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자의 아시아의 영성 (Spiritual Asia) ㉘| 자이나교 이야기] 마하비라가 남긴 마지막 유산, 미래 문명을 비추는 영성

인류의 위대한 종교는 시대가 바뀔수록 더욱 새로운 의미를 얻는다. 그것은 시대를 초월하는 진리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자이나교 역시 그러하다. 2천500여 년 전 인도에서 시작된 작은 수행 공동체는 오늘날 인공지능과 기후위기, 무한 경쟁과 소비의 시대를 살아가는 인류에게 오히려 더 절실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인간은 어디까지 성장해야 하는가. 풍요는 무엇이며, 자유는 무엇인가. 문명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자이나교의 창시자인 마하비라는 평생을 통해 거대한 제국을 세우려 하지 않았다. 그는 사람의 마음을 바꾸는 일이 세상을 바꾸는 일보다 먼저라고 믿었다. 인간이 탐욕과 분노, 집착을 이기지 못한다면 어떤 제도도, 어떤 권력도, 어떤 문명도 오래 지속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확신이었다. 이러한 가르침은 2천500년이 지난 오늘에도 조금도 낡지 않았다.

마하비라는 마지막 순간까지 비폭력과 진실, 절제와 무소유를 설파하였다. 그는 죽음을 끝이 아니라 영혼이 모든 속박에서 벗어나는 해탈의 완성으로 이해했다. 그래서 그의 열반은 슬픔의 대상이 아니라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자유의 상징으로 기억된다. 자이나교 신자들이 오늘날까지 열반일을 깊이 기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마하비라가 남긴 가장 큰 유산은 교단의 확대가 아니라 인간 존엄의 확대였다. 그는 모든 생명은 크고 작음의 차이가 없으며, 인간만이 특별한 존재라는 오만을 경계하였다. 작은 곤충 하나, 이름 없는 풀 한 포기에도 생명의 가치가 있다는 그의 통찰은 현대 생태철학과 환경윤리가 다시 주목하는 사상이 되었다.

이 정신은 훗날 인도의 독립운동에도 깊은 영향을 미쳤다. 특히 마하트마 간디는 비폭력 저항의 사상을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자이나교의 아힘사 정신으로부터 적지 않은 영향을 받았다. 폭력으로 폭력을 이길 수 없으며, 진실과 양심이 결국 역사를 움직인다는 믿음은 인도를 넘어 세계 인권운동과 평화운동의 중요한 정신적 자산이 되었다.

오늘날 인류는 눈부신 과학기술을 이루었지만, 동시에 기후변화와 생태계 파괴, 양극화와 윤리의 위기를 마주하고 있다. 생성형 AI는 인간의 능력을 크게 확장하고 있지만, 인간의 양심과 책임까지 대신할 수는 없다. 바로 이 지점에서 자이나교는 오래된 종교를 넘어 미래 문명의 윤리로 다시 읽힌다.

자이나교는 인간에게 더 많이 소유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적게 탐하고, 더 깊이 성찰하며, 더 넓게 공존하라고 권한다. 그것은 성장을 포기하라는 뜻이 아니라 성장의 방향을 바꾸라는 요청이다. 문명의 진정한 수준은 생산량이 아니라 생명을 존중하는 수준이며, 기술의 속도가 아니라 인간의 품격으로 결정된다는 사실을 자이나교는 오래전부터 일깨워 왔다.


◆간디와 세계 평화운동, 자이나교가 남긴 가장 위대한 유산

종교가 남긴 가장 위대한 유산은 사원을 많이 세우는 데 있지 않다. 한 사람의 양심을 바꾸고, 그 양심이 다시 인류의 역사를 바꾸는 데 있다. 자이나교가 세계 문명에 남긴 가장 큰 유산도 바로 비폭력, 즉 아힘사(Ahimsa)의 정신이었다.

자이나교에서 아힘사는 단순히 사람을 죽이지 말라는 계율이 아니다. 생각과 말, 행동에서 어떠한 생명도 함부로 해치지 않는 삶의 태도이다. 폭력은 칼을 드는 순간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미움과 탐욕, 증오와 교만이 마음속에 자리 잡는 순간 시작된다고 보았다. 따라서 진정한 평화는 전쟁이 끝난 상태가 아니라 인간의 마음속 폭력이 사라진 상태를 의미한다.

이러한 사상은 수천 년 동안 인도 사회의 윤리적 토양이 되었고, 근대에 이르러 한 위대한 지도자를 통해 세계사로 확장되었다. 바로 마하트마 간디였다. 간디는 정치적 독립보다 인간의 양심을 더 중요하게 여겼으며, 폭력으로 얻은 승리는 또 다른 폭력을 낳을 뿐이라고 믿었다. 그의 사티아그라하(Satyagraha·진리의 힘) 운동은 힌두교적 전통뿐 아니라 자이나교의 아힘사 정신에서 깊은 영향을 받으며 발전하였다.

간디의 비폭력 저항은 인도의 독립운동을 넘어 세계 인권운동의 새로운 모델이 되었다. 이후 미국의 마틴 루서 킹 주니어는 흑인 민권운동에서 비폭력 저항을 실천했고,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넬슨 만델라 역시 화해와 공존을 통해 새로운 국가를 세우는 길을 모색했다. 역사적 배경과 사상적 기반은 서로 달랐지만, 폭력보다 양심과 정의를 앞세운다는 점에서 자이나교가 오랫동안 길러 온 비폭력 정신과 맞닿아 있었다.
 
