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이치 내각은 장기간 이어져 온 과도한 긴축 지향과 미래 투자 부족의 흐름을 끊어내겠습니다."
지난 2월 20일,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의 시정방침 연설에 담긴 이 선언은 '사나에노믹스'가 지향할 기조 변화와 정책의 출발점을 알린 것으로 평가받는다. 사나에노믹스의 핵심은 국가 부채를 바라보는 시각의 근본적인 전환에 있다. 재정확대론자들은 일본의 '총부채'가 아닌, 외환보유액 등을 차감한 '순부채'에 주목한다. 일본의 총부채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약 250%로 주요 선진국 중 최고 수준이지만, 외환보유액과 연금 자산 등을 제외한 순부채 기준으로는 약 80% 수준으로 미국보다 낮다. 재정 건전성에 대한 과도한 우려로 필요한 투자를 미뤄왔다는 반성이 사나에노믹스의 기본 동력이다.
이 같은 재정 운용의 자신감은 수치적 여유에서도 나온다. 빚이 늘어나는 속도(금리)보다 경제가 커지는 속도(성장률)가 일정 수준 이상 빠르다면, 국채를 발행해 투입하더라도 장기적으로 재정 부담이 완화될 수 있다는 논리다. 다카이치 총리가 강조하는 '책임 있는 적극 재정'은 바로 이러한 여유 공간에서 출발한다.
국가가 직접 키를 잡은 투자는 이미 구체화되고 있다. 정부는 지난달 개최된 일본성장전략회의를 통해 반도체, 인공지능(AI), 에너지, 국방 등 17개 전략 분야를 확정했다. 전략 분야는 경제성보다 국가 생존과 공급망 안정성을 우선시하는 '위기 대응 투자'와 글로벌 주도권 확보를 목표로 하는 '성장 투자'라는 두 개의 트랙으로 관리된다.
산업계와 시장이 주목하는 실질적인 대목은 이러한 전략적 투자가 만들어내는 '산업 간 연쇄 성장 구조'다. '성장 투자' 트랙의 핵심인 AI는 소프트웨어를 넘어 로봇과 결합한 '피지컬 AI' 형태로 확장되며 제조업 혁신을 이끈다. 이는 반도체 수요 증가로 이어지고 다시 데이터센터와 통신 인프라 확대로 연결된다. 하나의 기술 투자가 복수 산업으로 파급되는 구조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와지마 히데키 마켓 저널리스트는 "피지컬 AI로 일본의 기술이 각광받기 시작했다"며, AI라는 '뇌'의 지시에 완벽하게 따를 수 있는 로봇의 '신체'를 정교하게 구현할 수 있는 일본 제조업의 강점이 부각될수록 기업 가치는 한층 더 재평가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같은 동반 성장 흐름은 일본이 강점을 가진 소재·장비, 정밀 제조 경쟁력을 다시 성장 동력으로 전환시키는 계기가 되고 있다. 제조업 기반 위에 AI와 인프라가 결합되면서 산업 전반의 체질 개선이 진행되는 모습이다. 반도체 분야에서는 정책이 이미 실행 단계에 들어갔다. 일본 정부는 대만 TSMC를 유치해 범용 반도체 공급망을 안정화하는 한편 자국 기업들이 참여한 반도체업체 '라피더스'를 중심으로 2나노 이하 첨단 공정의 국산화를 추진하고 있다. 이는 공급망 안정과 기술 주권 확보를 동시에 겨냥한 '투 트랙 전략'으로 평가된다.
동시에 국가 안보와 생존을 목표로 하는 '위기 대응 투자'도 본격화되고 있다. 2035년까지 생산량을 두 배로 늘리려는 조선업 재건과 사상 처음으로 9조 엔(약 84조원)대로 진입한 국방 예산 확대는 관련 중공업 기업들을 '비수익 산업'에서 '안정적 수익 창출원'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특히 중국과의 관계 경색으로 핵심 자원 공급망 안정성이 국가 경쟁력의 변수로 떠오르면서 희토류 조달 다변화, 금속 재활용, 해양 자원 개발 분야가 새로운 경제 안보 영역으로 부상하고 있다.
정책 실행 방식 역시 기존과 다르다. 단년도 예산 중심의 관행에서 벗어나 경제 안보와 핵심 산업에 대해서는 '복수년도 예산제'를 도입해 장기 투자 기반을 마련하고 있다. 이는 기업 입장에서 정책의 지속성과 예측 가능성을 높이고 투자 회수에 대한 불확실성을 줄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결국 정책이 단순한 계획이 아니라 '확정된 재원'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사나에노믹스의 시도에 대해 시장은 대체로 긍정적으로 반응하고 있다. 정책이 산업을 만들고 산업이 다시 실적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형성될 것이라는 기대가 반영되며 일본 증시도 견조한 상승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일본 증시에는 "국책에 매도는 없다(国策に売りなし)"는 격언이 있다. 정부가 사활을 걸고 장기간 밀어붙이는 정책 방향은 결국 시장을 배신하지 않는다는 믿음이 이번에도 유효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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