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두수의 절차탁마] 지울 것인가, 기억할 것인가

[이두수 작가]
[이두수 작가]



얼마 전 가족 여행으로 일본 도미오카(富岡) 제사 공장을 다녀왔다. 사실은 쿠사츠 온천으로 가는 길에 들른 곳이지만, 의미 깊은 곳이었다. 메이지 초, 일본은 개항과 함께 서양 자본주의의 현실과 정면으로 마주했다. 1867년 파리 만국박람회에 참가한 일본은 자신의 힘이 얼마나 약한지를 뼈저리게 느꼈다. 박람회 일원으로 다녀온 시부사와 에이이치(涉澤栄一) 같은 젊은 지사들은 일본의 전통 공예품 수준으로는 세계와 상대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들이 돌아와 내놓은 해법 가운데 하나가 바로 "근대식 기계제사 공장"이었고, 국가 정책으로 탄생한 관영 모델공장이 도미오카 제사공장이었다. 프랑스 기술자를 초빙해 1872년에 지어진 이 공장은, 일본 자본주의의 출발선에 선 상징 같은 존재였다.

한때 생사(生糸) 생산 세계 제일을 자랑하며 일본 근대화의 얼굴이었던 그 공장은 이제 문을 닫은 지 오래다. 공장이 멈추자 도시도 함께 시들어, 지금의 도미오카는 활력 넘치는 곳이라 하긴 어렵다. 그런데 그곳 사람들은 공장을 철거해 흔적을 지운 것이 아니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해 관광객을 불러들이고 있었다. 기계 소리는 멈췄지만, 공장은 또 다른 모습으로 도시의 중심에 남아 있었다.

1987년 도미오카 공장이 115년의 조업을 멈춘 것은 생사의 세계적 가격 경쟁 심화와 화학섬유의 대두 때문이었다. 한국과 중국의 섬유산업 부흥도 그 배경 가운데 하나였다. 사실 한국의 근대화도 섬유산업이 견인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 역시 이제는 섬유산업을 굴뚝산업이라 부르며 퇴물 취급을 하고, 공장 대부분은 동남아나 해외로 이전했다. 그러나 도미오카 주민들은 이 "낡은 시설"을 버리지 않고 "늙은 유산"으로 품어 안았다. 방적 공장과 누에 창고, 기숙사 건물은 더 이상 돈을 벌지는 않지만, 도시의 한가운데에서 "이 나라가 어떻게 산업화의 문턱을 넘었는지"를 보여 주는 기억의 장소로 살아 있었다. 늙었지만, 낡은 것으로 버려지는 공장이 아니었다.

내가 지금 일하는 광주에는 금호타이어 공장이 있다. 누구나 다 아는 금호그룹의 모체는 광주여객에서 시작된 광주고속이지만, 금호타이어 역시 광주에서 태어나 광주를 기반으로 성장한 제조업의 얼굴이었다. 1960년 삼양타이어공업으로 출발해, 1974년 광주 소촌동 공장을 세우며 이 도시는 본격적인 공업도시의 궤도를 밟기 시작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 공장에서 일했고, 그 임금으로 가정을 꾸리고, 아이들을 키웠다. 금호는 광주를 딛고 세계 시장으로 나간 기업이었고, 광주는 그런 기업을 키워 낸 도시였다.

그런데 지난해 5월 17일, 광주 금호타이어 공장에서 대형 화재가 났다. 광주 북구에 위치한 건설현장에서도 검은 연기와 불기둥이 보일 정도였으니, 얼마나 큰 화재였는지 며칠간 진화가 이어졌다. 화재 후 생산은 전면 중단되었고, 노후한 설비와 반복된 화재 문제가 한꺼번에 수면 위로 떠올랐다. 회사는 복구와 동시에 전남 함평 신공장, 폴란드 신공장 건설을 추진하며 국내외 생산거점을 재편한다는 말이 있다. 동시에 이 공장을 장기적으로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에 대한 논쟁도 거세다. 광주에 남을 것인가, 떠날 것인가, 남는다면 어떤 모습으로 늙어갈 것인가.

물론 금호타이어의 사정은 단순하지 않다. 광주 공장은 노후 설비와 안전관리 부실로 이미 여러 차례 화재를 겪어 왔고, 이번에는 공장 생산능력의 상당 부분이 불에 탔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유럽 현지 생산 거점이 꼭 필요했고, 폴란드 정부는 각종 인센티브를 내걸며 공장을 유치했다. 회사 입장에서는 "광주를 올드한 거점으로 붙들고만 있을 수는 없다"는 계산이 있었을 것이다.

