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자의 젠슨 황, 대만과 한국 투어 결산 이야기] AI 황제는 왜 대만과 한국을 찾았는가

세계사의 중요한 전환점에는 언제나 상징적인 여행이 있었다. 콜럼버스의 대서양 횡단이 신대륙 시대를 열었고, 덩샤오핑의 남순강화가 중국 개혁개방의 방향을 결정했으며, 스티브 잡스의 아이폰 발표가 스마트폰 시대를 열었다면, 2026년 5월 말과 6월 초에 걸쳐 진행된 젠슨 황의 대만과 한국 순방 역시 훗날 AI 산업사에서 중요한 이정표로 기록될 가능성이 크다.

많은 사람들은 젠슨 황이 대만에서 야시장을 찾고 한국에서 삼겹살을 먹으며 소맥잔을 부딪친 장면에 주목했다. 언론은 연일 그의 먹방과 인간적인 매력을 보도했다. 그러나 글로벌 산업의 흐름을 읽는 사람들의 눈에는 전혀 다른 장면이 보였다. 그것은 세계 AI 제국의 최고사령관이 자신의 핵심 생산기지와 병참기지를 점검하는 거대한 공급망 순시였다.

이번 순방에서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곳은 대만이었다. 오늘날 AI 산업의 중심에는 엔비디아가 있고, 엔비디아의 중심에는 대만이 있다. 엔비디아가 설계한 최첨단 GPU는 대부분 대만의 TSMC에서 생산된다. 엔비디아의 블랙웰과 루빈 플랫폼 역시 사실상 대만의 첨단 반도체 제조 능력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다.

젠슨 황이 대만에서 가장 긴밀하게 만난 기업 역시 TSMC였다. TSMC는 단순한 파운드리 기업이 아니다. 오늘날 세계 반도체 산업의 심장이다. 엔비디아의 AI 칩뿐 아니라 애플, AMD, 퀄컴, 브로드컴 등 세계 주요 팹리스 기업들이 모두 TSMC에 의존하고 있다. 엔비디아가 AI 시대의 황제라면 TSMC는 황제를 위해 무기를 생산하는 제국의 대장간이라고 할 수 있다.

젠슨 황은 또한 폭스콘(Foxconn), 콴타(Quanta), 위스트론(Wistron), 인벤텍(Inventec), 페가트론(Pegatron) 등 대만의 AI 서버 제조기업들과도 긴밀한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들 기업은 일반 소비자들에게는 다소 낯설지만 세계 데이터센터 산업에서는 절대적인 존재들이다. 엔비디아 GPU가 들어가는 AI 서버의 상당수가 이들 기업의 공장에서 생산된다. AI 산업의 실제 생산 현장은 실리콘밸리가 아니라 대만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특히 폭스콘은 더 이상 단순한 아이폰 조립회사가 아니다. AI 서버와 로봇, 전기차까지 사업영역을 확장하며 피지컬 AI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콴타 역시 세계 최대 AI 서버 제조업체 가운데 하나로 성장했다. 결국 대만은 엔비디아의 두뇌를 현실로 구현하는 제조 생태계 전체를 갖추고 있는 셈이다.
 
젠슨황 엔비디아 CEO가 지난 8일 오전 서울 종로구 SK서린빌딩에 들어서고 있다 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젠슨황 엔비디아 CEO가 지난 8일 오전 서울 종로구 SK서린빌딩에 들어서고 있다. [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반면 한국에서 젠슨 황이 만난 기업들은 역할이 조금 다르다. 한국은 AI 산업의 두뇌를 만드는 나라는 아니다. 그러나 AI 산업의 혈액을 공급하는 나라다.

그 중심에는 SK하이닉스가 있다. 현재 엔비디아 AI 서버에 들어가는 HBM 시장에서 SK하이닉스는 사실상 세계 최강자다. HBM은 GPU와 데이터를 초고속으로 연결하는 핵심 부품이다. 아무리 뛰어난 GPU가 있어도 HBM이 부족하면 AI 시스템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그래서 오늘날 AI 산업의 가장 큰 병목현상 가운데 하나가 바로 HBM 공급이다.

젠슨 황이 SK하이닉스를 방문한 것은 단순한 의례가 아니었다. 그것은 AI 산업의 생명줄을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실제로 엔비디아의 최신 플랫폼 상당수가 SK하이닉스 HBM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AI 데이터센터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상황에서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의 가장 중요한 전략 파트너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삼성전자 역시 중요한 방문 대상이었다. 삼성전자는 메모리 세계 1위 기업이며 차세대 HBM4 시장을 놓고 SK하이닉스와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엔비디아 입장에서는 공급처를 다변화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따라서 삼성전자의 HBM 품질 인증과 공급 확대 여부는 향후 AI 공급망 안정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한국 방문에서 또 하나 눈에 띈 기업은 현대자동차그룹이었다. 이는 매우 중요한 신호다. 현대차는 자동차 회사이지만 앞으로는 AI 기반 모빌리티 기업으로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자율주행차와 로봇, 스마트팩토리는 모두 피지컬 AI의 핵심 영역이다. 엔비디아 역시 자동차용 AI 플랫폼과 로봇 플랫폼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현대차와 엔비디아의 협력은 단순한 자동차 기술 협력이 아니라 미래 산업혁명의 실험장 구축에 가깝다.

