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노 칼럼] 삼성전자 '성과급 갈등'이 남긴 과제들

이학노 동국대 명예교수국제통상학
[이학노 동국대 명예교수(국제통상학)]

 
 
로마의 개선장군이 승리의 퍼레이드를 벌일 때 장군의 뒤에서 귓속말로 끊임없이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를 속삭이는 사람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메멘토 모리. ‘너의 죽음을 떠올려라’ 정도의 말이라고 하는데, 지금은 네가 잘나가지만 너 또한 언젠가 죽을 터이니 교만해지지 말라는 경고이다. 어려울 때를 대비하라는 말로, 이런 경구를 남긴 로마는 그래서 위대한 문화를 꽃피웠는지 모른다.
 
어렵사리 파업의 고비를 넘긴 삼성전자의 성과급 갈등. 지방선거를 불과 2주 앞두고 협상력을 극대화하면서 벼랑 끝 타협을 이루었고 목표에 못 미친다는 자책에도 불구하고 삼성전자 노조는 첫술에 많은 것을 얻었다. 그러나 깊은 상처와 함께 두고두고 풀어야 할 과제도 남기고 말았다. 꿈의 직장이라고 불릴 정도의 최고의 기업인 삼성전자가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다. 12만명이 넘는 본사 임직원 이외에 협력 및 하청업체 2500개와 50만명을 웃도는 고용을 하고 있고 460만명의 주주가 있으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주축이 된 반도체는 이번 1분기 일본 총수출을 상회한 것으로 집계되는 한국 수출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 현재의 삼성전자는 1997년 외환위기 당시의 대우그룹 전체 위상과 비슷하지만 삼성전자가 흔들리면 한국 경제는 멈춘다는 말처럼 단일 기업으로서는 삼성전자가 한국 경제에 훨씬 더 중요하다는 평가이다.

삼성전자의 성과급 갈등은 몇 갈래로 나뉜 불화의 씨앗을 심고 말았다. 첫째는 삼성전자 내 노노 갈등이다. 삼성전자 사내에서 메모리와 비메모리 반도체 분야 종사자, 가전 분야 종사자 등 부문 간 이해충돌이 심각하다. 6억원이 넘는 성과급을 받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600만원에 그치는 경우들이 생긴다고 한다. 말이 성과급이지 개개인의 노력과 성과를 엄밀하게 따지는 것도 아니니 상대적인 불만이 가라앉기 어렵고 앞으로 부서 간 이동을 놓고도 갈등이 표출될 가능성이 높다. 둘째, 삼성전자 노동자와 주주들 간 갈등이다. 당기에 발생한 영업이익에서 이자와 세금 등 영업외비용을 납부하고 남은 순이익에 대한 잔여청구권(residual claim)은 주주자본주의에서는 자본을 부담한 주체, 즉 주주에게 귀속되는 것으로 간주된다. 이번 삼성전자 성과급은 영업이익의 몇 %를 성과급으로 지급한다는 것으로 주주들은 이익침해라며 반발하고 있다. 지난 상법 개정 때 이사는 총 주주의 이익을 보호하도록 바뀌었으니 이사회와 주총 결의 없이 진행된 이번 성과급 지급에 대한 법적 쟁송이 이어질 전망이다. 셋째, 다른 업종과 기업들에 대한 파급효과이다. 먼저 진행된 SK하이닉스 성과급 지급은 상대적으로 조용히 지나간 반면 오랜 기간 동안 무노조였던 삼성전자는 최근 수년 사이에 노조의 영향력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사회적 파장도 커졌다. 반도체 분야 성과급 지급을 계기로 조선, 자동차, 바이오, 통신 등 다른 분야에서도 성과급을 요구하기 시작하였다. 소위 노란봉투법 개정 이후 일부 협력 및 하청업체 노동자들도 본사에 대하여 성과급 지급을 요구하기 시작하면서 장차 전방위로 확산될 것으로 우려된다. 넷째, 노조는 점차 성과급의 %를 올리려고 하는 한편 성과급 배분을 둘러싼 논쟁 과정에서 자본이 담당하던 경영과 투자 계획 등에 노동도 참여하겠다고 나올 가능성이 있다. 성과배분 혜택의 당사자로서 지위를 정당하게 확보하겠다는 의미이다.
 
