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사설 | 기본 원칙 상식] 재판소원 시대, 사법 신뢰와 소송 남발 사이의 상식을 지켜야

법원의 확정 판결에 대해서도 일정한 요건 아래 헌법소원을 제기할 수 있는 이른바 ‘재판소원’ 제도가 시행되면서 법조계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서울의 대형 로펌들이 관련 전담팀을 꾸리고 헌법재판소 출신 법조인을 중심으로 대응 조직을 강화하는 모습이다. 일부 로펌은 헌재 선임연구관 출신 변호사를 앞세워 ‘재판소원 TF’를 꾸렸고, 헌법소송 전문성을 강조하는 홍보도 이어지고 있다. 그동안 서초동 법률시장의 중심이 검찰·경찰 출신 전관 변호사 중심의 형사 사건이었다면, 이제는 헌법소송이 새로운 법률시장으로 떠오르고 있는 셈이다.

 

 최종심인 대법원의 판결을 헌법재판소에서 다툴 수 있는 내용을 포함한 사법개혁 3법이 공표된 첫날인 12일 서울 헌법재판소 민원실에서 관계자들이 안내문 비치 등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최종심'인 대법원의 판결을 헌법재판소에서 다툴 수 있는 내용을 포함한 '사법개혁 3법'이 공표된 첫날인 12일 서울 헌법재판소 민원실에서 관계자들이 안내문 비치 등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재판소원 도입의 취지는 분명하다. 기존 사법 체계에서 대법원 판결은 사실상 최종 판단으로 기능해 왔다. 그러나 확정 판결이라 하더라도 헌법상 기본권 침해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재판소원은 이러한 경우 헌법재판소가 헌법적 관점에서 판단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다. 사법 권력 역시 헌법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는 헌법 국가의 원칙을 고려하면 일정한 필요성이 있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갖는다. 국민의 기본권 보호 장치를 한 단계 보완하려는 취지라는 점에서 의미를 찾는 시각도 적지 않다.



하지만 제도 시행과 동시에 우려의 목소리도 함께 나오고 있다. 가장 먼저 제기되는 문제는 분쟁 종결의 지연이다. 현재도 민사나 형사 사건은 1심, 2심, 3심을 거치며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여기에 재판소원 절차까지 더해질 경우 분쟁이 사실상 장기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법률 분쟁은 어느 시점에서는 종결돼야 사회적 안정이 유지된다. 확정 판결 이후에도 또 다른 절차가 이어진다면 당사자뿐 아니라 사회 전체의 비용이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강제 집행 지연 문제 역시 우려되는 대목이다. 패소한 당사자가 판결 결과를 받아들이기보다 시간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재판소원을 활용할 수 있다는 지적도 법조계에서 제기된다. 법률 분쟁의 목적은 끝없는 다툼이 아니라 공정한 판단을 통해 갈등을 정리하는 데 있다. 분쟁 해결의 종결성이 약화될 경우 사법 시스템에 대한 신뢰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해외 사례도 이러한 논쟁을 보여준다. 재판소원 제도를 운영하는 독일의 경우 실제 인용률이 매우 낮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부분의 사건이 심리 단계에서 각하되거나 기각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실질적인 권리 구제 효과는 제한적인 반면 법률시장만 확대되는 것 아니냐는 회의적인 시각도 제기된다. 물론 제도적 배경과 사법 구조가 다른 만큼 단순 비교는 어렵지만, 제도 운영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현실적인 한계를 보여주는 사례로 언급된다.



그렇다고 재판소원 제도를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사법 판단이 헌법 질서 속에서 작동하도록 하는 통제 장치라는 점에서 제도적 의미는 분명하다. 특히 기본권 침해 가능성이 있는 사건에 대해 헌법적 판단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은 국민의 권리 보호 측면에서 긍정적인 요소다. 중요한 것은 제도의 취지가 실제 운영 과정에서 왜곡되지 않도록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몇 가지 원칙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재판소원이 사실상의 ‘4심’으로 변질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헌법적 쟁점이 분명한 사건만 엄격한 기준 아래 심리하도록 제도 운영이 이뤄져야 한다. 또한 강제 집행 지연이나 시간 끌기용 소송으로 활용되는 것을 막기 위한 절차적 보완도 필요하다. 대법원과 헌법재판소 사이의 권한 균형 역시 중요한 과제다. 두 기관이 서로의 역할을 존중하면서 헌법 질서 속에서 조화롭게 작동할 때 제도의 취지도 살릴 수 있다.



법률시장 역시 책임 있는 태도가 요구된다. 새로운 제도가 도입될 때 이를 법률 서비스 확대의 기회로 바라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재판소원이 과도한 홍보나 사건 수임 경쟁의 대상이 된다면 제도의 본래 취지가 흐려질 수 있다. 헌법소송은 국민의 기본권 보호라는 공적 성격을 갖는 만큼 법조계 역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사법 제도의 목적은 단순히 소송 절차를 늘리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공정한 판단을 통해 사회적 갈등을 정리하고 법적 안정성을 확보하는 데 있다. 재판소원이 국민의 권리를 보호하는 장치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소송 장기화와 비용 증가라는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균형 감각이 필요하다.



재판소원 제도는 이제 막 출발선에 섰다. 사법 신뢰를 높이는 제도로 자리 잡을지, 아니면 또 하나의 소송 절차로 남을지는 앞으로의 운영에 달려 있다. 결국 중요한 기준은 복잡한 법리 이전에 상식이다. 국민의 권리를 보호하면서도 사법 질서의 안정성을 해치지 않는 균형, 바로 그 상식이 재판소원 시대에 필요한 원칙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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