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살목지' 이상민 감독 "물귀신 비주얼, 악몽 꾼 뒤 완성했죠"

영화 살목지 이상민 감독 사진쇼박스
영화 '살목지' 이상민 감독 [사진=쇼박스]
영화 '살목지'가 개봉 10일 만에 100만 관객을 돌파했다. 경쟁작 '프로젝트 헤일메리'보다 하루 빠른 속도다. 젠지 관객을 중심으로 체험형 공포의 입소문이 번지는 가운데 '살목지'는 올여름 극장가에서 가장 또렷한 흐름을 만든 작품이 됐다. 로드뷰에 찍힌 정체불명의 형체와 검은 물속의 공포를 현실 가까이 끌어온 이 영화의 시작점에는 익숙한 풍경에 낯선 불안을 심어 넣은 이상민 감독이 있었다.

"평소 공포영화를 굉장히 좋아합니다. 공포영화를 준비하다가 공간이 주는 공포에 관해 고민하게 됐고 테마에 맞춰 '살목지'를 시작하게 됐어요. 제가 '살목지'에 주목한 이유는 애초 괴담 스팟으로 유명한 곳이었고요. 공간이 주는 공포와 물귀신 등 요소가 매력적이라고 생각이 되어서였어요."

'살목지'는 실제 충남 예산군 광시면에 있는 저수지다. MBC '심야괴담회'에서 다뤄진 이후 이름을 알렸고 공포 유튜버들 사이에서도 잘 알려진 장소다. 이미 여러 공포 일화가 축적된 공간을 영화의 배경으로 택한 만큼 기대와 함께 우려도 뒤따를 수밖에 없었다.

"부담과 우려가 없을 수는 없었죠. 실제 지명을 쓰는 것도 조심스러운 부분이었고, 실제 지역인 만큼 더 신중하게 접근하려고 했어요. '심야괴담회'에서도 잘 알려진 에피소드였지만, 영화는 결국 영화여야 한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그 이야기 자체를 따라가기보다는 로드뷰를 찍으러 가는 7명의 이야기로 새롭게 풀어보자고 생각했고, 완전히 다른 결의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판단했습니다."
 
영화 살목지 이상민 감독 사진쇼박스
영화 '살목지' 이상민 감독 [사진=쇼박스]

이상민 감독은 단편 시절부터 꾸준히 호러와 스릴러 장르를 탐색해온 연출자다. 어린 시절 목공소 지하실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를 마주했던 기억은 오래 남았고 그는 그때의 감각을 영화 안으로 옮겨오고 싶었다고 했다. 학생 시절 연출한 '짧은 사이에'와 '둘이', 그리고 여러 단편영화제에서 주목받은 '함진아비'까지 그의 영화는 늘 인물을 서서히 잠식해오는 공포를 붙들어왔다. 영화 '살목지'는 그 흐름이 처음으로 장편에 닿은 작품이다.

"저는 공포 장르를 정말 좋아해요. 공포 영화를 보는 것도 좋아하고 상상하는 것도 굉장히 좋아합니다. 상상력을 마구 쏟아부을 수 있는 장르가 제게는 '공포'인 것 같아요."

영화는 저수지로 향한 7인의 촬영팀을 중심으로 움직인다. 이상민 감독은 로드뷰 촬영이라는 설정 위에 각기 다른 목적과 성질을 지닌 인물들을 배치하며 이야기를 설계했다.

"로드뷰 촬영에 대한 걸 조사하며 필요한 역할들에서부터 캐릭터들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로드뷰 컨트롤러, 사령탑, 플레이스 뷰, 다양한 역할들을 두고 역할 배분을 했죠. 수인을 중심으로 만들어간 건 물귀신은 제 발로 (물속으로) 끌어들여야 하니까 그 캐릭터의 서사를 통해 캐릭터를 만들어야 했고요. 모두 로드뷰 때문에 살목지를 가지만 내심 각자 다른 목표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그중 중심을 잡는 리더 같은 느낌의 캐릭터가 필요하다고 보았어요."