'친기업 = 반노조'라는 이분법이 성립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그간 노사 간 대립 분위기가 쉽사리 바뀔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현대차 파업 갈등에 이어 이번 삼성전자 사태는 귀족노조에 대한 국민적 불만과 위화감이 커지는 계기가 되었다. 현재의 정치리더십하에서 그동안 보였던 행보를 바꾸기는 쉽지 않다. 소위 노란봉투법이라고 하는 노동조합법 개정 과정에서 나타난 정치적 방위각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제 성과급 갈등에서 일부 표출되었지만 노란봉투법 등은 앞으로 심각한 파장을 불러올 가능성이 있다. 상법 개정을 통한 주주이익의 보호도 주식시장 활성화를 위한 제도 개선이었다지만 노란봉투법 등과 더불어 노사 갈등, 노조-주주 갈등의 비빌 언덕이 되고 있다. 정치적 리더십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고 이제 판이 바뀌었지만 종전의 기조를 앞으로 어떻게 가지고 가야 할지 곤란한 입장이 되었다.
 
반도체가 아니었다면 우리 경제는 내수 침체, 물가 상승, 고용 불안의 어려움으로 불만의 목소리가 높았을 것이고 주가지수 8000을 넘으면서 코스피 시총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 삼성전자로 대표되는 대기업들을 쉽게 내칠 수 없는 이유이다. 경제의 양극화 해소는 여전히 중요한 화두이지만 경제에 대한 부작용 우려로 대기업들에 대한 규제도 만만치 않다. 우리 기업들의 꾸준한 투자와 감산 등 고통 감내가 없었더라면 오늘의 호황을 맞이하기 어려웠겠지만 미국의 대중 견제 및 체제 대립, 생성형 인공지능과 데이터센터 투자 급증이라는 구조적인 측면도 간과할 수 없다.
 
반도체가 이익을 많이 낼 것으로 전망되면서 정치권 일각에서는 초과 이익 내지 세수의 국민 배당 이야기도 나왔다. 결국 국부펀드에 일부 투자하는 것으로 결론이 나고 있지만 기업에 대한 정치의 개입은 되짚어볼 대목이 있다. 특히 논리의 일관성 결여를 경계하여야 한다. 다른 나라들이 지원한다고 해서 한국 반도체에 보조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주장들이 줄을 이었던 적이 있다. 정부가 공적 자금을 기업에 보조금으로 지원해야 한다면 나중에 현금으로 회수를 할 수 있다는 논리가 성립할 수 있다. 보조금을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초과이익을 국민 배당한다는 논리에 어떻게 반대할 수 있을까. 세금 감면 등에 의한 지원은 나중에 이익이 늘었을 때 세금으로 더 많이 회수하면 되기 때문에 논리적인 일관성은 있다. 기업은 기업에, 시장은 시장에 맡기는 것이 정도가 아닐까.
 
반도체 시황도 언제 나빠질지 모른다. 중국이나 일본 등 다른 나라들의 추격은 빠르다. 우리가 성과급 갈등을 겪고 있는 사이 경쟁자들은 우리를 추월할 준비를 하고 있다. 몇 가지 노력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먼저, 더 많은 갈등이 우리 경제와 사회를 혼란에 빠뜨리기 전에 노동조합법령에 대한 보완 입법이 필요하다. 시행한 지 얼마 안 된 법률이라서 단기간 내 개정이 어렵다면 경제사회노동위원회 같은 기구에서 이번 삼성전자 사례를 거울 삼아 성과급에 대한 원칙을 정하고 적절한 보상 방안을 탬플릿으로 마련해 제시할 필요가 있다. 둘째, 국내적 갈등에 매몰되기보다 조만간 닥쳐올 산업전쟁에 대비해 산업에 자극을 주고 시야를 넓게 가져가야 한다. 최근 한·일 정상 셔틀외교가 이루어지고 있고 에너지 분야 등 양국 간 협력 방안이 진행되고 있다. 예전과 달리 일본과 협력하는 데 대해 강력하게 반대할 사람들은 많지 않다. 일본과 경제협력을 추진하면 중국과 경제협력하는 것도 명분을 얻을 수 있다. 우선 일본 수산물에 대해 적극적인 해결 방안을 모색하고 일본이 좌장 격인 CPTPP 가입을 본격 추진함과 동시에 한·중·일 FTA를 추진해야 한다. 각계의 지지를 받는 현 리더십이 일본과 중국을 아우르는 경제협력의 그림을 그려간다면 노무현 전 대통령이 한·미 FTA로 평가받듯이 녹록지 않은 국제정치경제적 환경에서 훌륭한 성과를 거두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당장의 수확을 나누는 데 몰두하기보다 전열을 가다듬어야 한다. 더 늦기 전에 로마 장군의 교만을 견제하던 ‘메멘토 모리’를 우리도 외쳐야 하는 건 아닐까.

이학노 필진 주요 이력
△서울대 경제학과 △텍사스대 오스틴캠퍼스 경제학 박사 △통상교섭민간자문위원회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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