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우리는 한 걸음 더 나아가려 합니다. 아주경제 탐사보도팀 '발품'은 20~30대 기자들이 현장으로 들어가 사람을 만나고 목소리를 기록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경제·산업·정치·사회·부동산·문화를 가르지 않고, 삶과 맞닿은 모든 현장을 추적합니다. 문제는 늘 그 자리에 있었지만, 충분히 드러나지 않았고 끝까지 전해지지 않았습니다. '발품'은 보이지 않던 것을 드러내고, 들리지 않던 목소리를 끝까지 전하기 위해 한 번 더 확인하고 집요하게 묻겠습니다. 독자가 미처 닿지 못한 곳까지 대신 걸어가겠습니다.
평생 닿지 못하는 고향을 바라만 보며 살아온 이들이 있다. 바로 교동도 실향민들이다. 민간인 출입통제선 위에 있는 교동도는 북한 황해도 연백군을 마주하고 있다. 둘의 직경 거리는 불과 2.6km에 불과하다.
교동도는 한국전쟁 발발 후 황해도 연백에서 피난 온 이들이 모여 삶의 터전을 일군 장소다. 2014년 교동대교가 개통하기 전까진 배로만 육지와 교류를 할 수 있었기에 '시간이 멈춘 섬'이라고도 불리던 그 곳. 아주경제 탐사보도팀은 20일 직접 교동도를 찾아 실향민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봤다.
봄비와 군의 검문을 뚫고 도달한 곳은 교동도의 대룡시장. 추적이는 비 때문인지, 평일 오전께에 방문한 때문인지 대부분의 가게는 문을 닫고 있었고 일부 가게 만이 불을 켜고 있었다.
그러면서 "실향민 1세 분들이 많이 돌아가시고 있다. 저희 친정 어머니도 3년 전에 돌아가셨다"며 "(어머니 돌아가신 후엔) 후세가 연백이 잘 보이는 곳에서 살고 있다. 동생도 거기에 집 짓고 살고 있다"고 말을 이었다.
홍씨의 이야기처럼, 이제는 대룡시장에서 실향민 1세를 만나보기는 쉽지 않았다. 워낙 고령이 돼 직접적인 경제 활동 일선에선 물러난 것이다. 다만 부모님이 힘겹게 일군 그 장소는 이젠 후손들의 안정적인 삶의 터전이 됐다.
방앗간과 정육점이 마주보고 있는 골목. 정육점 사장 최씨는 방앗간 사장 김씨에 대해 "친형제보다도 각별한 사이"라며 애틋함을 보여줬다. 두 사람 모두 실향민 후손이다.
김씨는 "과거엔 1만5000명 이상 교동도에 있었다"며 "80년대 이후 교육열이 거세지며 인구가 급속히 줄어 이젠 얼마 안 남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떠나지 않은) 1세대 어르신들은 매일같이 고향을 그리워했다"며 "과거엔 버스 2대를 대절해 군 장교가 이북 지역에 대한 설명을 하는 프로그램이 있었지만 지금은 철조망이 올라가고 그런 프로그램도 없다"고 아쉬워했다.
이어 그는 "최근 우원식 국회의장이 교동도를 찾았는데 이 자리에서 기념관 내지는 역사문화관 건립 필요성에 대한 목소리가 나왔다"며 "우 의장은 본인의 임기가 끝나 힘이 닿을지 모르겠다고 말하자 명계남 황해도지사가 '본인이 책임지고 해내보겠다'고 약속했다"고 덧붙였다. 실제 명 지사는 실향민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이번 달 30일 교동도를 다시 한 번 더 찾을 예정이다.
고향을 그리워 하는 마음은 그 이름부터 담겨 있다(望鄕, 고향을 그리워하다). 매 명절마다 실향민들과 그 후손들은 망향대를 찾아 제사를 지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편 최씨는 현재 이북5도위원회 운영에 대한 아쉬움도 드러냈다. 그는 "이북5도위원회에서 받는 것이라곤 신문 하나뿐"이라며 "차라리 그 운영비를 실향민과 북향민 이름으로 기부하는게 더 의미있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교동도는 더 이상 실향민들의 슬픔만이 담긴 땅은 아니었다. 그들의 눈물과 땀은 후손들의 삶의 기반이 됐다. 다만 여전히 고향을 잃은 설움은 치유되지 못한 채 그들의 가슴 속에 깊이 박혀 있었다.
이북5도위원회의 조직 운영 현황과 역할 재정립의 필요성을 짚어보는 심층 기획 보도는 '[아주 탐사기획] 출근 늦고 업추비는 자택 인근…이북5도위 존폐론 재점화'를 통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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