흥미로운 건 수인의 과거가 영화 안에서 전부 설명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관객은 몇몇 대화와 분위기를 통해 그 사연을 짐작할 뿐이다. 이상민 감독은 오히려 그런 방식이 수인과 공간의 공포를 더 또렷하게 살릴 수 있다고 봤다.

"관객들이 영화 속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에 더 집중하길 바랐어요. 수인의 전사를 풀어볼까도 생각했는데 아무리 고민해도 흐름이 다른 쪽으로 빠질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뉘앙스로만 남기게 된 것 같아요. 수인은 물속에서 죽을 뻔한 경험이 있고 그 트라우마 때문에 물을 무서워하는 인물이거든요. 그런 상태에서 로드뷰 촬영으로 살목지에 배정되고 꺼려지지만 결국 억지로 가게 되는 설정이었어요. 저는 그 과정에서 공간 자체가 주는 공포와 물이 주는 불편함을 담고 싶었습니다."
 
영화 살목지 4월 8일 극장 개봉 사진쇼박스
영화 '살목지' 4월 8일 극장 개봉 [사진=쇼박스]
 
영화는 수인의 감정과 살목지라는 공간의 규칙을 한꺼번에 설명하지 않는다. 어떤 정보는 인물의 입을 통해 또렷하게 드러내고 어떤 감각은 끝내 말로 풀지 않은 채 장면과 분위기로 밀어붙인다. 이상민 감독은 말로 짚어야 할 것과 이미지로 남겨야 할 것의 기준 역시 관객이 영화를 따라가는 방식 안에서 찾으려 했다고 설명했다.

"어떤 정보는 인물이 직접 말해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관객이 아무 정보 없이 봤을 때 수인을 따라가는 핵심 동력은 '쟤는 왜 저러지?' '왜 교식에게 저런 감정을 느끼지?' 같은 궁금증이잖아요. 그런 감정이나 내면의 고통은 어느 정도는 자기 입으로 고백해야 한다고 봤고요. 반대로 이 영화 안에서 '넋건지기'가 무엇인지 '고스트박스'가 어떤 것인지처럼 세계관이나 설정에 가까운 부분은 말로 길게 설명하기보다 장면으로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런 건 모션이나 이미지가 주는 임팩트로 가는 게 더 맞다고 생각했거든요. 성민이나 경준 같은 인물도 관객이 자연스럽게 인식할 수 있도록 만들었고요. 핵심적인 세계관은 너무 빨리 다 드러내지 않으면서 눈앞에서 벌어지는 사건이나 감각적인 부분은 장면으로 밀고 가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카메라의 움직임과 구도 역시 '살목지'의 공포를 만드는 중요한 장치였다. 이상민 감독은 로드뷰 촬영이라는 설정 자체가 주는 시각적 특성을 적극적으로 끌어오고 싶었다고 했다. 특히 360도 카메라로 포착한 장면들은 익숙한 풍경을 조금씩 비틀며 영화의 감각을 더 선명하게 만드는 데 쓰였다. 상식적인 시야가 어긋나고 현실 감각이 조금씩 흐트러지는 느낌을 시각적으로 만들고 싶었다는 설명이다.

"360도 카메라로 찍은 장면들도 결국 로드뷰를 찍는다는 설정에서 출발한 거예요. 그런 앵글들을 따라 보다 보면 '와, 이거 재밌다' 싶은 것들이 많아서 넣고 싶었고요. '미드소마'를 보면 카메라가 거꾸로 돌면서 상식이 뒤집어지는 느낌이 들잖아요. 그런 왜곡된 감각을 보면서 저희 영화도 로드뷰라는 전체 콘셉트 안에서 점점 현실이 왜곡되는 느낌을 줄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의미적으로도 괜찮겠다고 봤고요."

