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레미콘 운송노조 집단휴업은 8일 만에 끝났지만, 건설 공급망은 이미 한계선까지 밀려 있었다. 레미콘 공장 사일로와 시멘트 유통기지를 모두 합쳐도 운송 중단을 버틸 수 있는 기간은 6일 안팎에 그쳤고, 파업이 7일째를 넘기자 시멘트 업계는 감산까지 검토했다. 이번 사태가 단순 운송단가 분쟁을 넘어 믹서트럭 총량 규제, 현장 배처플랜트 활용, 비상 공급망 매뉴얼 등 제도 개선 과제를 남겼다는 지적이 나온다.
16일 시멘트 업계에 따르면 레미콘 공장 사일로가 보유할 수 있는 시멘트 재고는 약 2일치, 수색·의왕 등 철도 거점 시멘트 유통기지는 약 3~4일치 수준이다. 레미콘 운송이 멈추면 전체 공급망이 버틸 수 있는 시간이 일주일도 되지 않는 셈이다.
파업이 7일째를 넘기면서 유통기지 포화 우려는 현실화됐다. 업계에서는 파업 기간 시멘트 출하량이 약 40% 감소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한국시멘트협회 관계자는 “수도권 레미콘 공장 사일로는 이미 다 찼던 상황”이라며 “전국 유통기지에 최대한 적재하면서 버텼지만 이마저도 한계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사태가 일주일 이상 이어진 전례가 드물었기 때문에 일부 업체가 장기화에 대비해 감산을 검토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사 현장 피해도 공급망 취약성을 드러냈다. 대한건설협회에 따르면 파업 5일째인 지난 12일 기준 수도권 22개 대형건설사 공사 현장 105곳에서 레미콘 공급이 끊기고 약 10만㎥ 규모의 콘크리트 타설이 지연됐다.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SK하이닉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등 국가 핵심 산업 현장까지 차질을 빚으면서 레미콘 분쟁이 산업 공급망 리스크로 번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문제는 파업 때마다 대체 수단이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이상일 한국레미콘공업협회 상무는 “노조 비소속 대체 차량을 활용해 출하를 이어가려 했으나 수도권에서 절대적인 수치가 많지 않아 역부족이었다”고 말했다. 운송 차량 공급이 제한된 상황에서는 비조합원 차량 투입만으로 공급 차질을 막기 어렵다는 의미다.
건설업계에서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제도 개선 논의가 속도를 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핵심은 믹서트럭 총량 규제 완화, 현장 배처플랜트 활용, 비상 공급망 매뉴얼 구축이다. 12년째 유지되고 있는 믹서트럭 총량 규제는 파업 때마다 공급망 대응력을 떨어뜨리는 구조적 요인으로 지목된다.
현장 생산 등 보완 수단이 없으면 공사 현장은 레미콘 운송 중단에 그대로 노출될 수밖에 없다. 업계에서는 대형 공공공사나 반도체·SOC 현장처럼 공정 중단 리스크가 큰 사업장에 대해 현장 배처플랜트 설치를 유연하게 검토하고, 파업 초기부터 대체 운송 투입과 핵심 현장 우선 공급 기준을 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건설경영협회도 레미콘 공급 중단이 단순 일정 지연을 넘어 품질 저하, 공사비 상승, 협력업체 경영난 등 연쇄 피해를 초래할 수 있다며 수급조절제 완화 등 제도 개선을 촉구한 바 있다.
특히, 이번 합의가 갈등의 종결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노사는 오는 7월부터 내년 2월까지 운송단가를 회당 4200원 인상하고, 이후 4개월간은 인상 폭을 5200원으로 확대하기로 했다. 계약기간이 내년 2월까지로 짧아 내년 3월 재협상 과정에서 갈등이 다시 불거질 가능성이 남아 있다.
재발 가능성을 키우는 것은 비용 구조다. 수도권 레미콘 가격은 ㎥당 9만9600원으로 2009년 대비 77% 올랐지만, 같은 기간 운반비는 150% 상승했다. 건설경기 침체로 물량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운반비 부담만 누적되고 있어 사측의 추가 인상 수용 여력은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이 상무는 “국토교통부가 현장 배처플랜트 설치나 믹서트럭 총량 규제 완화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안다”면서도 “제도적 조치는 효과가 나타나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만큼 단기 대응 방안도 함께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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