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세입자는 당장 오늘을 산다

우주성 건설부동산부 기자
우주성 건설부동산부 기자

부동산 시장을 취재하며 전월세 시장 세입자들의 다양한 고충을 숱하게 담으려고 노력했다. 올해는 다르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취재를 위해 기획하고 '발굴'해야 했던 임차인들의 고충이 올해 들어서는 가만히 있어도 곳곳에서 들려온다. 사석에서 만난 지인부터 출입처 관계자, 직장에 이르기까지 이구동성으로 주거 불안을 토로하고 있기 때문이다.
 
말에 실리는 감정의 무게도 확연히 달라졌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어떡하냐"는 단순한 푸념이었다면 이제는 "밀려나겠다"는 조바심, 더러는 절망에 가까운 어조도 감지된다.
 
정부는 전세 중심의 임대차 시장 구조를 개선하고, 시장을 비정상에서 정상으로 돌려놓겠다는 거대한 '당위'를 앞세웠다. 방향성에는 동의할 수 있다. 그러나 적잖이 현실을 도외시하고 있다는 기우는 지우기 어렵다. 정책 실행에 앞서 입주난이 가시화된 시장이 이를 감당할 수 있었는지부터 살폈어야 했다.
 
당위에 치우친 정책의 대가는 고스란히 지표로 드러나고 있다. 한국부동산원 조사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지난 6월 넷째 주 0.35% 오르며 2013년 10월 셋째 주(0.35%) 이후 무려 약 12년 8개월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올해 서울 아파트 전세가격 누적 상승률은 이미 5.1%에 달한다. 지난해 같은 기간 누적 상승률 0.95%와 비교하면 약 5.4배나 가파르게 상승한 상황이다. 전세 사기 여파로 빌라·다세대 수요까지 아파트로 대거 쏠리면서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역대 최고 수준을 잇달아 경신하며 수십 주째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먼 거리를 오가며 출퇴근하는 직장인들이 치솟는 전셋값을 감당하지 못해 외곽으로 밀려나는 현실을 단순히 ‘정상화 과정’의 일시적 잡음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주거는 이들에게 정책 실험의 대상이 아니라 삶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설상가상으로 전세난은 월세 시장마저 삼키고 있다. 전세 매물이 마르고 대출 문턱이 높아지자 세입자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월세 시장으로 밀려난 탓이다. 최근 서울 아파트 임대차 거래 중 월세 비중은 60%를 돌파하며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수요가 몰리니 가격이 뛰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서울 아파트 평균 월세 가격은 이미 150만원을 넘어섰고, 월세가격지수 역시 통계 작성을 시작한 2015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 중이다. 서민들이 체감하는 주거비 부담이 그야말로 한계치에 다다랐음을 보여주는 지표들이다.
 
시장이 체감하는 해결책은 여전히 요원하다. 정부가 내놓은 비아파트 공급 대책만으로는 이미 불붙은 아파트 임대차 시장의 불안을 진화하기에 역부족이다. 전세난이 가장 심각해 시급한 처방이 필요한 서울에서는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정책 방향을 두고 주도권 싸움을 벌이며 힘겨루기를 이어가는 형국이다. 조율되지 않은 정책의 엇박자 속에 혼란만 더욱 가중되고 있다.
 
해법이 실종된 상황에서 이어지는 전월세 불안은 결국 정부가 그토록 우려하는 매매시장을 자극하는 기폭제가 될 수 있다. 전월세난이 촉발한 무주택자들의 '생존 매수'는 이미 현실이 되고 있다. 지난 5월 서울 아파트 매매 거래 건수는 같은 달 전세 거래량을 소폭 상회했다. 매매가 전세 거래량을 넘어선 것은 2020년 6월 이후 처음이다.
 
아무리 좋은 정책 목표라도 과도기라는 명목하에 서민들의 주거 불안을 담보로 잡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정책이 수년 뒤 시장 모습을 바꿀 수는 있다. 그러나 세입자는 당장 오늘을 살아야 한다. 출범 1년을 넘긴 정부 부동산 정책의 다음 이정표는 명확하다. 현학적 목표 대신 오늘 밤 발을 뻗고 잠들 집을 걱정하는 서민들의 전월세 불안을 덜어주는 일이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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