물귀신의 비주얼은 영화 전체의 공포를 떠받치는 핵심 축이었다. 이상민 감독은 단순히 무서운 형상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저수지와 숲이 뒤섞인 자연환경 안에 이질감 없이 스며들면서도 언뜻 사람처럼 보이는 존재를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물귀신의 비주얼은 정말 많이 고민했어요. 일단 축축한 느낌이 잘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고 영화 자체가 자연환경이 많은 공간에서 벌어지다 보니까 그 안에 잘 녹아들었으면 했어요. 귀신 의상을 설정할 때도 나무 같은 거친 질감의 옷을 떠올렸어요. 언뜻 보면 사람 형체 같기도 한데 자연물처럼 느껴지고 동시에 물귀신 특유의 축축하고 음산한 느낌도 주고 싶었죠. 앞머리가 얼굴을 가리는 비주얼도 생각했고요. 어떻게 생겨야 할지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정도로 고민했던 부분이었는데 어느 날 악몽을 꾸고 나서 그 이미지에서 참고를 얻기도 했어요."

사운드 역시 그가 중요하게 붙든 지점이었다. 화면 안에서 직접 보이는 것보다 먼저 관객의 감각을 건드리는 것이 소리라고 봤기 때문이다. 

"사운드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언제 고요해져야 하는지가 정말 중요하다고 봤거든요. 공포영화를 볼 때 가장 좋은 순간은 다 같이 소리를 죽이는 순간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고요를 잘 살리고 싶었어요. 돌이 날아오는 소리나 타격감 있는 느낌, 물이 첨벙거리는 소리는 더 날카롭게 꽂히길 바랐고요. 찰랑이는 소리가 어느 정도 세기로 느껴져야 하는지 기사님과 이야기를 많이 나눴어요. 물인지 모를 때는 소리를 죽이고 카메라가 물속이라는 걸 알려주고 나면 더 크게 느껴지게끔 연출했죠."
영화 살목지 이상민 감독 사진쇼박스
영화 '살목지' 이상민 감독 [사진=쇼박스]

관객들이 영화를 본 뒤 다시 떠올릴 만한 장치들에 대한 이야기도 이어졌다. 노골적으로 설명하지는 않지만 인물의 동선과 공간 안의 오브제에는 저마다 의미를 숨겨두었다는 것이다. 

"스포일러가 될 수는 있는데 컨트롤러를 찾으러 들어가는 장면에서 측면 달리샷이 있잖아요. 그때 서 있는 순서가 결국 죽는 순서와 같아요. 그리고 저는 돌탑이 귀신을 부른다고 생각했어요. 산에 있는 돌탑은 비교적 긍정적인 이미지가 있는데 물에 있는 돌탑은 귀신을 모은다고 하더라고요. 얘들이 다 죽는 것도 결국 돌탑을 쌓았기 때문이라고 봤어요. 죽은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마음으로 쌓은 거잖아요. 노파도 딸을 만나고 싶은 마음에 돌탑을 쌓은 거고요. 그래서 그 장소를 생사를 넘나드는 길목처럼 생각했어요. 수인의 소원만 들어준 것도 결국 죽은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소원에 대한 응답이라고 봤고요. 기태만 돌탑을 쌓지 않았기 때문에 마지막까지 바로 죽지 않고 정신을 차리고 있는 거예요. 마지막에 귀신이 수인의 모습으로 기태를 죽이려 하는 것도 그런 흐름 안에 있고요."

끝으로 그는 '살목지'를 단순히 무서운 영화로만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공포 자체의 재미는 물론이고 서스펜스와 인물의 심리를 따라가는 감각 역시 함께 봐주길 바란다는 뜻이었다.

"저는 많이 무섭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행복한데요. 그렇다고 해서 이 영화가 무서운 것만 있는 영화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서스펜스도 있고 수인의 심리를 따라가는 재미도 있거든요. 공포를 기대하고 와주셔도 좋고 공포영화를 잘 못 보시는 분들이라면 그 서스펜스와 감정선을 따라가는 방식으로도 즐겨주셨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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