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사설 | 기본·원칙·상식] 한·미 조선 협력, 선언 넘어 실행의 동맹으로

8일(현지시간) 워싱턴에서 체결된 한·미 조선업 파트너십 이니셔티브(KUSPI) 양해각서(MOU)는 겉으로는 담담했다. 거창한 수사도, 과장된 표현도 없었다. 그러나 오히려 그 절제 속에 이번 합의의 무게가 담겨 있다. 관세 불확실성과 통상 갈등으로 흔들린 긴 시간 끝에, 한국과 미국은 말보다 실행으로 동맹의 언어를 다시 쓰기 시작했다. 

이번 MOU는 한국이 지난해 약속한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패키지 가운데 1,500억 달러를 미국 조선업 재건에 투입하는 이른바 ‘MASGA(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 프로젝트의 첫 번째 실행 단계다. 

박정성 산업통상자원부 통상차관보와 윌리엄 키밋 미국 상무부 국제무역 차관이 서명했고, 김정관 산업부 장관과 하워드 루트닉 미국 상무장관이 배석했다. 양국 정부는 올해 안에 워싱턴에 ‘한·미 조선업 파트너십 센터’를 설치해 조선사, 기자재 업체, 대학, 연구기관 간 협력을 조율하기로 했다. 

선언이 제도로, 약속이 구조로 전환된 순간이다. 기업들이 기다려온 것도 바로 이런 틀이었다. 어느 방향으로 튈지 모르는 정치적 수사가 아니라, 실제 투자 판단의 기준이 될 수 있는 제도적 안전판이다. 
 

지난 수개월간 한국 수출기업들은 사실상 안갯속을 걸었다.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은 예측이 어려웠고, 상호관세(reciprocal tariffs)는 법원의 잇따른 제동으로 흔들렸다. 그렇다고 불확실성이 사라진 것도 아니다. 무역법 제301조(Section 301)라는 또 다른 칼날은 여전히 살아 있다. 여기에 중동 전쟁까지 겹치며 기업들은 투자 계획을 세우기도, 공급망 전략을 짜기도 쉽지 않았다. 현장의 불안 자체가 비용이 되는 시간이었다. 


이번 KUSPI MOU가 그 안개를 단숨에 걷어내는 것은 아니다. 관세 문제가 하루아침에 사라질 리 없고, 통상 환경 역시 하나의 서명만으로 바뀌지 않는다. 그러나 방향은 분명해졌다.

한국과 미국이 조선이라는 전략 산업에서 공식적인 협력 파트너로 제도화됐다는 사실 자체가 의미 있는 기준점이 된다. 불확실성이 완전히 사라질 수는 없어도, 협력의 구조가 생기면 리스크의 성격은 달라진다. 

한화그룹은 인수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 최대 50억 달러를 투자해 연간 생산능력을 현재 1척 수준에서 최대 20척까지 끌어올리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자동화·로봇화·인력 확충을 통한 현대화 작업 역시 단순한 청사진이 아니라 실제 진행형이다. 

미국은 현재 연간 대형 상선을 손에 꼽을 정도밖에 건조하지 못한다. 반면 중국은 한 해 약 1,000척을 진수한다. 한국은 세계 최상위권 조선 강국이다. 미국이 절실히 필요로 하는 것과 한국이 제공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는 이 숫자들만으로도 충분히 설명된다. 

파트너십 센터를 통한 대미 외국인직접투자(FDI) 지원, 인력 양성 프로그램, 조선소 생산성 향상 협력, 기술 교류 등 앞으로의 과제는 적지 않다. 그러나 정부가 모든 것을 대신할 수는 없다. 제도적 틀이 만들어졌다면, 이제 그 안을 채우는 것은 기업의 몫이다. 

미국 국제무역청(ITA)은 이번 MOU에 대해 “동맹의 산업 역량 강화와 투자 촉진, 첨단 제조 협력 확대를 위한 지속적 노력을 반영한다”고 평가했다. 외교적 언어로 쓰였지만, 기업의 언어로 번역하면 의미는 분명하다. 워싱턴이 한국 기업의 진입을 공식적으로 환영하고 있다는 신호다. 

한·미 동맹의 저력은 언제나 위기 속에서 확인됐다. 그리고 그 저력은 선언보다 실행에서 나왔다. 

KUSPI는 시작일 뿐이다. 파트너십 센터가 문을 열고, 투자가 집행되고, 실제 조선소에서 선박이 진수될 때 비로소 이번 협력은 역사로 남게 될 것이다. 그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통상 환경은 여전히 유동적이고, 양국의 이해관계가 언제나 완전히 일치하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확실성의 시대에는 결국 움직이는 쪽이 판을 만든다. 한국은 이제 조심스럽지만 분명한 한 수를 두기 시작했다. 이번 조선 협력을 단순한 산업 협력이 아니라, 무역과 안보를 함께 묶는 새로운 동맹의 계기로 키워가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이 2026년 8월 8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조선업 파트너십 이니셔티브KUSPI 양해각서MOU 체결식에서 박수치고 있다 이번 협약은 미국 조선업 재건을 위한 ‘MASGA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 협력의 첫 실행 단계다 윌리엄 키밋 미국 상무부 국제무역 차관과 박정성 산업통상자원부 통상차관보가 서명한 협약서를 들어 보이고 있다 사진미국 국제무역청ITA 제공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이 2026년 8월 8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조선업 파트너십 이니셔티브(KUSPI) 양해각서(MOU) 체결식에서 박수치고 있다. 이번 협약은 미국 조선업 재건을 위한 ‘MASGA(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 협력의 첫 실행 단계다. 윌리엄 키밋 미국 상무부 국제무역 차관과 박정성 산업통상자원부 통상차관보가 서명한 협약서를 들어 보이고 있다. (사진=미국 국제무역청(ITA)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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