공장을 둘러싼 시선은 회사만의 것이 아니다. 인근 주민 여론조사를 보면, 응답자의 상당수가 "공장 이전에 찬성한다"고 답했다. 이유를 보면 환경·냄새·소음, 화재 위험 같은 생활 불편 해소가 가장 크고, 그 다음이 "역세권 개발"이다. 공장이 사라진 자리에 문화시설, 상업공간, 주거단지가 들어서면 삶의 질도 좋아지고 부동산 가치도 오를 것이라는 기대가 깔려 있다. 주민들 입장에서는 공장 유지로 얻는 '간접적 지역경제 효과'보다, 공장 이전과 재개발로 얻게 될 '직접적인 생활·자산 이익'이 더 크게 보였을 것이다.

도미오카 주민들은 공장이 멈춘 뒤 "이 공장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를 물었다. 광주에서는 아직 "누가 이 공장의 비용을 치를 것인가"를 묻고 있다.

반면 노동자와 노조의 시선은 다르다. 화재 직후 노조는 "수천 명 노동자의 생계가 위협받고 있다"며 회사가 고용대책을 제대로 내놓지 않는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광주 공장을 완전히 정리하고 해외로 빠질 가능성을 경계하며, "광주 생산능력 복원과 국내 신규 공장(함평) 건설을 통해 최소한의 일자리와 생산규모를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조에게 공장은 지켜야 하는 대상이자, 자신의 삶터를 붙들어 주는 기반이었다.

어쨌든 광주 송정역 일대가 "살 만한 곳"이 된 데에는 공장의 공(功)이 크다. 공장이 없었다면 이만큼 인구가 모이고, 상권이 형성되고, 역세권이 주목받는 도시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공장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삶이 분명히 있다. 그러나 도시가 커지면서 한때 외곽이던 공장이 도심이 되었고, 그 공장 때문에 지금의 일상이 힘들어진 사람들도 있다. 둘 다 사실이다.

여기에 재난 국면의 노사관계라는 층위가 하나 더 얹힌다. 화재로 공장이 멈추고 복구가 한창인 상황에서, 노조는 임단협에서 기본급 인상, 성과급과 상여금, 통상임금 재산정, 복리후생 확대 등을 강하게 요구했다. 사측은 "화재 복구·함평 신공장 건설·해외 투자까지 겹쳐 재무 여력이 부족하다"며 난색을 표했다. 재난 앞에서 서로 한 발 물러서기보다, 오랜 불신이 다시 확인되는 장면이었다. 언론에서는 "화재 복구 한창인데 성과급 타령"이라는 자극적인 제목이 붙었고, 그 뒤로 "이럴 바에야 해외 이전이 낫다"는 경영진의 마음이 굳어졌다는 말도 따라붙었다.

그래서 이 사태를 "노조가 과도한 상여금을 요구해서 공장이 해외로 갔다"거나, "기업이 책임을 회피하려 해외로 도망갔다"는 식의 한 줄 설명으로 요약하기는 어렵다. 반복된 구조조정과 파업, 통상임금 소송으로 쌓인 노사 불신, 노후 설비와 잦은 화재, 유럽 현지 생산 거점에 대한 경영 전략, 재난 국면에서도 양보하지 못하는 임단협 문화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재난 앞에서조차 사회적 연대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 한국식 노사관계의 구조적 한계가 드러난 사건에 가깝다.

결국 하나의 공장을 두고 벌어진 논쟁 속에는 서로 다른 시간과 두려움이 겹친다. 기업은 미래의 경쟁력과 비용을 계산하며, "지금 떠나지 않으면 더 늦는다"고 말한다. 주민은 당장의 환경과 생활, 그리고 재개발이 가져올 이익을 생각한다. 노동자는 과거의 파업과 구조조정을 떠올리며 "여기서 물러서면 다음엔 공장 자체가 사라질 것"이라 두려워한다. 이 다른 시간들이 만나는 자리에서, 공장은 점점 "버려야 할 대상"이 되어 간다. 광주를 기반으로 성장한 향토기업이, 결국 지역 주민의 외면과 노사 불신, 글로벌 전략이 겹친 끝에 광주를 떠나려는 기업이 된 셈이다.

광주는 원래부터 "제대로 된 큰 기업이 없다"는 말을 자주 듣는 도시다. 대기업 본사가 없고, 공장과 하청, 판매망 정도만 드문드문 자리 잡은 구조 속에서, 새로운 투자나 복합쇼핑몰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광주는 반기업 정서가 심해서 기업이 안 온다"는 말이 반복된다. 이번 금호타이어 사태를 두고도, "이래서 기업들이 광주를 떠난다"는 한탄이 뒤따른다.

