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재의 경제가 답이다] 반도체가 안긴 '세수 횡재' …나눠줄 돈인가 키울 돈인가

··박원재 논설고문
[박원재 논설고문]

1년 전 이재명 정부가 출범한 뒤 기획재정부(현 재정경제부)가 가장 먼저 착수한 작업은 세제 개편, 정확히는 법인세 인상이다. 전임 윤석열 정부 때 법인세를 낮췄지만 감세에 따른 투자 확대 효과가 미미하고 세수 부족만 초래했다는 게 법인세를 손댄 이유였다.

구윤철 경제부총리는 당시 인사청문회에서 “법인세가 100조원에서 60조원으로 40%나 빠졌다. 그냥 감세를 해준다고 (기업이) 투자하는 건 아니다”고 말했다. 법인세 최고세율은 3년 만에 24%에서 1%포인트 올라 25%가 됐다. 정부의 첫 조치가 증세라는 점이 부담스러웠는지 ‘부자 감세의 정상화’ ‘법인세 원상회복’이라는 설명이 뒤따랐다.

작년 하반기부터 반도체 슈퍼사이클이 본격화되면서 법인세를 둘러싼 환경이 바뀌기 시작했다. 인상된 세율이 적용되기 전인 지난해 법인세는 84조원 걷혀 전년 대비 24조원 증가했다. 올해는 반도체 투톱인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두 기업이 낼 법인세만 120조원을 넘을 거라고 한다. 세율을 올려야 세수가 늘어난다는 법인세 인상 논리가 무색해졌다.

기업 실적에 따라 늘었다 줄었다 하는 법인세 징수액을 세율을 잣대로 추산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 하지만 반도체 세수가 예상보다 훨씬 많이 늘었다는 이유로 정부의 법인세 인상이 잘못됐다고 탓할 일도 아니다. 글로벌 인공지능(AI) 투자 열풍을 내다보고 세제 정책에 반영했으면 좋았겠지만 돈의 흐름에 밝은 대다수 증시 전문가들조차 반년 뒤 상황을 예견하지 못했다.

‘법인세 인상은 불필요했다’거나 ‘이제라도 세율을 다시 낮춰야 한다’는 주장도 공허하기는 마찬가지다. 반도체 투톱을 비롯해 시장 변화로 새로운 기회를 맞은 정보기술(IT), 조선, 방산 업종 기업들이 수십조 원, 수백조 원 규모의 투자계획을 잇달아 발표했다. 세율이 오르더라도 기업은 수익을 낼 수 있다는 판단이 서면 어떻게든 자금을 조달해 투자한다.

오히려 지나치게 잦은 세율 조정이 기업들로선 불확실성을 키우는 요인이 될 수 있다. 법인세는 기본 세율을 유지하면서 첨단기술 투자에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으로 예측 가능성과 투자 촉진 효과를 함께 도모해야 한다.

초과세수가 확실해지자 넘치는 돈을 어디에 쓰는 게 맞는지 다양한 주장이 나온다. 김용범 대통령 정책실장의 ‘국민배당금’ 발언을 계기로 정부의 확장재정을 지지하는 의견과 재정건전성 회복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반론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서민 경제가 어려우니 재정이 마중물 역할을 해야 한다’는 확장재정론은 청년 고용, 취약계층 지원, 지역 균형발전 등에 초과세수를 투입하면 단기적 경기 부양과 사회안전망 강화 효과를 동시에 얻을 수 있다는 논리를 편다. 반면 신중론자들은 코로나 팬데믹 이후 재정적자가 누적된 점을 들어 빚을 갚거나 국고에 적립해 더 어려워질 때를 대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부는 초과세수를 부채 상환에 쓰기보다는 미래 성장동력 확충을 위한 투자 재원으로 활용한다는 방침을 굳힌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대통령은 8일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초과세수는 미래 세대를 위해 대한민국의 성장잠재력을 키우는 방향에 투자해야 한다”며 “반도체 외 다른 산업에서도 차세대 먹거리 역할을 할 글로벌 성장동력을 발굴해 육성하겠다”고 강조했다. 국가부채 축소에 대해서는 “빚이 없는 게 절대 진리는 아니다”고 했다.

세금을 걷어 국가 재정을 운용하는 주체는 정부다. 초과세수를 어디에, 얼마나, 어떻게 쓸지 결정하고 집행하는 것은 정부의 고유 권한이다. 기계적인 배분에 매몰돼 미래를 위해 꼭 필요한 투자를 하지 못하면 국가 경제의 실패, 국민 전체의 피해가 된다는 점에서 재정 집행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정부의 판단은 중요하다.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과 달리 정부는 효율이 떨어지더라도 공동체의 그늘을 살피고 사회적 약자를 배려해야 할 의무도 있다.

추가로 걷힌 세금의 활용 계획을 세우기 전에 해야 할 일은 이번 초과세수의 성격을 명확히 하는 것이다. 초과세수의 성격 규정은 경기 변동에 따라 생길지 모를 재정 압박을 예방하고, 투입 대비 효과를 극대화하며,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전제조건이다.

