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알면 손해인 환경 규제… AI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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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수 엘프스 글로벌 EHS 컨설턴트]



어느 도금 공장의 이야기다. 폐수 처리 시설이 기준을 넘긴 지 꽤 됐다. 현장 관리자도 어렴풋이 안다. 그러나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신고 이력이 남으면 다음 번엔 더 무거운 처분이 기다리기 때문이다. 그렇게 리스크는 쌓인다.

우리나라 산업의 환경 규제 대응 실태는 여전히 사후 수습의 패러다임에 머물러 있다. 그 배경을 이해하려면 먼저 규제의 규모부터 직시해야 한다. 기후부로 병합되기 이전 환경부 소관 법령만 70개를 넘고, 하위법령과 지자체 조례까지 더하면 개별 사업장에 부과되는 환경 관련 의무는 수백 개에 달한다. 현장 담당자 한 명이 이 수백 개의 의무 조항을 파악하고, 법령 개정 사항을 추적하며, 위반 여부를 자체 점검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전문 컨설팅을 활용할 수도 있겠지만 사업장당 수천만~수억 원에 달하는 비용은 대다수 중소 사업장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미리 문제를 발굴해도 면책되지 않는다. 자진신고를 해도 위반 이력은 남고, 이력이 남으면 재위반 시 가중처분의 근거가 된다. 사업자 입장에서 환경문제는 아직도 ‘알면 손해’인 것이다. 사업장은 잠재적 리스크를 외면하고, 포착해도 쉬쉬한다. 악순환이다.

그 대가는 사업장 안에만 머물지 않는다. 어떤 사업이든 환경에 영향을 미치지만 사전 관리가 미흡하니 지역 주민 입장에서는 믿을 근거가 없다. 환경에 대한 막연한 불안은 막연한 반대가 되고, 멀쩡한 사업장 하나가 님비의 벽에 막혀 허가조차 받지 못하는 일이 반복된다. 리스크를 관리하지 않은 대가를 사업자가 아닌 산업 전체가 치르는 셈이다.

환경 이슈는 사전에는 유명무실하다가 사후에는 재앙이 된다. 우리 사업장이 환경적으로 적법하지 못한 일을 하고 있을 때의 본능적인 불안감은 환경 전문가여야 느끼는 것이 아니다. 물론 현장도 안다. 다만 그 불안을 테이블에 끄집어낼 언어도, 채널도, 인센티브도 없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AI의 역할이 시작된다. 인허가 조건과 실제 현황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대조하고, 잦은 법령 개정 중 내 사업장에 해당하는 변경만 골라 알려주며, 위반 가능성을 사전에 포착한다. 관리한 기록을 자동으로 축적해 성실 관리의 근거로 활용할 수도 있다. 범용 AI는 환각 문제와 법령 맥락 이해의 한계로 이 역할을 곧바로 대신할 수 없다. 그러나 환경 법령에 특화된 AI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핵심은 구조의 전환이다. 알아도 말할 수 없고, 외부 도움을 받기엔 비용이 너무 높은 구조. AI는 그 비용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다. '알면 손해'가 아닌 '알면 다행'인 구조. 사람의 마음이 아니라 구조가 바뀌는 것이다.

이는 대기업 컨설팅 시장에 머물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리스크에 가장 취약한 중소 사업장에  닿을 때 진짜 의미가 생긴다. 지금껏 아무 인프라가 없던 자리를 채우는 것만으로도 결정적인 차이가 된다. 사람이 하기엔 너무 많고, 하지 않기엔 너무 위험한 일들이다.

환경이나 법을 지키자는 말은 쉽다. 그러나 면책도 인센티브도 없는 구조 속에서 자발적 준법을 강요하는 것은 현실을 모르는 이야기다. 환경 규제 준수는 산업 생태계 생존의 문제다. 사후 수습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전문가의 역량을 AI 기반 상시 진단 체계로 전환하는 새로운 인프라가 필요하다.

[박준수 엘프스 글로벌 EHS 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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