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독도가 사람이 없는 섬이 된 것은 아니다. 지금도 독도에는 독도경비대가 상주하며 경비 임무를 수행하고 있고 울릉군 독도관리사무소 직원들도 근무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실효적 지배는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다. 다만 주민등록상 주소를 둔 ‘민간 주민’이 사라졌다는 점에서 독도의 역사 속 한 장면이 조용히 막을 내린 것이다.
그 마지막 이름이 바로 김신열 씨였다.
고 김신열 씨와 남편 김성도 씨는 1960년대 후반부터 독도에서 어업을 하며 삶을 이어왔다. 거친 파도와 강풍이 몰아치는 바위섬에서 수십 년을 버틴 이들의 삶은 단순한 생계의 기록을 넘어 사실상 ‘독도 수호의 역사’였다.
김성도 씨는 독도 이장으로 불리며 독도 주민의 상징적인 존재가 됐다. 각종 선거 때 독도에서 거소투표를 하는 모습은 대한민국이 독도를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기도 했다.
2018년 김성도 씨가 세상을 떠난 뒤 김신열 씨는 독도의 유일한 주민으로 남았다. 그는 2019년과 2020년에도 독도에 머물렀다. 그러나 2020년 태풍 ‘하이선’이 독도를 강타하면서 주민 숙소가 큰 피해를 입었고, 고령의 김신열 씨는 결국 독도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이후 숙소는 복구됐지만 그는 건강 문제로 다시 독도에 돌아가지 못했다.
그리고 이제 독도에는 주민등록상 민간 주민이 없다.
하지만 독도의 역사는 주민의 유무로 시작된 것이 아니다. 그 역사는 훨씬 더 깊고 오래된 시간 속에서 이어져 왔다.
독도의 역사는 적어도 1500년 이상 거슬러 올라간다. 『삼국사기』에는 신라 지증왕 13년(512년) 장군 이사부가 우산국을 복속시켰다는 기록이 등장한다. 우산국은 울릉도와 독도를 포함한 해상 세력으로 알려져 있다. 이 기록은 독도가 오래전부터 한반도 역사권 안에 있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료로 평가된다.
조선 시대에도 독도 관련 기록은 꾸준히 나타난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울릉도와 우산도 두 섬이 서로 멀지 않아 날씨가 맑으면 바라볼 수 있다고 기록돼 있다. 이때의 우산도가 오늘날 독도로 해석된다.
17세기에는 울릉도와 독도를 둘러싸고 조선과 일본 어민 사이의 충돌이 벌어졌다. 조선 어민 안용복은 일본으로 건너가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의 영토임을 주장했고 이후 일본 막부는 울릉도 도해 금지령을 내렸다. 이 사건은 독도 문제와 관련해 역사적으로 자주 인용되는 사례다.
근대 이후 독도 문제는 제국주의의 소용돌이 속에서 다시 등장했다.
1905년 일본은 러일전쟁 중 독도를 시마네현에 편입한다고 일방적으로 선언했다. 대한제국이 외교권을 박탈당한 상황을 이용한 조치였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의 패전과 함께 독도 문제는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1952년 이승만 대통령이 선포한 ‘평화선(이승만 라인)’을 통해 독도 해역을 포함한 해양 주권을 선언했고 이후 독도에 대한 실효적 관리가 강화됐다. 독도경비대가 상주하며 경비 임무를 수행하기 시작했고 행정 관리 체계도 구축됐다.
독도는 단순한 바위섬이 아니다. 동해의 중요한 해양 거점이며 주변 해역은 풍부한 어장을 형성하고 있다. 또한 배타적경제수역(EEZ) 설정과 해양 관할권 문제에서도 전략적 의미를 갖는다.
영토는 지도 위의 점이 아니라 국가의 주권이 미치는 공간이다.
이런 역사 속에서 독도를 실제로 지켜온 것은 국가의 문서만이 아니었다. 독도경비대와 행정 공무원, 그리고 그곳에서 살아온 주민들이었다.
김성도 씨 부부가 독도에서 보낸 수십 년의 세월은 대한민국의 실효 지배를 보여주는 살아 있는 증거였다.
독도의 환경은 결코 만만하지 않다. 겨울이면 초속 30m에 가까운 강풍이 불고 파도가 절벽을 넘어 바위를 덮친다. 식수와 생활 물자의 대부분을 외부에서 공급받아야 하는 고립된 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곳에서 삶을 이어온 주민이 있었다는 사실은 독도 역사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이제 독도에는 주민등록상 민간 주민이 없다. 그러나 독도가 비어 있는 섬이 된 것은 아니다. 독도경비대와 행정 인력이 여전히 섬을 지키고 있으며 등대와 접안시설, 기상 관측 시설 등 다양한 관리 시설도 운영되고 있다.
독도는 이미 대한민국의 행정 체계와 안보 체계 안에서 관리되고 있는 영토다.
다만 민간 주민의 존재는 또 다른 의미를 가진다. 영토는 법과 군사력만으로 지켜지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삶으로도 증명되기 때문이다.
김성도 씨와 김신열 씨의 삶은 바로 그 사실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이야기였다.
독도는 종종 외교 갈등의 상징으로만 이야기된다. 그러나 독도의 본질은 그보다 훨씬 단순하다.
수백 년 동안 한반도 사람들이 오가던 바다 위의 섬이며 어민들이 삶을 이어가던 공간이었다.
김신열 씨의 별세는 독도 주민의 한 시대가 막을 내렸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독도의 이야기가 끝난 것은 아니다.
독도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고 동해의 바람과 파도 속에서 대한민국의 영토로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그 섬을 지켜온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는 앞으로도 독도의 역사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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