50조원 이상의 초과세수가 매년 안정적으로 들어올 고정 수입인지, 반도체 특수(特需) 덕에 생긴 일회성 수입인지 따져봐야 한다. 반도체 투톱의 엄청난 영업이익과 코스피 호조를 들어 ‘반도체를 비롯한 한국 산업의 패러다임이 근본적으로 바뀌는 초기 국면’이라는 찬사가 있지만 산업 구조의 질적 변화로 단정 짓기에 1년의 데이터는 충분하지 않다.

반도체 산업의 수익 패턴이 바뀌었다고 하지만 호황과 불황의 진폭이 극단적으로 큰 경기민감형 특성 때문에 실적이 극과 극을 오갔던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극심한 공급과잉에 시달려 세금을 한 푼도 내지 못했고, 정부는 30조원 이상 세수 펑크를 냈다. 보수적 운용이 중시되는 재정의 생리를 감안하면 당분간 반도체 초과세수는 구조적·지속적 확정세입이 아니라 AI 투자 확대에 따른 일시적 현상으로 받아들이는 게 안전하다.

상시 지출(본예산)과 일회성 지출(초과세수)의 분리라는 원칙을 지키고 역할을 분담하면 재정에 미칠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 저소득층에 대한 현금성 지원이나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복지 혜택처럼 매년 일정한 비율로 자금을 투입해야 하는 분야는 정상적인 예산 편성을 통한 상시 지출의 영역이다. 초과세수는 재정을 포함해 국가 경제의 기초체력을 키우고 개별 기업이 하기 힘든 투자를 통해 새로운 먹거리 창출의 기회를 넓히는 역할을 해야 한다. 청년 취업교육, IT 인프라 투자 등 미래형 일자리와 첨단산업 기반을 구축하기 위한 종잣돈으로 써야 경제 선순환의 효과를 내고 재정 압박 위험도 줄일 수 있다.

확장재정이 통화정책의 효과를 상쇄해 물가를 자극할 소지가 없는지도 살펴야 한다. 한국은행의 금리 인상이 확실시되는 상황에서 재정지출의 과도한 증가가 브레이크와 액셀러레이터를 동시에 밟는 모순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동 전쟁에 따른 고유가와 환율 상승이 겹쳐 5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1%로 26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장바구니 물가 상승으로 가장 먼저 충격을 받는 것은 서민들의 일상이다. 김용범 실장은 고금리·고물가·고환율 현상에 대해 “한국 경제가 새로운 차원으로 도약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수반되는 성공의 비용”이라고 했지만 그 비용을 가장 많이 치러야 하는 계층이 반도체 기업의 약진과 증시 호황에서 소외된 서민층이라는 점은 씁쓸한 아이러니다.

인플레이션 위험이 커지는데 이미 풀린 돈과 앞으로 풀릴 돈이 많다는 것은 걱정스러운 변수다. 올해 정부의 본예산은 작년 본예산보다 54조7000억원 증가한 ‘슈퍼 확장예산’인데 여기에 26조2000억원의 ‘전쟁 추경’이 더해져 올해 정부 지출은 이미 753조원으로 불어났다.

이재명 정부가 지금까지는 확장재정의 순기능을 강조해왔지만 이제부터는 과도한 유동성과 씨름해야 할지 모른다. 초과세수의 용도를 정하기에 앞서 넘치는 유동성을 어떻게 관리할지, 물가에 미칠 영향을 어떻게 줄일지 함께 따져봐야 한다. 현금성 지원을 최대한 배제하고 전력망 데이터센터 등 인프라 확충과 첨단인력 양성 등 유동성을 늘릴 위험이 낮은 투자에 집중해야 하는 이유다.

이 대통령은 “지금은 미래를 위한 투자를 할 때”라며 “잠재성장률 회복에 장기 투자하는 방향으로 중심을 잡고 있다”고 했다. 잠재성장률이 1%대로 고착된 시대에 제2, 제3의 반도체를 만들어내기 위한 미래 산업 투자는 현 세대가 다음 세대에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다. 다음 세대의 부담을 덜어주려면 국가부채를 줄이고 재정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는 쪽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재정건전성은 위기가 닥쳤을 때 정부가 돈을 쓸 수 있는 능력이라는 점에서 미래 대비 투자와 충돌하는 가치가 아니다. 국가재정법이 초과세수로 생기는 세계(歲計)잉여금을 지방교부세 등의 정산과 국채 상환 에 우선 사용하도록 규정한 것은 세금이 많이 걷히는 호황기에 재정 여력을 확보해 어려울 때를 대비하자는 취지다.

초과세수를 활용한 투자로 반도체를 이을 차세대 성장동력을 발굴 육성하는 것은 한국 경제의 재도약을 위해 반드시 성공시켜야 하는 과제다. 튼튼한 재정은 정책의 효과를 높이고 기업의 성장을 돕는 든든한 버팀목이 될 것이다.

한국의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 미래의 핵심 기업들이 반도체 투톱처럼 법인세를 많이 내면 초과세수는 더 이상 일회성이 아니라 국부(國富)를 키우는 고정 수입이 된다. 모처럼 찾아온 초과세수라는 복(福)이 달아나지 않고 오래도록 우리 곁에 머물게 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할 때다.

박원재 필자 주요 이력
▷핀란드 알토대 경영학석사 ▷동아일보 도쿄특파원, 논설위원, 경제부장 ▷동아닷컴 대표 ▷한국온라인신문협회 회장 ▷경성대 교수(현)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댓글0
0 / 300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