하지만 광주의 역사를 조금만 들여다보면, 이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5·18 이후 광주는 국가폭력과 개발독재에 저항해 온 도시였고, 그 기억 위에서 형성된 시민사회는 대형 개발과 기업 유치에 대해 질문을 던져 왔다. 한편으로는 기업의 책임 없는 철수와 환경 파괴, 비정규직 확대를 비판해 왔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래도 일자리는 필요하다"는 절박한 현실 앞에서 늘 갈등해 왔다. 반기업이냐 친기업이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기업을, 어떤 조건으로, 누구의 비용을 치르며 받아들일 것인가"를 둘러싼 긴 논의가 이어져 온 것이다.

금호타이어를 둘러싼 이번 사태도 그 연장선에서 봐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노동자들은 반복된 매각과 구조조정, 해외 이전 위협을 겪으며 "양보하면 공장이 사라질 것"이라는 공포를 몸으로 배웠다. 경영진은 경영진대로 "조금만 버티면 해외 투자가 더 낫다"는 계산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 사이에서 시민들은 "광주는 기업이 오면 반대부터 한다"는 자기비하와 "그래도 이런 조건으로 받아들여도 되는가"라는 의심을 동시에 품고 산다. 화재 이후 재해복구 국면에서조차 노사와 지역사회가 서로를 향해 한 발도 물러서지 못한 것은, 결국 이 오래된 불신이 폭발한 결과처럼 보인다.

쉽지 않겠지만 광주는 5·18의 아픈 상처만 기억할 것이 아니라, 이 도시를 산업도시로 키우고 근대화로 이끌어 준 기업들도 함께 기억했으면 한다. 금호그룹은 분명 광주의 근대 역사와 함께 걸어온 기업이다. 이 회사가 있었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일터를 가질 수 있었고, 젊은이들이 학비를 마련해 공부를 계속할 수 있었으며, 그 위에 작고 큰 가정들이 세워졌다. 금호는 광주를 기반으로 성장해 세계 시장으로 나아간 기업이다. 광주는 이런 기업을 키워 낸 도시라는 자부심을 가져도 되지 않는가. 그래야 이곳의 젊은이들도 "광주에서도 세계를 향해 갈 수 있다"는, 더 큰 꿈을 품을 수 있지 않겠는가.

그래서 나는 광주에 필요한 것이 "반기업 정서의 청산"이나 "친기업 정서의 주입"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기업이 떠나도 남는 도시, 공장이 문을 닫아도 기억과 기술과 사람이 붙어 있을 수 있는 도시, 재난이 닥쳐도 노사와 시민이 함께 복구의 원칙을 정할 수 있는 도시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하는 것이다. 도미오카가 그랬듯이, 공장 부지의 일부라도 이 도시가 어떻게 산업화의 길을 걸어왔는지를 기억하는 장소로 남길 수는 없을까. 전부를 철거하고 아파트와 상가를 올리는 것만이 "발전"은 아닐 것이다.

도미오카에는 늙었지만 낡지 않은 공장이 있다. 광주에는 늙어가는 공장과 도시, 그리고 그 속에서 허리가 아프다고 말하는 노동자가 있다. 늙음은 피할 수 없지만, 낡음은 선택할 수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기업을 내쫓듯 떠나보내는 것도, 상처만 안고 붙들고 있는 것도 아니다. 공장과 도시, 기업과 노동, 시민이 서로의 늙어감을 인정하면서도 낡지 않을 길을 함께 찾는 것, 그것이야말로 함께 늙어갈 수 있는 산업과 도시의 시작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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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은 있되 밖이 보이지 않는 벽창호. 우리는 서로의 창문을 열어본 적이 있는가. 기업은 기업의 창으로, 노동자는 노동자의 창으로, 시민은 시민의 창으로 바깥을 본다. 하지만 같은 풍경을 보고 있지는 않다. 그림, 필자 제공]




필자 소개

최근 수년간 일용직 건설노동자로 일하며 현장의 일상을 글과 그림으로 기록해 왔다. 현재 아프리카아시아난민교육후원회(ADRF)에서 아프리카와 아시아 빈곤지역 아동들의 교육·급식·장학 지원을 이끄는 국제개발협력 활동가로, 건설현장에서 익힌 절차탁마의 정신을 실생활 프로그램으로 펼치고 있다.
idooso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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