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2일 전 임직원을 대상으로 타운홀 미팅을 진행했다. 당초 1시간으로 예정됐던 일정이 40분 넘게 늘어났고, 사전 준비 없이 질문을 직접 받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형식만 보면 내부 소통 행사지만, 내용은 분명했다. 상속세 관련 보도자료 논란 이후 흔들린 신뢰를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에 대한 조직적 고민이 자리의 중심에 있었다.
발단은 지난 2월 초 대한상의가 발표한 상속세 관련 보도자료였다. 해당 자료에는 ‘해외로 이주한 고액 자산가가 2400명으로 전년 대비 2배 증가했다’는 내용이 포함됐는데, 이후 산출 근거와 통계 방식이 불분명하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경제단체가 제시한 수치라는 점에서 파장은 컸다. 단순한 의견이 아니라 정책 논의의 근거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자료였기 때문이다.
최 회장이 타운홀에서 “신뢰 회복과 조직 안정화가 최우선 과제”라고 강조한 배경은 분명하다. 대한상의는 개별 기업이 아니라 경제계를 대표하는 민간 경제단체다. 정부와 기업, 시장 사이에서 정책 의견을 제시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이때 전제되는 것은 ‘공신력’이다. 공신력은 법적 권한이 아니라 사회적 신뢰에서 나온다. 신뢰가 흔들리면 조직의 발언력도 함께 약해진다.
이번 사안을 단순한 실무 오류로만 보기는 어렵다. 검증되지 않은 수치가 외부로 나갔고, 그 과정에서 내부 검증 장치가 충분히 작동하지 않았다는 의문이 제기됐다. 결과적으로 조직 전체가 해명에 나서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이는 특정 부서의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 전반의 점검이 필요한 사안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대한상의가 내놓은 쇄신안에는 조사·연구 기능을 총괄하는 ‘경제연구총괄’ 직책 신설, 대외 발표 자료에 대한 팩트체크 기능 강화, 보도자료 건수 등 양적 평가에서 질적 평가로의 전환, 조직문화 개선과 내부 소통 강화 등이 포함됐다. 또한 인공지능(AI)·빅데이터 교육 확대, 외부 전문가 참여 확대, 대학 및 국책연구기관과의 협업 강화 방안도 제시됐다.
이 같은 방향은 현재 상황에 대한 대응으로서 타당하다. 특히 대외 발표 자료의 검증 체계를 강화하겠다는 방침은 이번 논란의 핵심을 겨냥하고 있다. 경제단체가 제시하는 수치는 정책 판단과 여론 형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생산 과정의 투명성과 검증의 엄격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다만 제도 개선이 실제 변화로 이어질지는 별도의 문제다. 조직의 평가는 오랜 기간 축적된 관행과 기준에 의해 움직인다. 양적 성과 중심의 평가 구조가 유지되는 한, 속도와 생산량이 정확성과 검증을 압도할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한다. 평가 기준의 변화가 선언에 그치지 않고 실제 운영에 반영되는지가 관건이다.
경제단체의 보고서는 단순한 참고 자료가 아니다. 정책 논의의 출발점이 되고, 시장의 기대 형성에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데이터는 ‘제시’되는 것이 아니라 ‘검증’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출처, 산출 방식, 가정과 한계까지 함께 설명하는 것이 기본적인 요건이다. 이 과정이 확보되지 않으면, 어떤 수치도 신뢰를 얻기 어렵다.
해외 주요 연구기관과 싱크탱크들은 보고서의 신뢰성을 유지하기 위해 다층적인 검증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내부 검토뿐 아니라 외부 전문가 검증을 병행하고, 방법론을 공개하며, 데이터의 한계를 명확히 밝힌다. 이러한 절차는 시간과 비용이 들지만, 결과적으로 조직의 신뢰도를 유지하는 핵심 요소로 작용한다.
이번 타운홀 미팅에서 주목할 또 하나의 지점은 내부 소통이다. 행사 시간이 예정보다 길어진 것은 현장에서 다양한 질문과 의견이 제기됐기 때문으로 전해진다. 이는 구성원들이 조직의 방향과 의사결정 과정에 대해 충분한 정보를 공유받지 못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정례적이고 구조화된 소통 체계가 필요하다는 점이 드러난 대목이다.
SK그룹을 이끄는 최태원 회장은 그동안 ESG 경영과 사회적 가치 측정을 강조해온 기업인이다. 측정과 데이터의 중요성을 지속적으로 강조해왔다는 점에서, 이번 논란은 데이터 신뢰성 관리의 중요성을 다시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데이터는 많을수록 좋은 것이 아니라, 정확할수록 의미가 있다.
결국 이번 사안이 던지는 질문은 분명하다. 경제단체의 신뢰는 무엇으로 유지되는가. 조직의 규모나 역사, 영향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데이터의 정확성과 검증 과정의 투명성이 확보될 때 비로소 신뢰는 유지된다.
신뢰는 한 번의 설명이나 해명으로 회복되지 않는다. 동일한 문제가 반복되지 않는다는 확신이 축적될 때, 비로소 회복의 기반이 마련된다. 이를 위해서는 제도와 절차, 그리고 조직 문화의 변화가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이번 100분의 타운홀 미팅은 출발점에 가깝다. 향후 제시된 쇄신안이 실제로 어떻게 이행되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조직의 데이터 생산과 검증 체계가 어떻게 달라지는지가 대한상의 신뢰 회복의 관건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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