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기고] 전세는 정말 나쁜 제도일까?

김인만 김인만부동산경제연구소장
김인만 김인만부동산경제연구소장.


"전세를 소멸시키고 월세로 가는 것이 맞다."

불완전한 전세제도로 인해 전세사기가 발생하고 집값을 밀어 올리는 부작용이 심각하다며 더 이상 전세라는 제도가 대한민국에 존재하면 안 된다고 말하는 분들이 있다.

전세는 정말 사라져야 할 나쁜 임대제도인 것일까? 전세제도는 세입자가 집주인에게 전세보증금을 무이자로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대신 임대기간 동안 집주인의 빈집에 들어가서 거주하는 개념으로 우리나라에만 있는 특이한 임대제도이다.

전세는 불안정한 사금융으로 집주인이 전세 만기가 되었음에도 전세금을 반환하지 않으면 세입자는 소송을 통해 판결문을 받아 경매로 넘겨야 한다. 이마저도 100% 내 전세보증금을 다 찾는다는 보장은 없다.

세입자가 빌려준 무이자 대출인 전세보증금을 끼고 집을 사면 은행에 가서 돈을 빌리지 않고도 집을 살 수 있다. 당연히 거래가 늘어나고 가격이 올라갈 가능성이 높다.

우리나라가 유독 아파트 투자가 성행한 이유도 전세라는 제도 덕분이라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여기까지만 보면 전세는 당장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은 매우 후진적인 임대제도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런 부정적인 효과가 있는 전세가 아직도 사라지지 않고 심지어 세입자들이 선호하고 있다는 것은 전세제도의 긍정적인 효과가 크다는 의미이다. 세입자는 월세 비용과 전세금의 기회비용이나 전세대출의 이자를 비교하여 최대의 효용을 따지는데 전세가 월세보다 더 유리하다.

전세금 5억원과 월세 보증금 2억원/월 150만원 두 선택지가 있다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돈을 마련할 수 있고 계산이 되는 분이라면 전세금 5억원을 선택할 것이다. 전세금이라는 종잣돈으로 기회가 왔을 때 대출을 받아 내 집을 사기도 수월하다. 전세의 가장 큰 위험은 집주인이 내 전세금을 돌려주지 않는 경우인데 전세가율이 50% 수준인 아파트는 전세사기가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선순위 권리관계와 세금 체납 사실만 잘 확인해서 대항력과 확정일자만 잘 받아도 문제될 일은 거의 없다. 전세사기 대부분은 전세가율이 80% 이상인 경우가 많은 빌라, 오피스텔에서 많이 발생하는데 가급적 보증보험에 가입하는 것이 좋다.

최근에 마치 엄청나게 나쁜 투기의 대명사처럼 말하는 갭 투자 역시 나쁜 갭 투자와 착한 갭 투자를 구분해야 한다. 소액으로 높은 전세가율을 이용해 수십 채씩 무자본 갭 투자를 하는 것은 세입자한테 큰 피해를 줄 수 있는 매우 나쁜 투기행위로 반드시 근절해야 한다. 하지만 무주택자가 전세를 끼고 집 한 채를 구입한 후 몇 년 동안 열심히 돈을 모아서 입주하거나 자녀를 잘 키우고 나서 지금 살고 있는 집은 전세를 주고 나는 외곽에 전세를 얻거나 한 채 더 구입해서 주거비 부담을 줄이는 경우까지 투기라 욕할 수는 없다. 오히려 교육·주거 인프라가 좋은 지역에 내가 전세를 내놓음으로써 전셋집을 하나 제공해주는 공급자 역할을 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만 이런 전세제도가 자리를 잡은 이유는 1970년대 국가도 개인도 기업도 돈이 없던 시절에 전세를 통해 개인은 집값의 절반 가격만으로 안정적인 주거 만족을 얻고, 기업은 전세를 끼고 구입하는 개인이 늘어나면서 수요층이 커지자 더 많은 아파트를 공급할 수 있게 되었으며, 국가는 돈이 많이 들어가는 공공주택을 많이 짓지 않고도 주택보급률을 올리면서 내수경제도 살리는 모두가 만족하는 제도가 바로 전세였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건설경기를 살려 경제를 성장시키는 모델은 AI, 로봇 등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적합하지 않다. 서울 집중화가 심화되면서 발생하는 양극화 문제를 더 이상 방치하기도 어렵다. 자연스럽게 전세는 서서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

전세가 사라진 뒤 월세시대는 과연 세입자들의 천국일까? 그건 아니다. 다른 선진국과 비교해서 우리나라 임대료가 유독 저렴하다. 뉴욕은 말할 것도 없고 싱가포르는 방 2개 소형 주택의 월세 가격이 500만~800만원 정도 한다. 우리나라 임대료가 특히 저렴한 이유는 역시 우리나라에만 있는 전세제도 덕분이다.

전세제도가 없는 외국에서는 매매가격에 연동되어 임대료가 책정된다. 특히 보증금 개념도 거의 없기 때문에 모든 임대료는 월세, 정확히 말하면 한 주 단위로 내는 주세(周稅)나 1년 단위로 내는 연세(年稅)다. 살인적인 임대료 때문에 보유세도 비싸다. 보유세가 비싸서 임대료가 높은 것인지, 임대료가 높아서 보유세가 비싼 것인지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아무튼 임대료가 매우 높다.

전세가 집값을 밀어 올린다는 오명(汚名)으로 전세대출을 규제하고 전세를 소멸시켜 월세시대로 빨리 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분들에게 묻고 싶다. 월세시대를 살고 있는 다른 선진국의 집값은 안정되었는가? 선진국 무주택 세입자들의 삶은 과연 평안한가? 그래도 세입자한테는 월세보다 전세가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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