LG그룹 역시 주목할 대상이다. LG는 배터리와 전장, 스마트공장, AI 데이터센터 냉각기술 등 다양한 영역에서 엔비디아와 협력 가능성을 갖고 있다. AI가 현실 세계로 들어갈수록 전력과 배터리, 냉각과 센서 기술의 중요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네이버 역시 흥미로운 방문 대상이었다. 지금까지 한국은 AI 반도체 강국이었지만 AI 플랫폼 강국은 아니었다. 네이버는 하이퍼클로바를 통해 한국형 생성형 AI를 구축하고 있으며 데이터센터와 클라우드 분야에서도 경쟁력을 확보하려 하고 있다. 젠슨 황이 네이버를 만난 것은 단순히 고객을 만난 것이 아니라 한국 AI 생태계 전체의 가능성을 확인하는 과정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대만과 한국은 엔비디아 공급망에서 서로 다른 역할을 수행한다. 대만이 AI 산업의 제조 허브라면 한국은 AI 산업의 메모리 허브다. 대만이 엔비디아의 팔과 다리라면 한국은 엔비디아의 혈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남는다. 과연 한국은 메모리 공급국에 머물 것인가. 아니면 AI 문명의 공동 설계자가 될 것인가.

대만은 이미 제조 생태계 전체를 장악했다. 미국은 플랫폼과 소프트웨어를 장악했다. 중국은 거대한 시장과 국가 주도의 AI 전략으로 추격하고 있다. 이제 한국도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그 다음 단계가 바로 피지컬 AI다.

젠슨 황이 한국에서 현대차와 LG, 네이버를 만난 이유도 결국 여기에 있다. AI의 미래는 데이터센터 안이 아니라 공장과 물류창고, 병원과 농장, 자동차와 로봇 안에 있다. 제조업 강국인 한국은 오히려 이 분야에서 미국보다 유리한 조건을 갖고 있다.

특히 전북과 새만금은 피지컬 AI 시대에 새로운 가능성을 품고 있다. 광활한 산업용지와 재생에너지, 농생명 산업, 제조업 기반은 AI 실증도시 구축에 적합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앞으로 AI 혁명의 중심은 단순한 반도체 생산이 아니라 AI가 실제 산업 현장을 움직이는 피지컬 AI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번 젠슨 황의 대만·한국 순방은 그래서 단순한 기업인의 출장 기록이 아니다. 그것은 AI 혁명 2막의 예고편이었다. 대만에서는 AI 제조제국의 위력을 확인했고, 한국에서는 AI 응용산업의 가능성을 점검했다.

우리는 삼겹살과 소맥을 기억할지 모른다. 그러나 젠슨 황은 HBM과 로봇, 자율주행과 피지컬 AI를 보았다. 우리는 웃음과 악수를 기억하지만 그는 공급망과 시장, 그리고 향후 10년의 산업지도를 계산했다.

AI 시대의 진짜 경쟁은 이제 시작이다. 그리고 이번 순방은 대한민국이 단순한 공급국을 넘어 AI 문명의 주역이 될 수 있는지 시험하는 첫 번째 질문장이었다.
 
7일 저녁 서울 삼성동에 위치한 치킨집에서 최태원 SK그룹 회장 젠슨 황 엔비디아 CEO및 양사 경영진이 저녁식사를 하며 환담을 나눴다 매디슨 황 엔비디아 수석 이사왼쪽부터 니코 카프레즈 엔비디아 부사장 정석근 SKT AI CIC장 곽노정 SK 하이닉스 CEO 젠슨 황 엔비디아 CEO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재헌 SKT CEO 김주선 SK 하이닉스 AI Infra 사장 제프 피셔 엔비디아 수석 부사장 사진SK텔레콤
지난 7일 저녁, 서울 삼성동에 위치한 치킨집에서 최태원 SK그룹 회장, 젠슨 황 엔비디아 CEO및 양사 경영진이 저녁식사를 하며 환담을 나눴다. 매디슨 황 엔비디아 수석 이사(왼쪽부터), 니코 카프레즈 엔비디아 부사장, 정석근 SKT AI CIC장, 곽노정 SK 하이닉스 CEO, 젠슨 황 엔비디아 CEO,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재헌 SKT CEO, 김주선 SK 하이닉스 AI Infra 사장, 제프 피셔 엔비디아 수석 부사장 [사진=SK텔레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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