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말레이시아, 에너지 안보 협력 강화한다…호르무즈 충격이 앞당긴 밀착

박윤주 외교부 1차관오른쪽이 7월 8일 서울에서 열린 제10차 한·말레이시아 정책협의회에서 암란 모하메드 진 말레이시아 외교부 사무차관과 악수하고 있다 사진외교부 제공
박윤주 외교부 1차관(오른쪽)이 7월 8일 서울에서 열린 제10차 한·말레이시아 정책협의회에서 암란 모하메드 진 말레이시아 외교부 사무차관과 악수하고 있다. 사진=외교부 제공

한국과 말레이시아가 액화천연가스(LNG) 공급 안정화에서 원전 협력까지 에너지 안보 공조를 강화하기로 했다. 올해 이란 전쟁과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에너지 수급에 직격탄을 맞은 한국으로서는 해협을 거치지 않는 공급선의 전략적 가치가 어느 때보다 커진 시점이다.

외교부는 박윤주 외교부 1차관이 지난 7일 서울에서 암란 모하메드 진 말레이시아 외교부 사무차관과 제10차 한·말레이시아 정책협의회를 열고 이와 같이 합의했다고 8일 밝혔다.

양측은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 교란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신뢰할 수 있는 국가와의 협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는 데 공감하고, LNG 공급과 석유제품 교역의 안정적 관리는 물론 역내 에너지 안보 강화를 위한 원전 등 전략적 협력을 확대해 나가기로 했다.

말레이시아는 한국의 2위 LNG 공급국이고, 한국은 말레이시아산 정제 석유제품의 2위 수입국이다. 무엇보다 말레이시아산 LNG는 호르무즈 해협을 거치지 않는 항로로 들어온다. 원유 수입의 약 70%를 이 해협에 의존해 온 한국이 이번 사태에서 뼈저리게 확인한 취약점을 정면으로 보완해 주는 공급선인 셈이다.

실제 피해는 컸다.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에 따르면 2월 말 시작된 해협 봉쇄로 한국 국적 선박 26척이 페르시아만에 발이 묶였고, 코스피는 사상 최악의 하루 낙폭을 기록했으며 원화 가치는 17년 만의 최저치로 밀렸다. 이란과 미국이 4월 8일 휴전을 발표한 뒤에도 해협 통항량은 전쟁 이전 수준을 크게 밑돌고 있다.

교역 확대 방안도 논의됐다. 양 차관은 연내 서명을 목표로 협력 중인 양자 자유무역협정(FTA)이 교역 규모를 키우는 동시에 인공지능·디지털, 할랄, 녹색산업, 바이오 등 신산업 협력의 제도적 기반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방산 분야에서는 성과가 이미 눈에 띈다. 박 차관은 2023년 말레이시아 공군의 FA-50 도입에 이어 올해 4월 해군의 '해궁' 도입 등 구체적 성과가 이어지고 있는 점을 평가했고, 양측은 기존 방산협력 양해각서를 토대로 연내 방산공동위원회 신설을 추진 중이라고 확인했다.

두 사업 모두 액수 이상의 의미가 있다. 2023년 2월 말레이시아 국방부와 한국항공우주산업이 체결한 FA-50 계약은 18대, 약 9억2000만 달러 규모로 말레이시아 역사상 최대급 방위력 도입 사업으로 꼽힌다. 당시 입찰에서 FA-50은 인도의 테자스, 파키스탄의 JF-17, 러시아의 미그-35, 튀르키예의 후르제트를 제쳤다. 인도네시아, 필리핀, 태국에 이은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의 동남아 항공기 수출 4번째 사례였다. 초도 물량 인도는 올해 시작되며, 말레이시아 공군은 당초 계획한 4대보다 많은 6대를 연내 인수할 예정이다. 한국항공우주산업은 18대 추가 도입 가능성도 크다고 밝힌 바 있다.

지난 4월 22일 쿠알라룸푸르 방산 전시회에서 계약이 체결된 해궁 수출은 9400만 달러로 규모는 작지만 한국 유도무기 산업의 이정표가 됐다. 2011년부터 국방과학연구소 주관으로 개발돼 2019년부터 LIG넥스원(현 LIG디펜스앤에어로스페이스)이 양산해 온 함대공 요격미사일의 첫 해외 수출이기 때문이다. 적 대함미사일과 항공기 요격이 주 임무인 해궁은 튀르키예 조선업체 STM이 건조 중인 말레이시아 해군의 신형 연안임무함에 탑재된다.

박 차관은 말레이시아를 오랜 우호국이자 전략적 동반자로 평가하고, 양국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호혜적 협력 성과를 만들어 가자고 했다. 암란 차관은 관광과 교육을 통한 인적 교류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2026 말레이시아 방문의 해'를 맞아 더 많은 한국인이 말레이시아를 찾아 주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방한 말레이시아인은 약 33만 명으로 2023년의 24만 명에서 꾸준히 늘었고, 말레이시아를 찾은 한국인은 약 46만 명이었다. 박 차관은 방문 편의를 높이기 위해 양국이 협의 중인 운전면허 상호인정 협정의 연내 체결에 대한 지원을 요청했다.

양측은 한반도 및 지역 정세에 대한 의견도 교환했다. 박 차관은 지난해 아세안 의장국으로서 긴밀히 협력해 준 데 사의를 표하고 한·아세안 포괄적 전략 동반자 관계 비전 이행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협조를 당부했다. 암란 차관은 한반도 평화공존을 위한 한국 정부의 정책과 노력에 지지를 표했으며, 양측은 역내 평화와 안정을 위해 긴밀한 소통을 이어 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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