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힌 요양산업, 커지는 돌봄 수요] 돌봄 공백 눈앞인데…핵심 규제 완화는 '하세월'

  • 입소정원 연평균 8.4% 증가하는데…A·B등급 시설은 38%뿐

  • 시설 건립에 토지·건물 확보가 우선…신규 사업자 진입 제한

  • "정부는 관리·감독, 민간이 공급주체 되도록 물밑 지원해야"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한국이 초고령사회에 진입하면서 노인 돌봄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지만 규제의 벽에 막혀 요양시설은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 직면했다. 시설 설립을 가로 막는 각종 진입 장벽으로 '돌봄 공백'이 현실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11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노인요양시설 입소 정원은 2008년 이후 연평균 8.4% 증가하고 있지만 선호도 높은 국민건강보험공단 평가 A·B등급 시설은 38%에 그쳤다. 네 곳 중 한 곳은 '인력 기준 위반'(24.9%)이나 '적정 배설 서비스 미흡'(28.5%) 등 기본적인 기준도 충족하지 못했다.

이 같은 수요와 공급 불일치는 현장에서 이미 나타나고 있다. 중대형 요양시설 정원은 200명 수준이지만 입소 대기자는 시설에 따라 수천 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령화 속도를 고려하면 대기 규모는 더 늘어날 수밖에 없는데도 시설 확충은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현행 노인복지법 시행규칙은 노인의료복지시설과 노인복지주택을 지으려면 일정 기준을 충족한 부지와 건물을 확보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단순히 운영 능력이나 서비스 모델만으로는 시설을 설립할 수 없고 토지 확보와 건물 건축 또는 임차 등 물리적 인프라를 먼저 갖춰야 한다는 의미다.

문제는 이러한 조건이 현실적으로 매우 높은 진입 장벽으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도심 지역에서 요양시설을 지을 수 있는 충분한 부지를 확보하기가 쉽지 않은 데다 토지 매입과 건축 비용이 수십억~수백억 원에 달해 신규 사업자의 시장 진입이 사실상 제한돼 있다. 토지 건물 소유 의무에 따른 기회비용을 고려하면 서울은 월 800만원대 적자(비급여 수입 제외)가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주무 부처인 보건복지부는 규제 개선 필요성을 인식하고 관련 규제 정비를 검토하고 있다. 다만 시설 기준 일부 완화나 행정 절차 간소화 등 개선책은 현장 체감도가 낮다는 평가가 나온다. 관련 단체들은 요양시설 설립 요건 완화와 공공부지 활용 확대 등을 정부에 공식 건의한 상태다.

민간 요양시설 역할을 보다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민간 시설은 공립 시설에 비해 서비스 다양성과 맞춤형 돌봄 제공이 가능하고, 시설 환경이나 프로그램 측면에서도 차별화가 가능하다. 공공시설보다 입소 대기 기간이 상대적으로 짧고 가족 방문이나 생활 편의 측면에서도 유연하게 운영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는 시설 관리·감독과 안전망 구축에 집중하고, 민간을 공급주체로 활용해 물밑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장시령 한국은행 경제연구원 과장은 "향후 25년간 생애말기 고령인구가 2배 증가하는 상황에서 공공 재정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다"며 "수요가 집중된 서울, 부산 등 대도시권의 높은 부동산 비용을 보전해 도심 내 안정적 시설 공급을 유도할 수 있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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