이미지챗GPT 생성
이미지=챗GPT 생성


오늘날 핵무기와 드론, 인공지능 무기가 등장한 시대에도 평화는 여전히 인간의 마음에서 시작된다. 첨단 무기가 전쟁을 끝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양심이 전쟁을 멈춘다는 자이나교의 통찰은 오히려 더욱 절실해지고 있다.


◆지속가능한 발전과 ESG, 오래된 미래의 철학

21세기 세계가 가장 자주 사용하는 단어 가운데 하나가 지속가능성이다. 경제는 성장해야 하지만 자연도 함께 살아야 하고, 기업은 이익을 내야 하지만 사회적 책임도 져야 한다는 인식이 세계적인 기준이 되고 있다.

그러나 자이나교는 이러한 가치를 이미 2천500여 년 전부터 실천해 왔다. 자연은 인간이 정복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생명의 공동체이며, 다른 생명을 존중하는 일이 곧 인간 자신을 지키는 길이라고 가르쳤다. 엄격한 채식주의와 절제된 소비문화는 종교적 의례가 아니라 생명을 보호하려는 실천이었다.

오늘날 ESG는 기업의 새로운 경영 기준으로 자리 잡았다. 환경을 보호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며, 투명한 지배구조를 갖추는 기업이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사실은 세계 경제가 확인한 교훈이다. 자이나교는 이를 제도가 아니라 인간의 양심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말한다. 탐욕이 줄어들면 환경도 살아나고, 정직이 늘어나면 사회의 신뢰도 높아진다. 결국 지속가능성은 기술보다 인간의 윤리에서 출발한다.


◆생성형 AI 시대가 다시 읽는 자이나교

생성형 AI는 인류에게 새로운 문명의 문을 열어 주고 있다. 인간의 창의력을 확장하고, 의료와 교육, 산업 전반을 혁신하는 놀라운 가능성을 보여 주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AI는 인간에게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기술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효율성과 생명 가운데 무엇이 우선하는가. 인간의 판단을 어디까지 기계에 맡길 수 있는가.

자이나교는 이러한 질문 앞에서 분명한 기준을 제시한다. 기술은 생명을 위한 것이어야 하며, 인간의 존엄을 높이는 방향으로 사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뛰어난 기술이라도 생명을 해치고 인간성을 훼손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발전이 아니다.

AI는 계산을 대신할 수 있지만 양심을 대신할 수는 없다. 알고리즘은 답을 제시할 수 있지만 선과 악을 선택하지는 못한다. 결국 미래 문명의 수준은 AI의 성능이 아니라 그것을 사용하는 인간의 윤리 수준이 결정한다. 자이나교가 강조한 절제와 책임, 생명존중은 AI 시대에도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남을 것이다.

오늘날 인류는 역사상 가장 풍요로운 시대를 살고 있으면서도 가장 많은 갈등과 불안을 경험하고 있다. 더 많이 소유할수록 행복할 것이라는 믿음은 반드시 현실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절제 없는 욕망은 자연을 파괴하고 공동체를 흔들며 인간의 마음까지 황폐하게 만들고 있다.

자이나교는 조용하지만 분명한 답을 제시한다. 자유는 더 많이 갖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더 적게 집착하는 데 있으며, 평화는 상대를 굴복시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이기는 데 있다는 것이다.

정치는 권력보다 국민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기업은 이윤보다 신뢰를 더 소중히 여겨야 한다. 언론은 속도보다 진실을 선택해야 하며, 교육은 지식을 넘어 인격과 양심을 길러야 한다. 과학기술은 인간을 위한 것이어야 하고, AI 역시 생명을 존중하는 윤리 위에서 발전해야 한다.

마하비라는 2천500여 년 전 "자신을 이기는 사람이 가장 위대한 승리자"라고 가르쳤다. 이 한마디는 오늘날에도 문명의 나침반으로 남아 있다. 우리는 AI 시대를 살아가지만, 결국 미래를 결정하는 것은 기술이 아니라 인간의 품격이다. 생명을 존중하고, 탐욕을 절제하며, 진실을 실천하는 사람이야말로 미래 문명을 이끌어 갈 진정한 지도자이다.

그래서 자이나교는 오래된 종교가 아니라, 오래된 미래이다. 인류가 새로운 문명의 전환점에 서 있는 지금, 자이나교는 다시 우리에게 묻는다. "더 많이 소유할 것인가, 아니면 더 바르게 살아갈 것인가."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이 곧 인류 문명의 미래가 될 것이다.

이러한 생명존중의 철학은 자이나교만의 가르침이 아니다. 우리 민족의 영성에도 깊이 흐르고 있다. 인도의 간디를 존중했던 다석 유영모는 "모든 생명은 하나의 큰 생명 안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보았으며, 인간과 자연, 우주가 하나라는 생명사상을 평생 강조하였다. 이는 모든 생명을 존귀하게 여기고 어떤 존재도 함부로 해쳐서는 안 된다는 자이나교의 아힘사 정신과 깊이 통한다. 문명은 달라도 생명을 바라보는 지혜는 하나이며, 동양의 위대한 영성은 모두 생명존중과 절제, 공존이라는 공통된 가치 위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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