게 풀어낸다.

"1857년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Victoria, 1819~1901)은 런던 사우스 켄싱턴에 있는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의 조각 전시실로 들어서면서 이전에 보지 못한 새로운 ‘예술적 문제’를 마주했습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석고로 만들어진 작품 '다비드'의 사타구니에 달린 한 쌍의 거대한 고환과 축 늘어진 음경을 보았습니다. ‘너무도 인간적인 해부학’은 금욕과 절제를 중시하는 여왕의 눈에는, 나아가 빅토리아 시대의 도덕관념에는 지나치게 노골적이었습니다. 해결책은 놀랍도록 단순했습니다. '다비드의 성기'를 가릴 수 있도록 고리로 걸었다 뺐다 할 수 있는 탈착식 ‘무화과나무 잎사귀’ 조각이 제작된 것입니다. 왕실에서 박물관을 방문할 때마다 이 인공 잎사귀가 조심스럽게 작품 위에 덧씌워졌습니다." (1장 외설의 탄생, 누가 외설스러움을 결정하는가?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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