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분명한 선을 그었다. 의료파업이라는 비상 상황이 있었다 해도, 병원이 환자 보호 의무까지 내려놓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MBC 보도에 따르면 2020년 8월 7일 강원대학교병원에서 담낭암 수술이 예정돼 있던 70대 환자는 전공의 집단휴진으로 수술이 3일 연기됐고, 이후 극심한 복통과 상태 악화를 겪은 끝에 심정지에 빠져 식물인간 상태가 됐다가 8개월 뒤 사망했다. 법원은 1심과 2심에서 모두 병원의 과실을 인정하고 유족에게 9200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이번 판결의 핵심은 파업 그 자체보다, 파업 상황에서 병원이 무엇을 했어야 했는가에 있다. 보도에 따르면 병원은 인력 부족 때문에 수술 연기가 불가피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거기서 면책을 허용하지 않았다. 수술이 어려웠다면 환자 상태를 더 면밀히 관찰했어야 했고, 자력으로 감당할 수 없었다면 수술이 가능한 다른 병원으로 전원하는 조치를 취했어야 한다는 취지다. 다시 말해 이번 판결은 “비상상황이었으니 어쩔 수 없었다”는 논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판단은 상식에 부합한다. 병원은 단지 건물과 장비의 집합이 아니다. 환자의 생명이 위태로울 때 마지막으로 기댈 수 있는 공적 안전망이어야 한다. 의료진이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평시와 다른 체계라도 작동시켜 환자를 지켜야 한다. 그것이 안 되면 가능한 곳으로 연결해야 한다. 할 수 없었다는 말은 설명이 될 수는 있어도 면책의 이유가 되지는 못한다. 특히 암 수술을 기다리던 고령 환자가 수술 연기 후 극심한 통증을 호소했는데도 장시간 적절한 대응을 받지 못했다면, 이는 단순한 행정 차질이 아니라 환자 안전 시스템의 붕괴로 봐야 한다.
더 무거운 대목은 신뢰의 문제다. 보도에 따르면 파업 중 근무해야 할 의사가 무단 이탈했고, 유족에게는 병원에 있었다고 설명한 정황도 드러났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문제는 더 이상 의료 공백만이 아니다. 환자와 가족은 병원을 믿고 기다렸는데, 그 신뢰가 사실상 무너진 것이다. 의료는 전문성 위에 세워지지만, 그 전문성은 결국 신뢰를 통해 사회적 권위를 얻는다. 생명 앞에서 사실을 숨기거나 책임을 흐리는 태도는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이번 판결은 앞으로 유사한 사고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우선 병원들은 집단휴진이나 대규모 인력 공백이 발생할 경우를 전제로 한 환자 보호 매뉴얼을 지금보다 훨씬 엄격하게 갖춰야 한다. 수술 연기 기준, 응급환자 분류, 전원 결정 절차, 보호자 고지 방식, 근무 이탈 관리까지 문서와 기록으로 남겨야 할 것이다. “인력이 부족했다”는 사후 해명만으로는 법적 책임을 피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의료진 개인에게도 경고가 될 수 있다. 보도에 따르면 해당 의사는 업무상과실치상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민사상 배상 책임을 넘어 형사 책임까지 문제 될 수 있다는 점은 의료 현장에 적지 않은 긴장감을 줄 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방어적 진료 논란이 커질 수는 있다. 그러나 최소한, 환자 상태 악화 신호를 방치하거나 전원 필요성을 외면하는 관행에는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높다.
정부도 이 판결을 남의 일로 봐서는 안 된다. 의료갈등이 반복될수록 피해는 늘 환자에게 집중됐다. 그렇다면 정부의 책임은 단순히 파업을 비판하거나 업무개시명령을 내리는 데 그쳐선 안 된다. 필수의료 유지체계를 실제로 작동하게 만들고, 지역 거점병원 간 전원 시스템과 응급 대응 체계를 평시부터 점검해야 한다. 이번 사건은 제도가 종이 위에만 존재할 때 어떤 비극이 벌어지는지 보여준다.
의료계 역시 돌아봐야 한다. 파업은 헌법상 권리의 영역일 수 있지만, 의료는 동시에 공공성을 띤다. 생명을 다루는 직역의 집단행동은 일반 산업의 파업과 같은 기준으로만 볼 수 없다. 환자가 위험에 놓이지 않도록 하는 최소한의 장치, 사회가 납득할 수 있는 윤리적 기준, 그리고 이를 지키려는 자정 노력이 없다면 의료계가 쌓아온 신뢰는 더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다.
환자는 병원의 사정을 이해하기 위해 입원하는 것이 아니다. 살기 위해 병원에 간다. 이번 판결이 던진 질문은 단순하다. 병원은 왜 환자를 지키지 못했나. 그 질문에 의료계와 정부가 함께 답하지 못한다면, 비슷한 비극은 언제든 다시 반복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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