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세제류를 제조·납품해 온 지 수십 년이 됐다. 그간 금융위기와 코로나19 같은 큰 파고도 버텨냈다. 그러나 지금은 솔직히 말해 더 이상 버틸 수 있을지 자신하기 어렵다. 세 방향에서 동시에 압박이 밀려오고 있기 때문이다.
첫 번째는 원자재 문제다. 이란 전쟁 장기화로 나프타 가격이 급등했다. 세제류 제조의 핵심 원재료인 나프타 가격이 오르면 중소 화학기업에는 선택지가 거의 없다. 납품 단가를 올리면 거래처를 잃고, 그대로 버티면 마진이 무너진다. 수급 불안정은 생산 일정 자체를 흔든다.
두 번째는 유통 환경의 불안이다. 주요 판매처인 대형 유통 플랫폼이 과도한 공세로 흔들리면서 그 여파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유통사가 흔들리면 우리 같은 납품사가 가장 먼저, 가장 크게 타격을 받는다. 발주는 줄고 매출은 꺾이며 재고는 쌓인다. 대기업 납품사라면 버틸 여력이 있겠지만, 중소기업에는 그런 체력이 현저히 부족하다. 매출이 회복되기도 전에 원자재 쇼크가 덮쳤고,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이런 상황에서 중소기업을 향한 세 번째 압박이 다가오고 있다. 바로 집단소송법 개정안이다. 국회에서 논의 중인 내용을 접했을 때 현장의 기업으로서는 충격적이었다. 핵심 쟁점은 두 가지다. 하나는 옵트아웃(Opt-out), 자동 소송 편입 방식이다. 소비자가 별도로 거부 의사를 밝히지 않으면 자동으로 소송에 포함되는 것으로, 단 한 명이 소송을 제기해도 동일 제품을 구매한 모든 소비자가 원고단에 포함될 수 있다는 내용이다.
다른 하나는 무기한 소급 적용이다. 법 시행 이전의 행위까지 소송 대상으로 삼겠다는 것으로, 과거의 제품과 표현까지 현재 기준으로 다시 판단받게 된다. 화학제품은 특성상 성분 표시나 효능에 대한 해석이 다양할 수밖에 없다. 현재 기준에서 문제가 없는 표현도, 시간이 지나 새로운 기준이 적용되면 소급해 문제로 지적될 수 있다. 수십 년 전 제품까지 소송 대상이 된다면 이는 생산을 중단하고 소송 대응에만 집중하라는 것과 다르지 않다.
전담 법무 인력도, 소송 대응을 위한 별도 자금도 없는 중소기업에게 집단소송이 시작된다면 기업의 존립 자체를 위협하는 사건이 된다. 소송 비용, 배상금 산정의 불확실성, 장기 소송으로 인한 매출 공백까지 한꺼번에 닥치면 감당할 방법이 없다. 이 부담은 제품 가격 인상과 품질 투자 축소로 이어지고, 그 피해는 다시 소비자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집단소송제의 취지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피해를 입은 소비자가 실질적인 구제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점에는 동의한다. 다만 소비자 보호와 중소기업의 생존이 서로 충돌하는 방식이어서는 안 된다. 소급 적용은 법 시행 이후의 행위로 한정하고, 자동 소송 편입 방식 역시 도입에 앞서 소송 남발을 방지할 충분한 안전장치가 마련돼야 한다.
삼중의 압박 속에서도 공장을 멈추지 않고 직원들의 생계를 지키며 납품처와의 신뢰를 유지해 온 중소 제조업체들이 법 개정으로 무너지는 일은 없어야 한다. 국회가 현장의 목소리를 보다 신중하게 반영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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